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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를 움직인 건 무엇이었을까? 이번 범죄를 미치광이 한 사람의 소행으로만 보기보다는 사건의 밑바닥에 놓인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 문제에 관한 두 사람의 진단을 소개한다.

 

먼저 살펴볼 것은 캐나다의 내과 의사이자 사회운동가인 제시 매클라렌의 분석이다. 매클라렌은 25일(현지 시각) 캐나다 대안언론 <래블>에 기고한 글에서 이 문제를 이슬람 혐오증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연결해 진단했다.

 

매클라렌은 브레이비크를 움직인 건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이슬람을 혐오하는 우익 정치"임을 분명히 했다. 매클라렌은 이 대목에서 브레이비크가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외국인을 혐오하는 진보당의 일원"이었음을 상기시켰다.

 

매클라렌은 2001년 9·11테러가 벌어지기 전에도 존재했던 이슬람 혐오증이 "지난 10년 동안 미국 내 무슬림을 희생양으로 삼아 (미국이) 국외에서 벌이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고조됐다"고 밝혔다. 이어 "서구 국가 중 이슬람 혐오 정책을 편 나라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국가들과 겹친다"고 지적했다.

 

매클라렌은 그 사례로 미국, 캐나다, 프랑스, 노르웨이를 지목했다. 미국은 "무슬림을 재판 없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감금"했으며, 프랑스는 "여학생이 학교에서 히잡(얼굴은 드러내고 머리만 가리는 무슬림 여성 복장)을 착용하는 것과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니캅(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무슬림 여성 복장)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히잡을 비롯한 무슬림 여성 복장 금지 문제는 '여성 억압의 상징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찬성 의견과 '무슬림을 비롯한 외국인 및 이민자 배척 의도가 담겨 있는 조치'라는 반대 의견이 맞섰던 사안이다. 이슬람권에서는 히잡 등의 착용 금지 조치를 반무슬림 정책으로 이해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매클라렌은 또한 캐나다 정부가 "무슬림 남성들을 체포해 테러 활동을 했음을 인정하라고 압력을 넣었고" 이 때문에 "(적잖은) 캐나다 무슬림이 해외로 떠났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무슬림의 기도 공간 마련에 반대하는 비주류의 캠페인을 증폭시켰다"고 캐나다 미디어도 비판했다.

 

"노르웨이 사회도 이슬람 혐오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매클라렌은 노르웨이 사회도 이슬람 혐오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매클라렌은 웹사이트 '이슬람 혐오증 감시'가 기록한 전 세계의 반무슬림 인종주의 사례 중 노르웨이와 관련된 다음 내용을 제시했다.

 

▲ 2006년, 노르웨이 초중등교육부는 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 및 여성의 니캅 착용을 금지했다.

▲ 2007년, 이민에 반대하는 베르겐의 한 정치가는 광장에서 무슬림이 기도하지 못하도록, 족발을 사용해 무슬림을 광장 바깥으로 쫓아내겠다고 위협했다(기자 : 돼지는 무슬림이 혐오하는 동물이다). 

▲ 2009년, 노르웨이 정부는 여성 경찰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려 했다.

▲ 2011년 4월, (극우 성향의) '영국 수호 동맹'을 모델로 한 '노르웨이 수호 동맹'을 결성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들은 "이슬람의 노르웨이 점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자고 선동했다. 그렇지만 (이 시위에) 모습을 드러낸 이슬람 혐오주의자는 10~15명에 불과했고 이를 반대하는 시위에는 약 1000명이 모였다. 

▲ 2011년 5월, "베르겐의 학교에서 대학살이 있을 것이다. 방해하는 사람은 모두 죽을 것이다. 특히 무슬림은."이라는 협박 메시지가 한 신문사에 도착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대피해야 했다.

