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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방송'에도 '1박 2일'이나 '100분 토론' 같은 프로그램이 나올까요? 지난 연말 4개 종편 사업자들이 한꺼번에 등장했지만 당장 지상파 뺨치는 산뜻하고 격높은 방송을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수 신문의 여론 독과점과 작고 알찬 매체들의 생존 문제부터 한정된 광고 시장을 둘러싼 시청률·선정성 경쟁에 이르기까지 불안과 우려가 가득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민언련,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언론·시민단체들과 함께 '조중동 방송'의 실체를 하나 하나 밝힙니다.... 편집자말
지난 1월 8일 밤 방영된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서 주인공 김민재(유승호 분)가 삼성전자 태블릿 갤럭시탭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할아버지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다.(MBC TV 화면 갈무리)
 지난 1월 8일 밤 방영된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서 주인공 김민재(유승호 분)가 삼성전자 태블릿 갤럭시탭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할아버지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다.(MBC TV 화면 갈무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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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이게 드라마야? 갤럭시탭 광고야?"

지난 1월 8일 밤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을 보던 시청자들은 잠시 착각에 빠졌다. 주인공 김민재(유승호 분)가 뜬금없이 7인치 태블릿PC로 뉴스를 검색하고 할아버지(이순재 분)와 영상 통화하는 모습을 2~3분 동안 연이어 보여준 것이다. 로고만 가렸다 뿐 화면 가득 채운 제품은 당시 틀림없는 삼성전자 갤럭시탭이었다. 

[장면 #2] 대학평가 언론사에 1억짜리 '통 큰 광고'

지난해 10월 18일 <조선일보>에는 광주광역시 소재 국공립 특수대학인 광주과학기술원(GIST)을 소개하는 '특집면'이 실렸다. 온통 이 대학 광고로 도배된 8면짜리 '스폰서 섹션'에 들어간 광고비는 무려 1억 원. 이 대학 1년 홍보 예산이 4~5천만 원 정도인 걸 감안할 때 '통 큰' 씀씀이였다. 한 술 더 떠 이 대학은 <조선일보> '아시아 대학평가'에서 '교원당 논문수' 1위를 차지했다고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갤럭시탭 드라마'와 '통 큰 스폰서'가 만났을 때

이 두 장면을 보면 올해 하반기 개국할 이른바 '조중동 방송'(종합편성채널)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일종의 편법 간접광고(PPL)인 '갤럭시탭 드라마'가 현 정부 방송광고 규제 완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보여준다면, 대학평가 등 기사와 연계된 광고 지면인 '대학 특집'은 종편 신문사 직접 광고 영업의 폐해를 보여준다.

'갤럭시탭 드라마'는 한동안 누리꾼들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방송통신심의원회도 지난 2월 23일 "협찬사 제품을 과도하게 노출해 직접적 광고 효과를 줬다"며 MBC에 '경고' 조치했다. 그 뒤 <욕망의 불꽃>에 갤럭시탭은 다시 출연하지 않았지만 주인공들은 여전히 삼성 '갤럭시S'로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월 방송법 시행령을 바꿔 전체 방송 분량의 5%까지 간접광고(PPL)를 허용했다. 음성적인 간접광고를 양성화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기업 협찬'을 이용한 '편법 간접광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나마 지상파 방송은 방송광고판매대행사(미디어렙)인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를 거쳐 광고를 받기 때문에 '투명성'이 확보되지만 종편의 경우 광고 직접 영업이 허용되면 '간접 광고' 규모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갤럭시탭 드라마'처럼 삼성전자 같은 대형 광고주가 단지 제품 협찬에 그치지 않고 드라마 내용까지 좌지우지 할 경우 프로그램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평가' 언론사와 대학들의 '부적절한' 공생

방송사가 직접 광고 영업에 나설 경우 그 영향은 드라마 등 예능·교양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뉴스, 시사 등 보도 프로그램까지 파급될 수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바로 신문사에서 별지로 내놓는 '스폰서 섹션'이다. 

특히 앞서 '대학 특집'과 같은 대학 광고는 유독 자체적으로 대학 평가를 실시하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집중되고 있다. 

<조선일보> 8면짜리 특집 '글로벌 명문 광주과학기술원'편에는 이 대학 전면광고 2개와 하단광고 3개가 실렸다. 광주과학기술원 대외협력처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학교 홍보 차원에서 우리가 <조선>에 요청해서 이뤄진 것"면서 "우리보다 앞서 포항공대(포스텍), KAIST, 성균관대도 비슷한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고 밝혔다. 

온통 칭찬 일색인 <조선일보> 기사에서 "지스트는 또 QS와 조선일보가 함께 실시한 '2010 아시아 대학평가'에서 '교원당 논문 수' 부문 아시아 1위에 올랐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앞서 <조선일보> 포스텍 특집에도 "(포스텍은)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에선 올해 아시아 전체 14위였으며, 종합대학을 제외한 특성화대학 중에서는 아시아 1위였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10월 18일 <조선일보> 특집 '광주과학기술원(GIST)'편
 지난해 10월 18일 <조선일보> 특집 '광주과학기술원(GIST)'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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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윤리위 연이은 '경고'도 '쇠귀에 경 읽기'

이들 대학특집을 비롯한 '스폰서 섹션'은 신문업계 자율심의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에서 연거푸 주의-경고 조치를 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다보니 신문사들은 전혀 개선 조짐이 없다.

