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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맞으시죠?"
"30대 인데요"
"헉! 동안이시네요!"

1월 29일 종로 3가의 학원가 보도에서는 꽃분홍색, 일명 핫핑크색 후드티를 맞춰 입은 대여섯 명의 20대 청년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영하 7도의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있었지만 '동안이시네요'라는 한마디에 사람들의 굳은 얼굴에 옅은 미소가 돌았다.

"20대 맞으시죠?"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20대로 살아가기 너무 힘드시지 않으신가요? 흑 최저임금은 너무 낮고 등록금은 너무 높고! 혹시 6월 2일에 지방선거 있는 거 아시나요?……."

이후에도 속사포처럼 주절주절이어지는 설명에 경계가 가득한 표정은 이내 흥미로운 관심으로 바뀌었다.

팀장 방준호(25)씨가 한 20대에게 요구안을 받고 있다.
▲ 신촌캠페인2 팀장 방준호(25)씨가 한 20대에게 요구안을 받고 있다.
ⓒ 손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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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라서 할 수 있는 무모한 캠페인

참여연대 제5기 인턴 정치캠페인팀 '휴먼파탈'은 1월 29일부터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시내 번화가에서 20대의 요구안을 받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참여연대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는 20대 대학생 5명(김나래(21), 박고은(24), 방준호(25), 손민정(23), 이미혜(26))으로 이루어진 '휴먼파탈' 2010년 6월 2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20대가 진정 원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무모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젊음의 거리 신촌에서 캠페인팀이 20대에게 요구안을 받고 있다.
▲ 신촌 젊음의 거리 신촌에서 캠페인팀이 20대에게 요구안을 받고 있다.
ⓒ 손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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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3가에서 시작한 이번 캠페인은 1월 29일 홍대, 2월 1일 명동, 4일 신촌, 5일 홍대에서 진행됐다. 핫핑크색 피켓 다섯장과 부실한 책상, 연분홍색 A4용지로 만들어진 요구안을 마련해놓고 강추위에 바삐 지나가는 20대에게 요구안을 받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보였다.

강추위와 함께 매서운 바람이 불어 급기야 명동에서 캠페인을 진행할 때는 커다란 피켓이 반으로 쪼개지고 A4용지로 만든 20대의 요구안들이 바람이 날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캠페인팀은 목이 터져라 지나가는 20대에게 뜻을 함께 해주십사 외쳤다.

한 20대가 요구안을 쓰고 있다.
▲ 요구안 한 20대가 요구안을 쓰고 있다.
ⓒ 손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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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장의 요구안 모아 각 정당에 전달

총 5번의 캠페인으로 500여장의 요구안을 모았다. 이들의 목표는 2월 22일까지 오프라인에서 요구안 2000장을 모으는 것. 이렇게 모은 요구안을 2월 26일 오후 2시부터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 전달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캠페인팀이 피켓을 들고
▲ 캠페인팀 캠페인팀이 피켓을 들고
ⓒ 손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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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이 원하는 요구안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솔직, 발칙한 목소리다. 캠페인팀이 손에 든 피켓에는 얼핏 황당하고 무례한 물음과 요구가 가득하다.

21살 김나래, 고양시장에게 외치다
"시장님은 토익 900점 넘으셈?"
영어 필요없는 사람도 많은데 왜 졸업요건에는 꼭 토익 몇점, 토플 몇점 이런게 있어야 하는거죠? 시장님은 토익 900넘으세요????

24살 박고은, 서울시장에게 외치다
"교통비! 대학생도 할인해 주세요"
우리 용돈 40만원에 차비만 10만원 시장님은 모르시겠죠... 자가용타시니깐 ㅠㅠ 우리가 돈을 버는 직장인인가요 뭔가요. 왜 청소년할인은 해주면서 대학생 할인은 없는거에요? 교통비~ 대학생도 할인해주세요!!!

25살 방준호, 군포시장에게 외치다
"모텔을 기숙사로"
대학생 살 만한 데가 없어. 등록금 걱정에 방 값 걱정까지! 왜 대학엔 충분한 기숙사가 없는 거야. 그렇다면 국가가 나서줘야 하는거 아니니? 독립하고 싶어염!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을 만들어줘! 20대 주거권을 보장하라규

23살 손민정, 군포시장에게 외치다
"등록금 300원"
등록금, 우린 유럽처럼 될 수 없는거니? 내가 벌어서 감당할 수 있는 등록금 불가능한거니? 300만 대학생들의 염원을 담아서 등록금 300원

26살 취업준비생 이미혜, 서울시장에게 외치다
"그래 나 26살이다!"
꽃다운 나이 26이 여자가 취업하기에는 벌써 많은 나이라는거...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솔직, 발칙한 그들의 요구안

캠페인팀원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불만사항을 핫핑크색 피켓에 거칠게 우겨넣었다. "정중하게 요구하는 것보다 20대가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더 이상 20대가 정치권에서 묻히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에서 정치권에 확실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고 캠페인팀의 막내 김나래(21)씨는 말했다.

