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물찻오름가는 샤려니 숲길은 참 평화롭고 고요한 오솔길이다.
 물찻오름가는 샤려니 숲길은 참 평화롭고 고요한 오솔길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오랫동안 별러왔던 겨울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눈내린 겨울날 화산섬 제주는 어떤 느낌일지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지도를 펼쳐들고 어디를 달려갈까 유심히 보던 중 제주도 한가운데 내륙에 난 도로들이 눈에 띄었다. 제주도 자전거 여행하면 보통 호쾌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에메랄드빛 해안가를 달리는 상상을 한다.

이번엔 그런 뻔한(?) 여행에서 벗어나 제주도의 내륙을 횡단하는 거의 도전에 가까운 자전거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도전'이란 표현을 한 건 제주 내륙 혹은 중산간 도로를 횡단한 자전거 여행자나 여행기를 찾아보기 힘들어서다. 그만큼 자전거로는 힘든 길이라 생각되어 내 애마인 접이식 자전거의 휴대성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표고가 높은 중산간 내륙지역을 달리다 너무 힘에 부치거나 해가 저물면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이동하는 것이다. 제주도의 버스들은 다행스럽게도 접이식 자전거가 들어갈 수 있는 짐칸이 있기 때문이다. 접이식 자전거는 제주행 비행기에도 추가 비용없이 그냥 실어주니 누가 이런 자전거를 생각해 냈는지 기특하고 고맙다.

귀에는 함성이 들리고 고개는 못들겠고... 1112번 제주 비자림로  

제주공항에서의 포근했던 눈은 중산간길에 들어서니 산바람에 실린 하얀 포탄으로 돌변한다.
 제주공항에서의 포근했던 눈은 중산간길에 들어서니 산바람에 실린 하얀 포탄으로 돌변한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제주 공항에 내리니 아니나 다를까 하늘에서 눈이 펄펄 내리며 자전거 여행자를 반겨준다. 같은 겨울 날씨지만 제주의 겨울은 맵지 않고 내리는 눈은 포근하게 느껴진다. 역시 겨울 제주에 잘왔어! 내 여행 계획을 듣고 걱정스런 얼굴을 짓는 공항의 관광안내소 직원에게 중산간길 자전거 여행의 조언을 듣고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제주 중산간 내륙의 횡단길인 1112번 도로의 초입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버스도 끙끙대며 힘겨워 하는 언덕도로를 올라 '물찻오름 입구' 정류장에 내리니 이름도 아름다운 샤려니 숲길이 기다리고 있다. 분화구에 호수가 고여 있다는 물찻오름으로 가는 샤려니 숲길 탐방로를 걸어보았다. 하얀 눈이 쌓여서 그런지 더욱 호젓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숲속의 오솔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저멀리 동쪽 중산간 지역의 다랑쉬, 용오름을 향해 1112번 도로를 달린다. 이 도로는 비자림로라고 불릴정도로 우람하고 키가 큰 삼나무들과 소나무 숲이 길 양옆에 길게 도열해 있다. 이런 장관의 숲길을 달리게 되다니 마음은 설레이고 다리에서 힘이 불끈 솟는다. 하지만 역시 제주의 속살, 중산간길은 만만치 않았다.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 신나게 페달을 밟은지 얼마 안되어, 제주 공항에서의 차분했던 겨울 바람과 부드러웠던 눈발이 갑자기 180도 돌변한다. 거친 산바람이 불적마다 몸은 휘청이고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어찌나 크고 생생한지 바람이 귀에 대고 함성을 지르는 것 같다. 그런 바람에 실린 눈발은 안경을 순식간에 덮어버려 자꾸만 고개를 숙이게 한다. 천천히 내 옆을 지나가던 차안의 어떤 사람은 창문을 열고 핸드폰을 꺼내더니 눈발속을 기어가다시피 달리는 나와 자전거를 찍어댄다.       

독한 여행자의 길, 제주 중산간로

제주 산간 지역에 많이 사는 까마귀들은 그 울음소리부터 무척 영물스럽다.
 제주 산간 지역에 많이 사는 까마귀들은 그 울음소리부터 무척 영물스럽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중산간길가의 무덤들에 소복히 쌓인 눈이 이불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중산간길가의 무덤들에 소복히 쌓인 눈이 이불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날씨가 날씨인지라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들도 드물고 제주 해안가라면 종종 마주치던 자전거 여행자는 아예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중산간 곳곳에 놓여있는 눈쌓인 무덤들과 신령스럽게 들려오는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는 여행자를 더욱 고독하게 만든다. 투둑투둑 눈이 날아와 내 옷에 닿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다.  

