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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5년 전 한나라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경상남도 남해에서 무소속으로 군수에 당선됐다. 그것도 37살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군수 당선 기록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한나라당의 텃밭에서 무소속 후보의 당선은 '파란'이라고 불렸다.

 

15년 후 그는 더 큰 파란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무소속으로 경남도지사에 당선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낙점해 내려 보낸 한나라당 후보, 이달곤 전 행전안전부 장관을 눌렀다. 1995년 민선 자치단체장 시대가 시작된 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한나라당의 권력 독점에 균열을 일으켰다. 6·2 지방선거에서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 된 김두관 경남지사 당선자 이야기다.

 

그의 당선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 군수 당선 이후 2002년과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에 도전했지만 모두 낙선했고 1988년 총선, 17대·18대 총선에도 출마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는 고향인 남해와 경남 지역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이런 뚝심이 6월 2일의 파란을 만들었다.

 

다섯 번 떨어져도 포기 안 해... 뚝심이 만든 파란

 

10일 경남 창원의 '경남도지사직 인수위원회' 사무소가 꾸려진 경남도민의집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대담을 나눈 김두관 당선자도 이 같은 진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 11월 도지사 출마 결심을 했을 때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승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떨어져도, 도민들이 야박하게 굴어도 다른 데로 안도망가고 원칙을 지켰으니 '이만하면 한번 믿어볼만 하지 않을까' 인정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부모를 죽인 원수도 아닌데 또 내치겠느냐 싶었다."

 

지난달 11일 후보 신분으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했을 때도 김 당선자는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었다. 그리고 그의 장담은 현실이 됐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70세가 넘은 할아버지 한 분을 새벽 청과물 시장에서 만났는데 그분이 이러시더라. 이번에는 김두관 찍는다고.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있는 아들이 전화를 해서 이번에는 김두관 찍으라고 했다'고 하셨다. 이 분뿐만 아니라 많은 어르신들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1995년 남해군수에 당선됐을 때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승리를 예단하지는 않았지만 초접전 싸움이 될 것 같다는 감을 잡았다."

 

김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등 야 3당과 시민사회가 하나로 뭉쳐 지방권력을 교체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뒀다. 영남에서 민주개혁세력이 지지하는 색깔 있는 무소속 후보의 당선은 향후 정치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색깔 있는 무소속의 당선, 이는 선거 혁명"

 

"이번 승리로 영남의 견고한 지역주의 장벽에 작은 구멍 하나를 냈다. 또 저뿐 아니라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의 후보들이 기초단체장이나 광역 및 기초 의원에 많이 당선됐다. 앞으로는 경남에서 한나라당의 선택을 받으면 무조건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도정을 잘 운영하고 의회 활동을 잘하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다. 정책과 가치, 비전을 중심으로 각 당의 경쟁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선거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당선자 신분이 된 후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앞선다고 했다. 지난 15년간 한나라당이 독점했던 도정과는 차별화된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특히 과거 민주화 운동 경력을 가지고 정치권에 진출한 많은 386세대들이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은 터다. 그만큼 김 당선자는 물론 이번에 함께 당선된 송영길(인천), 안희정(충남), 이광재(강원) 등 40~50대 젊은 정치인들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정말 민심은 무섭다. 바다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고 했다. 야권 후보들이  무조건 잘해서 이번에 당선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국민들의 요구를 잘 받아 안아서 한나라당보다 잘한다, 이렇게 달라지는구나를 보여주지 않으면 4년 후 다시 뒤집힐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당선된 야권 단체장들은 그동안 실패도 겪어 보면서 내공이 쌓인 사람들이다. 이런 후보군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정치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민주개혁진영에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김 당선자가 처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경남도의회만 해도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과반이 넘는 38명이고 경남지역 18명의 시장군수들 중 11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김 당선자로서는 '여소야대' 구도에서 도정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셈이다. 난관이 예상되지만 김 당선자는 "오히려 도민에게는 이익"이라며 태연한 태도다.