 

매클라렌은 상황이 이러한데도 "노르웨이 경찰이 이슬람 혐오증을 위협으로 간주하려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노르웨이방위연구소의 헤그함메르는 "노르웨이 경찰이 '우익 극단주의 공동체를 통제하고 있다'고 오랫동안 밝힌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매클라렌은 "아프가니스탄에 떨어뜨린 폭탄이 노르웨이에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2001년에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정당화한 이슬람 혐오증이 브레이비크 같은 극단주의자가 성장할 토양을 마련해줬고, 그 결과 이슬람 혐오증에 바탕을 둔 폭력이 서구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매클라렌은 "끔찍한 이번 범죄는 전쟁과 이슬람 혐오증의 결과물을 드러냈으며 그로 인한 문제는 경제 위기를 맞아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매클라렌은 "이에 맞서기 위해 (1950~1960년대 미국 민권 운동을 이끈)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며 킹 목사의 발언을 전했다.

 

"오늘날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혁명 정신을 되찾고 때때로 적대적인 세계로 들어가 가난과 인종주의, 군사주의에 영원히 맞서 싸울 것임을 선언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한편 매클라렌은 사건 발생 직후 "전 세계 미디어의 최초 반응은 무슬림을 비난하는 것이었다"며 언론을 비판했다. 매클라렌은 "그러나 가해자가 파란 눈을 한 금발의 노르웨이 기독교 국수주의자로 드러나자 몇몇은 이제 살인의 맥락을 부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클라렌은 이러한 점에서 이번 사건과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의 연방정부 건물 폭파 사건이 닮은꼴이라고 지적했다. 매클라렌은 "(오클라호마시티 사건 직후) 미디어는 무슬림을 비난했다"며 그 때문에 "미국 내 무슬림은 살해 위협을 받았고 모스크(이슬람 예배당)는 파손됐다"고 상기시켰다.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 건물 폭파 사건은 1995년 4월 19일 발생했으며, 이 테러로 168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 폭탄 테러는 무슬림이 아니라 걸프전 참전 용사이자 우익 극단주의자이던 티모시 맥베이가 주도한 것이었다.

 

"이번 사건은 유럽 사민주의와 관용에 대한 공격"

 

미국의 국제 문제 전문가 존 페퍼는 매클라렌과 견해를 다소 달리했다. 페퍼는 26일(현지 시각)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에 게재한 '노르웨이, 적은 안에 있다'는 글에서 이번 사건을 유럽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퍼는 "브레이비크가 쏜 건 이슬람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도 아니"라며 "이번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 구축된 사회민주주의와 관용에 대한 공격"이라고 분석했다. "브레이비크 같은 오늘날의 십자군들은 이슬람의 위협에 대해 말하지만 그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문화적·인종적으로) 다양하고 민주적이며 평등주의적인 유럽"이라는 것이다.

 

페퍼는 "본래 십자군은 인종청소 같은 잔혹 행위에 의존했으며, 십자군은 그러한 잔혹 행위를 서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한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받아들였다"고 역사를 되짚었다. 브레이비크 같은 이들의 정서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페퍼는 이번 사건을 비롯해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서구를 상대로 한 이데올로기 전쟁"이 아니라 "서구 내에서 벌어지는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서구 내에서 벌어지는 이데올로기 전쟁)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토대에 맞선 전쟁이고, 미국이 표방하는 포괄적 다문화주의에 대한 전쟁이며 십자군, 노예제, 식민주의, 절대주의의 유산을 극복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맞선 전쟁이다. 무슬림이건 (미국 내에서 차별받는) 멕시칸이건 이민자들은 이 거대한 투쟁에서 졸(卒)이 되고 있다."

 

한편 페퍼도 매클라렌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 직후 서구 언론이 보인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다.

 

"CNN부터 <폭스뉴스>까지 전문가들은 재빨리 잔혹 행위의 배후에 무슬림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영국 텔레비전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무슬림이 왜 노르웨이를 미워하는지 이야기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제니퍼 루빈은 (……) '이슬람 성전을 주장하는 히드라 괴물(jihadist hydra)'을 비난했다. 그러한 주장이 오류임이 명백해졌을 때도 루빈은 사과하거나 주장을 철회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아주 나쁜 사람들이 참혹한 짓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세계는 여전히 매우 위험하다. 금발의 노르웨이인들보다 훨씬 많은 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이 미국인을 죽이려 하고 있다. 우리는 '서구를 상대로 한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비롯된, 체계적이고 훨씬 강력한 위협을 주시해야 한다.'"

 


태그:#노르웨이, #테러, #이슬람, #아프가니스탄 전쟁, #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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