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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들은 어디로 피서갈까?

뉴스에 나오는 제주공항은 발 디딜 틈 없어보였다. 그들은 엊그제 지나간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제주로 여행을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관광객들이었다.

그렇다, 제주는 이렇게 해마다 여름이면 피서를 온 뭍사람들로 들끓는다. 바다, 산, 도로마다 '허'씨 성을 가진 차들이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간다. 

그럼 제주사람들은 피서를 어디로 갈까? 물론 우리라고 별 수 있는가? 가까운 바다나 계곡으로 나가는 게 가장 만만한 피서법이다. 제주사람들로서는 별반 새로울 게 없어 보이지만 나들이는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더욱이 관광객들과 섞여 복닥거리는 걸 싫어하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찾는 모험을 한다. 인적 없는 애기 바당(바다의 사투리)이나 한라산 자락 어느 틈에 숨겨진 계곡을 찾는 일은 꽤 흥미롭다.  

복잡한 해변을 잠시 비켜나면 이런 작은 바닷가가 나온다.
▲ 애기 바당 복잡한 해변을 잠시 비켜나면 이런 작은 바닷가가 나온다.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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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자락 곳곳에는 이렇게 맑은 계곡들이 숨어있다.
▲ 한라산 계곡 한라산 자락 곳곳에는 이렇게 맑은 계곡들이 숨어있다.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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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섬'이라는 환경 탓인지 뭍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다. 그래서인지 이 무더위를 불사하고 서울 한복판으로 휴가를 떠나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 그곳에서 대도시의 문화와 소비를 향유한다. 또 어떤 이들은 제주와는 다른 자연환경과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 타 지방 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러나 이마저도 갑갑증을 느끼는 이들은 이왕 타는 비행기 좀 더 길게 타고 외국 땅을 즈려 밟고서야 직성이 풀린다. 아마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나'일 것이다.

여고생 시절 날아오르는 비행기나 항구의 뱃고동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걸 타고 나가 지평선이 있는 넓은 땅을 보겠다고 다짐했다. 기차를 타고 하루 종일 달려도 다 가볼 수 없는 광활한 땅을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허기를 다 채우지 못해 휴가철만 되면 세계지도의 접지선이 닳아지도록 폈다 갰다를 반복한다.

제주공항을 이륙하는 비행기
▲ 비행기 제주공항을 이륙하는 비행기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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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을 횡단하는 기차
▲ 기차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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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여름의 문턱에 닿자마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북인도의 '라다크'. 고산지대인 탓에 그곳으로 향하는 육로가 개방되는 시기는 여름 한 철뿐이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면 라다크로 가는 꿈을 꾸곤 했다. 내가 그런 꿈을 꾼 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쓴 <오래된 미래>를 읽고부터다. 척박하고 거친 환경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전통적인 라다크 인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허리 자락을 감아도는 도로를 따라 라다크로 간다.
▲ 길 히말라야 산맥의 허리 자락을 감아도는 도로를 따라 라다크로 간다.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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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해 밝은 웃음을 지어준 라다크 어린이
▲ 어린이 나를 향해 밝은 웃음을 지어준 라다크 어린이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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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라다크 마을과 제주 강정마을

더욱이 지금 제주도는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여 있다. 조그만 바닷가마을 강정이 이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절대보존지역이 해제되고 농토가 해군에 수용되어 버렸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구럼비(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들어낸 해안가 넓은 바위)를 부숴야하고, 천연기념물인 연산호 군락을 파괴해야 한다. 마을사람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고 있다.

라다크 역시 제주 강정마을과 비슷했다. 가혹한 자연환경에도 공동체 사회를 이루어 살던 라다크 인들은 불어닥친 개발 바람에 분열한다. 또 전략적 요충지로서 도시주변을 군대가 에워싸고 있다. 나는 라다크를 통해 개발이 초래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인도는 많이 변해있었다. 도로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델리 시내를  지하철이 통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뉴델리 역 맞은 편의 여행자 구역인 빠하르간지는 그대로다. 좁은 골목이 얼기설기 얽혀 있고 그 길을 여유롭게 걸어 다니는 소와 그들의 배설물 냄새가 이곳이 인도임을 확인시켜준다.

라다크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산맥을 따라난 좁고 고불고불한 길을 아슬아슬 넘어야 했고, 산사태로 13시간동안 꼼짝없이 갇히기도 했다. 5000미터가 넘는 지역을 통과할 때는 고산증으로 머리가 아파왔다. 차를 탄 지 꼬박 1박 2일이 지나 라다크의 주도인 레(Leh)에 도착했다.

라다크는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곳이다. 지리적으로 티베트고원과 인도 대륙사이에 위치하지만 문화적으로 티베트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약 천년동안 유지되어오던 라다크 독립왕국은 와해되어 버린다. 인도-파키스탄 전쟁과 인도-중국 영토 분쟁으로 군사 요충지가 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1970년대부터 이어진 문물 개방으로 인도의 마지막 샹그릴라라 불리던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로 인해 묻히고 있었다.