 

"한나라당 장악한 도의회와 긴장관계, 도민에 이익"

 

"그동안 도지사의 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의회마저 한나라당이 독점하다 보니 예산 편성과 집행이 파행적이었다. 도민들이 그만큼 손해 봤다. 하지만 앞으로 한나라당이 얼마나 엄격하게 '김두관 도정'을 감시하겠나. 또 한나라당이 과반이 넘는다고 하지만 야권 의원수도 11명이나 된다. 건강한 긴장관계가 형성되면 도민들에게 이익이다."

 

김 당선자가 설정한 차별화 방향은 풀뿌리 자치 확대와 도민 삶의 질 개선이다. 광역단체의 권한과 예산을 주민 생활과 밀착돼 있는 시와 군에 돌려주고 무상급식 등 교육과 복지 확대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이장, 군수 등 풀뿌리 자치운동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저는 주민들과 직접 맞닥뜨리는 기초자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지사 취임 후 광역 단체가 시와 군의 예산 지원을 강화해서 지역의 사업들을 확실하게 지원하려고 한다. 또 대규모 개발 사업보다는 도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환경과 문화, 복지와 교육에 더 많은 예산과 자원을 배분할 생각이다. 무상급식도 도에서 재원을 마련해 지원하고 우리 농민들의 소득 증대에 연결되도록 급식지원센터를 만들 계획이다."

 

김 당선자는 특히 4대강 사업 저지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11일 출범할 인수위에 토목전문가와 환경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 '4대강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4대강 사업 저지 활동에 나서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지역주민 현안 사업 올스톱"

 

"4대강 사업 제고해서 거기에 들어가는 예산을 민생과 복지로 돌려야 한다. 4대강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부자감세가 이어지면서 경남도만 해도 중앙에서 와야 할 예산 2조7000억 원이 오지않고 있다. 각 시군별로 적게는 200억~300억, 많게는 500억~600억씩 예산이 줄어들면서 주민숙원사업이 모두 차질을 빚고 있다.

 

수질개선과 지천정비는 해야 하지만 보 건설등 운하 건설 사전 작업에 해당하는 사업은 중단해야 한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시도지사와 힘을 합쳐서 반드시 저지하겠다. 대통령에게 민심을 들어달라고 강력히 요청하고 싸울 생각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개발도상국 수준에 있는 나라의 리더로서는 참 잘할 분이다. 하지만 참여민주주의가 활발하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추구해야 할 시점에 있는 나라의 리더로서는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사회경제적 민주화 발전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오히려 지난 10년간 완성된 정치적 민주주의 조차도 거꾸로 돌리고 있다.

 

정치의 요체는 국민들 배 부르고 등 따뜻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국민들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국민들 마음이 너무 불편해졌다."

 

"김두관, 사이클링히트에 홈런만 남았다"

 

야권에서 야권의 불모지였던 경남에서 '이변'을 만들어낸 김 당선자는 다른 야권 광역단체장 당선자들과 함께 차세대 리더로 부각되고 있다. <오마이TV>를 통해 생방송 중계된 이날 대담에서 누리꾼들이 직접 김두관 당선자에게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를 통해 "이장부터 군수, 이제는 도지사까지 행정가로서 모든 길을 걷고 있다"며 "남은 곳은 총리와 대통령뿐"이라고 속마음을 물었다. 오연호 대표도 "야구에 싸이클링히트가 있는데 현재 단타, 2루타, 3루타까지는 친 셈이고 홈런이 남은 상황"이라고 거들었다.

 

"운이 좋으면 홈런을 칠 수 있을까요?(웃음) 욕심으로 할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사람의 욕심을 뛰어넘는 자리가 있다. 총리나 대통령은 욕심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일단 도정에 전념할 생각만 가지고 있다. 정책으로 승부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부터 근 6개월 동안 도지사 당선을 향해 쉼 없이 달려온 김 당선자는 인수위가 공식 출범하는 11일부터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쇄도하는 행사 초청도 모두 뿌리치고 있다는 그는 인수위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큰 틀의 도정 전략을 구상할 계획이다. 고향인 남해 바닷가를 산책하는 게 취미라는 김 당선자. 앞으로 며칠 뒤 남해에 가면 바닷가를 거닐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태그:#김두관, #지방선거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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