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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마을에 이웃해 살면서 자주 마실을 오곤 하던 정든 이웃, 순자 아줌마네가 도시로 이사를 떠났습니다. 오래 전 남편을 잃고 딸 셋을 혼자 힘으로 키우며 고생하고 살아오신 순자 아줌마는 시골 외가집의 착한 맘씨와 푸근한 인정이 넘치는 '국민 외숙모'같아서 참 좋아하던 분이었습니다.

아욱꽃 같고 쑥갓꽃 같은 아줌마는 요즘 찾아 보기 힘든 순도 100 퍼센트  무공해 인물입니다. 욕심을 부리거나 이해타산을 하는 걸 본 적이 없고, 한 치도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늘 정직하게 노동해서 살며 이웃 간 궂은 품앗이도 마다하지 않던, 있어 줘서 고마운 , '웰빙 이웃' 이었습니다. 그런 아줌마가 이사를 가다니, 많이 서운합니다.

                                      #1. 순자 아줌마네가 살던 집 

순자아즘마가 살던 집. 자물쇠를 채워놓은 녹슨 양철대문.
 순자아즘마가 살던 집. 자물쇠를 채워놓은 녹슨 양철대문.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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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는 날 아침, 작별인사를 하려고 서둘러 아줌마네 집에 갔더니 어느 새 떠나고
녹슨 양철대문에는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사간 집 앞 골목. 가스통을 그대로 놓아두고 갔다.
 이사간 집 앞 골목. 가스통을 그대로 놓아두고 갔다.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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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블럭으로 담을 쌓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이 집은 젊은 시절 아줌마의 남편이 직접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이 집에서 거의 30년을  살았다고 해요. 이사를 간 집은 도시가스가 공급되는 새로 지은 아파트라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이사 오는 사람 쓰라고 엘피 개스통을 그냥 두고 갔나 봅니다.

"우리 집에 도시까스두 들어와, 우리 집에 화장실도 두 개 이서, 우리 집 현관에 신발장두 아주 큰 거 이서, 우리 집에 부엌에 라지오두 나와, 우리 집에 베란다두 이서, 우리 집에...."

난생 처음 아파트에 살게 된 아줌마는 어린애처럼 좋아하며 새 집 자랑을 늘어놓았지요.
                                  
                                  #2. 화장실, 1978년 3월 29일 준공

집 옆 마당에 시멘트블럭으로 지은 화장실
 집 옆 마당에 시멘트블럭으로 지은 화장실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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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아줌마네 마당 옆에 있는 '화장실'입니다. 그런데 왠지 화장실보다는 '변소' 또는 '뒷간'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긴 해요.

      
 '화장실'이라고 새긴 화장실 담벽
 '화장실'이라고 새긴 화장실 담벽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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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3월29일 준공한 화장실
 1978년 3월29일 준공한 화장실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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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붕 아래 문짝 위, 벽에 새긴 글씨를 보니 '화장실'이 맞네요. 게다가 옆에는 '1978, 3, 29 준공'이라고 엄격하게 새긴 글씨도 보이네요. 이제 보니 짧지 않은 30년 '역사'를 간직한 엄연한 '준공필 건축물'이었군요.

                                             #3. 은행나무 전설

화장실 옆의 은행나무
 화장실 옆의 은행나무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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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둥 한쪽 면이 깎여 허옇게 속살을 드러낸 은행나무
 밑둥 한쪽 면이 깎여 허옇게 속살을 드러낸 은행나무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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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옆에 제법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순자 아줌마 큰 딸 양임이가 초등학생 때 식목일 숙제로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은행나무도 화장실 못지 않게 이곳에 자리를 잡게된 짧지 않은 내력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지요. 

오른쪽 사진에서 나무 밑둥에서 조금 올라간 윗 부분에 심하게 깎인 흔적을 볼 수 있는데요, 그렇게 된 데에는 다 사연이 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남편이 죽고 나자 혼자 힘으로 생계를 책임짐은 물론, 모든 집안 일을 도맡아 해야 했던 아줌마는 앞집 소라 할머니가 집 가까이에 은행나무가 있으면 좋지 않다고, 은행나무 뿌리가 집 밑의 땅 속으로 마구 뻗쳐 들어와서 집이 금방 무너지게 될 거라고 엄포에 가까운 소리를 들은 날부터 잠도 못 잘 만큼 걱정이 컸다고 해요.

걱정 걱정 하던 끝에 집이 무너지기 전에 서둘러 나무를 없애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도끼질이나 전기톱질 말고 아줌마 자신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부엌 칼이나 낫으로 낮이나 밤이나 열심히, 열심히 깎아댔다고 해요.

큰딸 양임이의 식목일 숙제로 아줌마네 마당에 심겨진 죄 밖에 없는 가엾은 은행나무는 허풍쟁이 소라 할머니의 호들갑과 순진한 순자 아줌마의 기우 때문에 평생 지울 수 없는 고약한 흉터를 안고 살 수 밖에 없게 된 거지요.