변화하는 라다크의 레
 변화하는 라다크의 레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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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이 가로막은 풍경
 철조망이 가로막은 풍경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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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의 중심가는 여느 여행자 거리와 다름없었다. 각종 카페와 레스토랑 상가들이 즐비하고 넘쳐나는 관광객들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도로의 차들로 번잡한 느낌마저 든다. 개방의 물결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져 있어 책을 통해 이상향에 빠져 있던 이들은 적지 아니 실망하게 된다.

중심가를 조금만 빠져나오면 군부대들이 많이 눈에 띈다. 넓은 부지를 에워싼 철조망 사이로 군 막사들이 자리해 있다. 군데군데 총을 든 군인을 만나거나 대포를 실은 군용트럭이 길을 가로질러 갈 때면 차에 타 있던 여행객들은 저절로 숨을 죽인다. 경치를 찍느라 부지런히 카메라를 만지던 손길들도 순간 움츠러든다. 황량한 들판에 삭막함마저 덧붙는다.

스리나가르로 가는 길목에는 파키스탄과의 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전쟁기념비들이 곳곳에 있다. 최근 2~3년간 화해분위기로 관광객들이 넘나들고 있지만, 아직도 그 긴장감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천상의 낙원이라던 이곳에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 대신 군부대들이 들어서 있는 이유다.

이렇게 바뀐 라다크에서 제주 강정마을의 '오래된 미래'를 보았다면 비약일까?

어린 목동이 우리차를 발견하고 막 뛰어온다. 달리는 차를 붙잡으며 먹을 것을 달라고 한다. 얼른 보이는 초콜릿을 건넸다. 하지만 그 소년은 배가 고프다고 한다. 심심풀이로 사탕이나 얻으려는 수작이 아니었다. 눈물이 맺혀있는 그의 눈망울은 절망적이었다. 다행히 자동차가 속도를 늦췄다. 가방을 뒤져 빵과 비스켓을 쥐어줬다. 멀어지는 소년을 보며 숨이 콱 막힌다. 그는 고아일 수도 고아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가난은 전쟁 탓이리라. 더욱이 그는 아직도 이 전운이 감도는 곳에 남아 삶을 연명해야 한다.

그나마 작은 개울이 흐르는 초원 위로 풀을 뜯는 나귀와 야크들 그리고 제주도의 시골마을을 연상케 하는 돌담과 어울려 핀 유채꽃들이 보인다. 옛 정취를 간직한 풍경이 경직된 마음을 녹여준다.   

라다크 가는 길에 펼쳐든 현수막, '제주 해군기지 반대'

여행길에 갖고 간 현수막
▲ 현수막 여행길에 갖고 간 현수막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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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나는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를 거쳐,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 그리고 북부의 마날리, 라다크의 주도 레, 파키스탄과의 영토분쟁지역이었던 스리나가르, 티베트 망명정부의 달라이 라마가 머물고 있는 맥그로간지 그리고 인도의 수도 델리를 돌아봤다.

이왕 나선 여행길, 난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주 강정마을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알리고 싶었다. 작은 마을에서의 투쟁이 얼마나 절절한지를 그리고 우리가 같이 지켜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래서 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세우는 것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작은 현수막을 들고 여행에 나섰다. 이를 들고 다니며 상징적인 곳에 갈 때마다 펼쳐서 사진을 찍고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 서툰 영어로나마 설명했다. 그리고 들고 간 강정마을 배지를 그들과 나눴다.

많은 생각이 오고가던 곳곳에서 현수막을 펼치는 작은 퍼포먼스를 해냈다. 만족스럽기까지는 아니지만 계획한대로 수행했다. 

이 과정을 후배의 도움을 얻어 영상 편집물로 만들어 여러 사이트에 올렸다. 다행히 강정마을에 대한 내용을 전혀 모르는 이들도 호응하며 공감해 준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혼자만의 만족에 머물렀을 이번 여름휴가에 조금은 의미를 부여한 것 같아 마음이 살짝 편안하다.

'인도로 간 제주 강정'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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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외국을 다녀올 때면 느끼는 게 있다. 내 고향, 내 집이 가장 편안하다는 사실을 새삼 또 깨우친다. 특히 제주는 전 세계의 자연을 종합선물세트처럼 갖춘 곳이다. 동남아의 비취빛 해변 못지않은 바닷가와 몽골 초원 같은 목초지, 히말라야 산맥의 계곡물만큼 차가운 한라산 계곡 등등 차만 타면 1시간 내에 이 모든 곳에 닿을 수 있는데 우리는 늘 그 가치를 잊고 지낸다.

잃고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할 텐데,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온통 강정마을 구럼비(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들어낸 해안가 넓은 바위)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왜 그러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비취 빛 제주 바다.
 비취 빛 제주 바다.
ⓒ 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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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선 차를 타고 30여 분만 나가면 이런 자연과 만날 수 있다.
▲ 초원 제주에선 차를 타고 30여 분만 나가면 이런 자연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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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위기에 놓인 강정마을의 구럼비.
▲ 강정의 구럼비 사라질 위기에 놓인 강정마을의 구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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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름휴가, #북인도, #해군기지,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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