88만원 세대, 무기력한 20대, 스펙경쟁의 노예 등 지금의 20대를 규정하는 별명들은 모두 암울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2007년 우석훈 박사는 저서 <88만원 세대>를 통해 세대간 불균형의 피해자로 20대를 상정했다. 2009년 중반 김용민 한양대 겸임교수는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라는 특별 기고문을 통해 세상을 바꿀 동력을 상실해버린 20대의 무기력을 질타했다.

실제로 지난 제 17대 대선, 제 18대 총선, 제 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20대는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2007년 제 17대 대선투표율을 분석한 결과 20대 후반은 42.9%로 가장 낮았고 20대 전반(20~24세)은 51.1%를 기록해 전체 투표율  63%에 미치지 못했다. 2008년 제 18대 총선투표율의 경우 전체 투표율이 역대 최저로 45.9%였다. 20대의 경우 20대 전반이 32.9%, 20대 후반이 24.2%로 가장 낮았다. 2006년 제 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전체 투표율은 51.6%였다. 마찬가지로 20대의 투표율은 가장 낮아 20대 후반이 29.6%를 기록했다.

무기력한 20대, 무관심한 20대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대선이든 20대 투표율은 전체 투표율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인다. 캠페인팀의 박고은(24)씨는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해 정치권에서 20대의 영향력이 매우 낮다"고 평하고 "과연 20대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몸으로 부딪혀 가며 알아보고 캠페인을 통해 6월 2일 지방선거에 대해 잘 몰랐던 20대들의 선거 참여를 유도할 것이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미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대학생 정책 자문단이 활동을 하고 있고 20대의 정치 참여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방 선거를 3달 여 앞둔 현재도 대학생 시의원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또한 한국청년연합(KYC)에서는 대학생들로 이루어지는 체인지리더Changeleader(체리)를 모집해 20대와 30대를 위한 정책을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20대의 노력은 정치권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다수의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한 상황에서는 20대를 위한 정책도, 20대 시의원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탄력을 받을 수도 없었다.

온라인 캠페인 '20대만 댓글다는 신나는 세상'
▲ 웹자보 온라인 캠페인 '20대만 댓글다는 신나는 세상'
ⓒ 손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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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캠페인팀은 20대의 정치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먼저 20대의 요구와 불만을 직접 모으는 전략을 택했다. 이들은 오프라인 활동과 함께 '20대만 댓글다는 신나는 세상'이라는 온라인 캠페인을 함께 벌였다. 캠페인팀의 팀장 방준호(25)씨는 오프라인 활동에 비해 저조한 성과를 거둔 이유에 대해 "오프라인 캠페인에 치중하다 보니 온라인 캠페인에 신경을 쓰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하면서 "오프라인 캠페인에서 일어났던 후기들을 온라인 상에 올리면서 앞으로 온라인에서의 관심을 제고할 것"이라는 보완책을 제시했다.

과천시의원 황순식의원(왼쪽에서 두번째)과 캠페인팀
▲ 황순식의원님과 과천시의원 황순식의원(왼쪽에서 두번째)과 캠페인팀
ⓒ 손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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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월 2일 캠페인팀은 20대에 과천 시의원으로 당선된 진보신당 황순식 의원을 만나 20대의 정치참여와 캠페인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황 의원은 "시의회에서 20대를 위해 직접 할 수 있는 일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지만 "서울시를 비롯한 광역자치단체의 경우에는 20대를 위해 해 줄 일들이 많을 것"이라며 캠페인팀을 독려했다.

무모한 행동? 정치참여의 기폭제!

캠페인팀의 이미혜(26)씨는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20대들을 직접 만나고, 함께 공감하면서 20대가 주요한 정치주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면서 "캠페인 도중 먼저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시는 분들과 힘내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이거, 되겠다'는 느낌이 온다"고 말했다.

전국공동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서울에서만 진행해오던 캠페인을 지방 광역도시에까지 활동 무대를 넓히겠다는 이들. 이들의 행동이 부질없는 무모한 행동이 될지 20대의 정치참여의 기폭제가 될지,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태그:#20대, #지방선거, #캠페인, #정치참여,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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