낫과 칼로 깎는 것 말고도 나무를 죽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온갖 민간요법(?)을 다 썼다고 하더군요. 동네사람 어느 누구의 코치를 받았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뿌리 쪽에 조선간장을 항아리째 들러 붓기도 하고, 제초제를 가져다 뿌려보기도 하고, '퐁퐁'이나 락스 따위를 부어보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나무는 끄떡도 하지 않고 자라 봄이면 빼먹지 않고 연두빛 새 잎을 틔워내고, 여름이면 푸른 잎으로 무성한 그늘을 만들고, 가을엔 노랗게 물 들인 잎을 마당과 화장실 지붕 위에 우수수 쏟아 놓기도 하고, 알알이 노란 은행 열매를 가을 바람에 후드드 떨어뜨려 놓기도 하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아줌마네 집 마당을 지키고 우뚝 서 있었다는 겁니다.

정월에 새로 담은 조선 간장을 몇 번이나 통째로 나무에 들러 붓고 몇 천 번, 몇 만 번의
칼질과 낫질을 나무에 가했는진 모르겠지만, 모두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부질없는
짓이란 걸 깨달은 아줌마가 결국은 제풀에 꺾이고 말았던 거죠.

자신의 삶에 언제 닥칠지 모를 재난과 위기 앞에서 어느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결방법을 찾으려 해야만 했던 홀로 된 세 아이의 어머니, 순자 아줌마가 당시 얼마나 절실했으면 그리 했을까요!

이처럼 기구한 은행나무 전설을 들었을 때, 아줌마를 그만 와락 끌어 안아주고 싶은 걸 겨우 참았지요. "얼레, 왜 이래 동생, 모 하는 거야" 하면서 수줍어 어쩔 줄 몰라할 것 같아서요.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나 어울릴 법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순자 아줌마의 삶은 그대로 꼭 한편의 동화 같고 전설 같기만 해요. 영악하고 계산적인 태도와 과학적, 합리적 사고만이 가치를 인정받는 이 시대에 아줌마의 은행나무 전설이 어이없는 웃음을 주면서도 한 편으로, '세상을 사는 법'에 대해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보는 계기를 안겨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4. 마지막 품앗이 

    
끈으로 단단히 엮어놓은 옥수숫대
 끈으로 단단히 엮어놓은 옥수숫대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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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태풍에 넘어가지 않도록 꼼꼼히도 엮어맸다.
 비바람, 태풍에 넘어가지 않도록 꼼꼼히도 엮어맸다.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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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아줌마네 집을 중심으로 앞에는 소라 할머니네 집이 있고, 아랫쪽에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집이 하나 더 있지요. 순자 아줌마는 '아래 할머니'라 부르더군요. 장마 때 비바람에 옥수수대가 넘어지지 말라고 아래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네 옥수수 밭의 옥수수대를 비닐끈으로 단단히 동여 매 놓았는데, 이것이 순자아줌마가 동네에서 마지막으로 행한 품앗이가 되었습니다.

소라 할머니도, 아래 할머니도, 다 일찌감치 영감님을 잃고 혼자 지내시는 분들입니다. 이 두 할머니는 한마을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봐도 어느 때고 싫은 내색 한 번을 하는 적이 없고 남의 부탁 냉정히 거절할 줄도 모르는 착한 순자 아줌마를 며느리 시집살이 시키듯, 저마다 은근히 부려먹곤 했던 겁니다. '국민 외숙모'에 '국민 며느리'였던 셈이라고 할까요?

어느덧 환갑을 넘긴 아줌마가 외손주를 본 뒤부터는 할머니들의 노동력 제공 요구가 있을 때마다, "나두 이제 손주까지 보고 환갑예여. 나두 힘들어여"하고 볼멘 소리를 내뱉어 보기도 하지만 입으론 그렇게 말하면서도 몸은 벌써 할머니들의 민원이 담긴 배추밭으로, 주방으로, 뒤란 빨래터로 재게 움직여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침개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으며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함께 품앗이로 힘을 보태 해결하기도 하고, 애경사를 나누고, 때로는 옥신각신, 별 일 아닌 걸 갖고  다투기도 하고, 몇 날 씩은 서로 말도 않고 남남처럼 지낸 적도 없지 않았겠지만, 그러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면서 벗 삼아, 가족 삼아 그렇게 지내온 것일 테지요. 사실 우리네 전통 농경사회 속 공동체 삶의 모양새란 게 이런 것 아니었겠어요?

좀 과한 욕심으로 마을에 심심찮게 분쟁을 일으키곤 하시는 소라 할머니와 순자 아줌마는
단짝처럼 붙어 지낸 시간이 많은 만큼, 꼭 애들 다투듯 티격태격 할 때도 많았습니다. 들어 보면 참 다투는 이유가 싱겁기 그지 없습니다.

'니가 우리 집 장 맛이 짜다느니 싱겁다느니 동네 흉을 보고 다닌다는데 사실이냐?'
'우리 집 문 앞의 길이 어째서 할머니 땅이라고 유세냐. 우리 딸이 등기 떼 봤더니 나라 땅이라 더라.' ... 뭐 대충 이런 식입니다.

