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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석 내부 모습
▲ TAZARA 기차 안 일등석 내부 모습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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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을 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이 무엇일까?  여권에다 비자 받기? 물론 그렇다. 그 당연한 목적 말고, 부수적으로 신경 쓰이는 것은 이 나라에서 쓰고 남은 동전이나 지폐를 저 나라로 넘어가면 못 쓰니 그것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국경을 넘기 이전부터 그 부분을 감안해 조금씩 환전을 해서 쓰긴 하지만 이전 나라의 남는 돈은 물을 산다거나 휴지를 산다거나 과자 등을 사서 보조 식량(?)으로 비축해놓곤 했다. 기차 안에서 비자를 꽝 찍어주는 잠비아 가는 길도 예외는 아니었다. 각 나라의 지폐를 기념으로 모으는 중이라 그것만 빼고는 거의 다 써버리고 잠비아의 정거장 키피리 음포시역을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동아프리카를 잇는 타자라 기차. 중국에서 차관하여 1975년 완공되었다.
 동아프리카를 잇는 타자라 기차. 중국에서 차관하여 1975년 완공되었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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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칸에 침대 네 개가 있는 일등석에 들어서니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여인들이 있다. 물론 '맡은 사람이 임자'인 것은 전 세계가 비슷한 규칙인 것은 직감적으로 느꼈듯 나도 당연히 늦게 들어온 순서로 위 침대로 가서 내 짐을 정리했다. 이 기차에서 3일은 있을테고 두 밤은 자야 할 터인데 빨리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저절로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 아시안이라는 것. 6인실은 대부분 탄자니아나 잠비아 사람들로 보이고 일등석은 지역민들과 외국인들이다. 물론 외국인들도 모두 백인이다 보니, 한낱 피부색이 무슨 소용이라고 나와 비슷한 누런 색깔의 피부와 검은 머리를 한 아시아인을 무심코 찾고 있는 날 발견한다. 하필 또 이날 따라 그렇게 흔하게들 보였던, 전세계를 유랑하고 다니는 일본인 배낭 여행자조차 한 명 없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잠비아 영역에선 잠비아 돈만 받고, 탄자니아 영역에선 탄자니아 돈을 받는 점이 흥미롭다.
▲ 식당 칸 잠비아 영역에선 잠비아 돈만 받고, 탄자니아 영역에선 탄자니아 돈을 받는 점이 흥미롭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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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렇게 더 반가웠을까

기차에서의 이튿날, 음베야(MBEYA) 지역에서 탄 동양남자 한 명. 그의 이름은 류지(RYUJI). 일본국제협력단 (JICA)의 단원으로 탄자니아의 남서부지역 음베야에서도 한참 떨어진 시골에서 자동차 메카닉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반가운 아시안 류지와는 대화가 편하진 않았다. 류지는 영어에 능숙하지 않고, 나는 스와힐리어에 능숙하지 않았다.

"Did you eat lunch? i'm going to have... shell we go together?"(점심 먹었니? 나 지금 먹으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라고 하면 한번에 소통이 어려웠다. 그래도 그 문장 안의 런치는 알아들으니, 대화는 이런 식으로 전개되어야 했다. 밥숟가락 떠먹는 시늉을 하며 "런치?" 그 한마디면 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지는 스와힐리어를 조금 할 수 있었다. 역시 1년 이상 탄자니아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연륜이 묻어났다. 일본어와 스와힐리어의 어법이 비슷하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그러한지 일본인들은 생각보다 스와힐리어를 빨리 배우고 능숙하게 구사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대로 그림이 되는 곳.
▲ 기차 밖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대로 그림이 되는 곳.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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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 다른 친구들은 많이 있어? 네가 사는 곳 근처에?"
(Have you many friends? near by your home?)
"친구? 내 학생들이 내 친구야!"
(friends? my students!)
"류지! 그러면 자동차 메카닉은 어떻게 가르쳐? 자동차는 있어?
(Do you have a car? How could you teach?)
"그게 참 문제야. 자동차는 없어! 내가 칠판에다가 그려서 가르치거든"
(No car! Drawing and teaching. problem, problem!! Big problem!)
"그런데 좋은 소식이 있어. 내년에 엔진을 보내준다고 했거든. 그러면 훨씬 나아질거야."
(But good news. Engine coming next year! January. It will be better!)