신문윤리위는 지난 2월 23일 <조선일보> 대학특집 '글로벌 명문 서강대'편(1월 31일자)이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위반했다며 '주의' 조치했다. 심사위원들은 "특정 대학에 대해 장점 일색으로 소개하고 해당 대학 광고를 같은 섹션 지면에 함께 실었다"면서 "이는 독자나 소비자들에게 정확하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지 못할 뿐더러 신문의 독립성과 신뢰를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이미 지난해 7월 23일 카이스트편을 시작으로 포스텍, 성균관대 등에 이르기까지 나오는 족족 '주의'를 받았고 지난해 11월 30일 한양대 편 때는 주의가 3번 누적돼 '경고'로 한 단계 높아졌지만 <조선일보>의 '대학 특집'은 멈추지 않았다. 역시 지난해 94년부터 '대학평가'를 진행해온 <중앙일보> '대학 특집' 역시 지난해 하반기에만 3차례 '경고'를 받았다.

하지만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관계자는 20일 전화 통화에서  "(스폰서) 섹션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신문이나 해외 언론도 강화하는 추세"라면서 "윤리위 경고는 섹션을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보완하라는 메시지여서 최대한 품질과 품위를 유지하겠다"고 밝혀 중단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대학 총장-교수들 "대학 서열화하고 수익 사업으로 활용"

지난 1994년 <중앙> '대학평가'에 이어 <조선>은 지난 2009년부터 '아시아대학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가에선 언론사 대학평가가 전문성과 정확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고 '광고 압박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해왔다.

급기야 전국 4년제 200여 개 대학이 가입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은 지난해 10월 "서열화하는 대학평가에 협조할 수 없으며, 순위 발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의문을 내놨다. 이에 앞서 '서울 8개 대학 교수협의체 연합회' 역시 지난해 9월 성명에서 "일부에서는 언론사들이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을 등에 업고 대학평가를 중요한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8개대학교수협의체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진배 연세대 교수평의회 의장은 최근 전화 통화에서 "한국 실정에서 대학 순위가 대학 행정 당국에 중요한 '팩트(사실관계)'여서 어쩔 수 없이 (해당 언론사에) 광고도 많이 하게 된다"면서 "(언론사 압력이 없더라도) 스스로 알아서 잘 보이려고 광고 내는 경향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의장은 "평가기관도 영리를 추구하고 외국에서도 그런 문제가 논쟁이 되는 만큼 국내도 피해갈 수만은 없을 것"이라면서 광고 게재가 대학평가 내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실제 <교수신문>에서 지난 2009년 <조선일보> 광고 흐름을 분석한 결과 '아시아대학평가' 결과가 발표된 5월에 전체 광고대비 대학광고 비율이 3월(2.6%), 4월(4.2%)로 증가하다 5월에 7.5%로 최고점을 찍은 뒤 6월(4.6%)로 낮아진 걸로 나타났다.

특히 <교수신문>은 "상위 20위권 대학에서 게재한 광고가 전체 대학 광고의 절반(46.6%)을 차지했다"면서 "이 때문에 매체 자체의 영향력과 별도로 '광고 압력'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시중, 종편 살리려 '광고 규제 완화'... 광고주는 '광고 압박' 걱정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앞줄 가운데)이 지난 1월 19일 롯데호텔에서 광고업계 CEO 간담회를 열고 광고산업 활성화 계획을 밝혔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앞줄 가운데)이 지난 1월 19일 롯데호텔에서 광고업계 CEO 간담회를 열고 광고산업 활성화 계획을 밝혔다.
ⓒ 방통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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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종편 사업자들의 방송 광고 영업에 날개를 달아주려 애쓰고 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지난 17일 인사청문회에서도 "2기에는 방송광고시장 파이를 키우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연말 대통령 보고에서도 의약품 광고, 중간광고 등 방송광고 규제를 대폭 완화해 2015년까지 GDP 1%(13조 8천 억 원 추정)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가 의료 단체까지 반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KBS, MBC, SBS 등 지상파방송 광고는 코바코에서 독점 판매했기 때문에 광고주와 직접 접촉하지 않았다. 코바코 외에 복수 미디어렙이 등장할 예정이지만 한나라당에선 종편에게 직접 광고 영업을 허용하는 안과 '1사 1렙'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반면 언론시민단체에선 종편 역시 지상파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는 만큼 '민영 미디어렙'에 포함시켜 직접 영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우려는 광고주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신문 광고 시장에서 조중동의 '광고 압박'에 시달려온 광고주들 역시 이들의 종편 광고 '직접 영업'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한국광고주협회에서 지난해 11월 회원사(54개사 응답)들에게 올해 광고 집행에서 가장 우려하는 걸 물었더니 '종편 등장과 광고영업방식(66.7% 복수응답)'을 가장 많이 꼽았고 '광고 및 협찬 강요'(57.4%), 과도한 매체 난립(44.5%) 등이 뒤를 이었다.

박현수 단국대 언론홍보학과전공 교수는 한국광고주협회 기관지 <KAA>(1, 2월호) 기고문에서 "직접 판매가 예상되는 종편 채널들이 과거 일부 신문 영업에서 보였던 강압적이거나 비상식적인 영업 행태를 보인다면 이는 결국 스스로 매체의 가치를 절하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머지않아 해당 매체는 광고주와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방송사가 광고 영업을 직접 하게 되면 신문사와 광고주간의 파행적인 광고 판매 행위가 그대로 나타날 것"이라면서 "이는 단순 광고 영업 문제가 아니라 보도와 프로그램 질에도 영향을 미치는 내용 문제여서 시청자 손익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그:#종편, #조중동방송, #최시중, #방통위,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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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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