그래도 소라 할머니는 이사 가기 전 날, 저녁 밥이나 한끼 지어 먹여 보낸다고 순자 아줌마를 자기 집으로 초청해 정성스럽게 준비한 최후의 만찬을 함께 나누던 끝에 급기야 찔끔 눈물을 떨구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5. 임자 잃은 텃밭

   
마당 한 켠 공터에 심어놓은 호박은 무성하게 덩굴을 지었지만
 마당 한 켠 공터에 심어놓은 호박은 무성하게 덩굴을 지었지만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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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면적의 공터를 밭으로 일궈 부지런히 가꾸었건만
 적은 면적의 공터를 밭으로 일궈 부지런히 가꾸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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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옆 돌 무더기 위로 올린 호박 넝쿨과,  콩 꼬투리가 제법 여물어 가는 콩밭, 그리고 고추 밭 까지...다 바지런한 순자 아줌마가 마당 앞 공터였던 자갈밭을 일궈 가꾸어놓은 것 들입니다. 임자를 잃은 밭 작물들인 셈인데, 이웃들끼리 알아서 나눠 먹으라는 순자 아줌마의 당부가 있었답니다. 먼저 가서 따 먹으면 임자가 되는 것이지요. 

뒤뜰에 매단 빨랫줄도 텅 비어 있고
 뒤뜰에 매단 빨랫줄도 텅 비어 있고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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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임자 잃은 뒤란의 빨랫줄. 아줌마의 옷들은 시장에서 산 낡고 허름한 것들뿐이었지만 자주 깨끗하게 빨아입곤 해서 옷에서 늘 잘 익은 햇살 냄새가 났어요. 볕 잘드는 아줌마네 집 뒤란가의 빨랫줄에 매달려 펄럭거리는 아줌마의 해진 런닝, 칠부 몸뻬바지, 줄무늬 남방, 꽃무늬로 어지러운 버선... 정겨운 풍경같기만 하던 그 모습도 안녕...

#6. 오솔길, 마실길

집과 마을을 이어주는 작은 마실길
 집과 마을을 이어주는 작은 마실길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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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아줌마네 집이 있는 쪽과  마을이 있는 쪽을 이어주는 작은 나들목입니다. 하루에 한 번 꼴로 이 길을 지나 마실을 오곤 하던 아줌마의 반가운 모습도 이젠 안녕입니다.

아줌마의 무수한 발자국으로 다져지고 다져진 집 앞 골목길.
 아줌마의 무수한 발자국으로 다져지고 다져진 집 앞 골목길.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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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밖을 향해서 난 아줌마네 집 앞의 좁은 골목길, 어떤 포장도 되지 않은 흙 길이 오랜 세월 사람들이 찍고 지난 발자국에 의해 다져지고 다져져서 무척 매끄럽기만 합니다. 이 길 위에 순자 아줌마의 발자국이 다시 찍히는 날이 있을까요?

30년 넘도록 이른 새벽 잠을 떨쳐내고 일어나 이 좁은 골목길을 바삐 빠져 나가서 하루의 힘겨운 노동을 마치고 다시 이 길로 되돌아 오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 찍힌 아줌마의 발자국의 개수를 헤아릴 수나 있을까요?

외출하려고 막 집에서 나온 아줌마의 뒷모습
 외출하려고 막 집에서 나온 아줌마의 뒷모습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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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같이 장에 나가던 길에 뒤에서 장난처럼 찍어 두었던 아줌마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입니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자 아줌마의 모습을 이렇게나마 붙잡아 둬 봅니다.

                                   #7. 마지막 선물, 항아리 3종 세트

이사가면서 주고 간 항아리들
 이사가면서 주고 간 항아리들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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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딸네 아파트에서 살게된 걸 아줌마는 큰 소원풀이나 출세를 한 것 쯤으로 여기는지도 모르겠어요. 고단하고 지난한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초라한 시골집일랑 까맣게 잊고 살겠다고 다짐이라도 했는지 몰라요.

철철이 장을 담고 김장을 담고 동치미를 담곤 하던 커다란 항아리에 배인 고단함까지 떨쳐버리고 싶은 아줌마는 오랫동안 자신이 쓰던 항아리를 세 개나 주고 갔습니다. 아줌마를 닮은 이 항아리 3종 세트를 보면서도 순자아줌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무우꽃 같고 배추꽃 같고 짠지독 같고 된장독 같기만 하던 순자 아줌마가 한 옥타브 높인 쾌활한 목소리로 "동생 모 해?" 하며 마을 아랫쪽 좁은 마실길로 접어들어 오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벌써부터 아줌마가 많이 보고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네이버블로그에도 실렸음



태그:#양철문, #은행나무,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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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서 우리 시대의 삶에 공감하며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문화, 예술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고 미디어 컨텐츠의 창작에도 많은 관심 가지고 있다. 몇 군데 사회단체에서 우리 사는 세상이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게 하는 일에 조금씩 힘을 보태며 어울리며 나누며 살려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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