대화는 말로 하는 것이 맞지만 꼭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관심만 있으면 그것이 서로를 좀 더 가깝게 이끄는 것이 대화다. 영어 단어 하나만 가지고 통하는 우리였지만 우린 서로 꽤나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탄자니아 영역에선 탄자니아 돈을 다 쓰고 기차에 탔으므로, 갖고 있던 달러를 류지가 갖고 있던 탄자니아 실링과 바꿔 식당칸에서 썼다.

장사를 해야 하는 시간. 기차밖의 여인들.
▲ 기차가 멈출 때 장사를 해야 하는 시간. 기차밖의 여인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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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라(TAZARA) 기차는 1970년 당시, 중국이 500만 달러의 무료대출을 출자하여 1970년에 시작해 1975년에 완공했다. 탄자니아-잠비아 간의 1,860킬로미터의 긴 라인의 엔지니어링은 중국에서 담당했으며 64명의 중국인을 포함한 160의 직원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거친 환경의 작업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첫 인상은, 좀 노후에 보였으나 이 정도의 인프라를 구축해 놓은 환경은 꽤 감사할 만한 일이었다.

타자라 기차엔 식당 칸과 바(BAR)가 있었는데 우리 둘 다 새롭게 안 사실이 있었다. 바로 탄자니아 땅을 기차가 달릴 땐 탄자니아 돈만 받고, 잠비아 영역을 달리는 즉시, 잠비아 돈인 콰차만 받는다는 것! 류지도 나도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 누가 달러를 마다할 것이라 생각하겠는가.

난 당시 모든 탄자니아 돈을 다 쓰고 달러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기차는 이미 잠비아 영역을 넘어갔다. 류지 또한 탄자니아 돈은 있었지만 잠비아 콰차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둘 다 비자를 받느라 사무원이 기차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곳에 있는 암달러상에게서 돈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어차피 한 끼쯤 굶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자도 조금 있었고 나에겐 무엇보다 한국에서 가져간 봉지 커피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당 칸에 가서 물어보니 잠비아 콰차만 받는다던 직원의 단호한 표정을 확인한 후였다.

세련된 음베야 역. 탄자니아 남서부의 주.
▲ 음베야 역 (MBEYA) 세련된 음베야 역. 탄자니아 남서부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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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노을을 헤치며 평야를 달리던 때, 누군가 내가 묵고 있는 칸을 노크했다.

" 아, 류지 무슨일이야? "
그를 확인하고 난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 저녁 먹으러 가자. "
" 저녁? 잠비아 콰차 있어? 그거만 받는다던데. "
" 아니야 내가 말했어. 알았대. 탄자니아 돈으로 페이하라고 직원이 그랬어. "
" 끼야~ 정말? 가자.가자! "

본능의 중요함을 새삼 깨달으며, 배가 고프니 예민해지는 세포들을 느끼다 밥이 들어가니 또다시 온화해짐을 느끼며 우리는 품위있게 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계산이 평탄치 않았다.
계산을 하는 직원이 탄자니아 돈을 흔들며, '이 돈 말고, 어서 잠비아 돈을 달'고 우리에게 소리쳤던 것이다. 왠지 장발장이 된 듯한, 부끄러움.

가뜩이나 류지는 영어로 설명을 하려니 힘든 듯 했다. 얼굴이 붉어지며 설명하려 애를 썼고 급기야는 얘기한 직원을 찾아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물론 난 그 자리에 남아서 류지와 직원을 기다렸다.

노을이 완벽히 사라지고 나서야 류지가 직원과 함께 돌아와 우리는 비로소 당당해 질 수 있었다. 진땀을 흘리며 자기의사를 전달하려던 류지의 모습은 내가 후에, 그를 돕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언덕 능선으로 기차가 전복되어 있는 모습.
▲ 기차 전복. 언덕 능선으로 기차가 전복되어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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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총 6개월의 여정을 바탕으로 기고합니다.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TAZARA 기차, #타자라 기차, #아프리카 기차, #탄자니아 잠비아 철도, #아프리카 종단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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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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