얼마동안을 혼자 그렇게 달렸을까 아니 엉금엉금 기어갔을까 저 앞에서 스쿠터를 타고 저속으로 다가오는 초로의 아저씨와 스쳐 지나가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반가워 "안녕하세요!" 하며 꾸벅 인사를 했다. 묘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휙 지나쳤다고 생각했던 아저씨의 스쿠터가 곧 유턴을 하더니 내 자전거 옆으로 다가와서 어디를 가냐고, 길은 알고 가느냐고 걱정을 해주신다.  

에베레스트와 낭가파르바트라는 거대한 산을 혼자서 그것도 무산소로 올라간 라인홀트 메스너라는 독일사람은 고독에 흰고독과 검은 고독이 있다고 했다. 오늘 이처럼 눈내리는 날인적드문 제주 중산간길을 홀로 달려보니, 나도 그처럼 고독에 대해 고독의 여러 양상에 대해 말할 수 있겠구나 싶다.  

유명한 관광지인 산굼부리를 지나니 비로소 사람들이 나타나고 배가 고파 그렇게 찾던 식당들이 보인다. 제주도에 오면 꼭 먹곤 했던 제주 고유의 음식 고기국수를 시켰는데 눈폭탄 맞은 내 행색이 안되었는지 고기수육이 듬뿍 들어가 있다. 국물은 물론 반찬으로 나온 마늘 짱아찌, 청양고추, 깍두기 까지 모두 싹싹 비웠다.   

겨울 제주의 중산간길은 그 어느 길보다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느낌이 든다.
 겨울 제주의 중산간길은 그 어느 길보다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느낌이 든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바람에 갈기를 날리며 묵묵히 서있는 초원의 말들을 보니 같이 달리고 싶어졌다.
 바람에 갈기를 날리며 묵묵히 서있는 초원의 말들을 보니 같이 달리고 싶어졌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둥그런 오름아래 무덤들... 편안한 휴식인 '죽음'을 만나다

대청동 사거리를 지나면 1112 도로 주변에 제주 내륙 산간의 상징 오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도로에서 잠깐 벗어나 오름 가는 좁은 길로 들어서 본다. 자전거가 체인소리를 내며 지나가자 길 옆 수풀에서 풀썩풀썩 짐승들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새들이 재잘거리며 경계신호를 나누고 꿩들이 후루루 날아오른다.

오름 밑 초원에서 방목중인 말들만이 내가 탄 금속말의 출현에 놀라는 기색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갈기를 휘날리며 묵묵히 서있다. 그런 말들의 무리를 가까에서 마주하니 나도 저 들판에서 말들과 함께 무작정 달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샘솟는다. 더할 나위없이 원초적이고 야성적이며 마음을 흔드는 풍광이다.

둥그런 오름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무덤들에서 죽음은 나락의 끝으로 떨어지는게 아닌 편안한 휴식처럼 느껴진다.
 둥그런 오름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무덤들에서 죽음은 나락의 끝으로 떨어지는게 아닌 편안한 휴식처럼 느껴진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길 안쪽까지 손을 흔들며 반기는 억새들에게 나도 손을 내밀어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달렸다. 그렇게 민오름과 칡오름, 아부오름을 지나 저 앞에 보이는 오름의 큰 형 다랑쉬 오름, 용오름을 향해 다가간다. 오름은 올라서서 보이는 주변 풍경도 참 멋있지만 오름을 찾아 가는 길 또한 기억에 오래 남는다.

겨울 바람에 춤을 추며 휘파람을 부는 듯한 소리를 내는 억새꽃들과 오름 주변에 흔히 자리한 무덤들 때문이다. 특히 둥그런 오름아래 옹기종기 자리한 무덤들을 보면 죽음은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 편안한 휴식처럼 느껴진다.

마침내 높고 강한 인상의 다랑쉬 오름과 부드러운 능선이 어머니의 품을 떠올리게 하는 용눈이 오름에 도착했다. 정상에 걸어 올라서니 주변 풍경들과 오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거칠기 그지 없었던 바람은 이제야 친근하게 나를 툭치고 밀친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산간 사이의 한줄기 도로는 내가 과연 저 길을 달려 왔는지 실감이 나질 않게 희미하다. 눈내린 오름 비탈면을 노루 한마리가 날아가듯이 뛰어가는 모습에 넋을 잃고 쳐다보는 사이 겨울 해가 오름들 사이로 저물어 가고 있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1112번 도로의 초입인 물찻오름 입구에 내려 동쪽의 다랑쉬, 용오름을 향해 중산간길을 달려갔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1112번 도로의 초입인 물찻오름 입구에 내려 동쪽의 다랑쉬, 용오름을 향해 중산간길을 달려갔다.
ⓒ NHN 지도 캡쳐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2월 9일 이 길을 달려갔습니다.



태그:#자전거여행, #제주도, #오름, #1112번도로, #중산간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