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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

'아이러니'의 사전적 의미다. 영화 <카운트다운>을 꿰뚫는 또 다른 키워드는 아이러니이다.

몸이 불편한 부모를 둔 태건호(정재영)는 다운중후군을 앓는 아들을 낳게 된다. 그 아들은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지만 특별히 피아노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은 부정하고 싶은 아들을 보니 '왜 부모는 자신을 낳았는지', '많이 부족해 보이고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아들은 어떻게 저리 훌륭하게 연주를 하는지'...태건호에게 이 모든 것은 아이러니이다.

정재영은 극중에서 다소 부족한 아들을 부정하는 비정한 아버지이자 악랄하기 그지없는 채권추심원으로 변신했다. 태건호는 갑자기 간암에 걸려서 몇 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고를 받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거꾸로 흐른다. 알콜중독자처럼 술을 퍼마시며 아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지울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던, 자꾸 잊으려고 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게 된다.

정재영은 이전의 강렬한 절대악(<이끼> 이장)의 이미지도, 관객들의 배꼽을 잡았던 유머러스한 모습(<바르게 살자><나의 결혼 원정기>)도 <카운트다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더욱 말이 없는 채권추심원이 됐다. 그동안 잘 선보이지 않았던 수트 스타일도 그럴듯하게 뽐내며 상대를 단박에 제압하는 전자봉을 들고 '무조건 돈 갚아라'라는 묵직한 말만 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과묵하고 멋있게 변한 정재영이다.

다시 아이러니로 돌아가자. <카운트다운>을 꿰뚫는 아이러니. 그에 대해서 정재영은 "아이러니라는 말 자체도 어려워서 사전을 찾아봤더니 '부조화' 뭐 그렇더라고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아이러니합니다. 성치 않은 부모가 날 낳은 것도 아이러니하고, 내가 그 아이를 낳은 것도 아이러니, 모든 것이 롤러코스터처럼 얽혀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항상 뒤에서 앞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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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재영의 아이러니는 무엇일지 갑자기 궁금했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하고 1996년 연극 <허탕>으로 데뷔했다. 충무로에서 조연부터 시작해 이제 손가락에 꼽히는 주연으로 올라선 정재영. <바르게 살자> <신기전> <강철중: 공공의 적1-1> <김씨표류기> <이끼> <글러브>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서 관객들은 그의 연기를 보고 어느 때는 소름끼치기도 했고 어느 때는 유쾌하게 웃어 제쳤다. 그의 인생의 아이러니는 뭘까.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이렇게 배우가 된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는 것.

"제가 지금 배우가 돼서 이 자리(인터뷰하는 공간)에 앉아 있는 게 삶의 아이러니인 것 같아요. 아주 재미있는 아이러니. 저는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이런 쪽 일을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죠. 어릴 때부터 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어디가도 뒤에 있고, 군대에서도 중간, 저는 사람들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항상 뒤에서 앞 사람만 바라보고, 나를 안 건드리면 나도 안 건드린다는 마음가짐이었죠(웃음).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친구를 따라서 마당쎄실극장에 연극을 보러 간적이 있었어요. '연극이 뭐야?' 할 정도로 연극이 뭔지도 몰랐어요. 가서 봤는데 TV가 툭 튀어나와서 막 말도 하고 방백도 하고 그러는데 너무 신기했어요. '저 사람들 뭐하는 사람들이야?' 대사가 콱 와서 꽂혔습니다. TV랑 극장에서 보는 느낌이랑 되게 달랐어요. 영화도 시험 끝나고 단체로 가서 보는 유익한 영화들만 보다가 이렇게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본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던 차에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됐어요. 사실 저는 배우가 아니라 기자나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직업이 늘 돌아다니고 출근 안 해도 될 것 같고 자유스러울 것 같았어요. 그런 것이 좋아 보여서 하고 싶었는데 학교 선생님이 연극과를 가면 그런 것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막연하게 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막연하게 대학에 왔는데 굉장히 큰 매력으로 다가와서 순식간에 빠져 들게 됐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만 왔다 갔다 하는 완전 숙맥이었는데 대학가서 처음 눈을 뜬 거죠. 그렇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고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네요. 그게 저에게는 가장 큰 아이러니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 때문에 <카운트다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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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의 총체로 말할 수 있는 <카운트다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카운트다운>은 시나리오를 보면서 자신의 예상대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것이 <카운트다운>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고.

"예상치 못한 전개가 계속 됐어요. 초반에 읽다보면 '어 쟤가 왜 저런 말을 하지', 그러면 나중에 그 궁금증이 해결됩니다. 예상한대로 절대 흘러가지가 않아요. 싸움 잘 하는 채권추심원이 나오길래 <아저씨> 같은 액션이 쫙 나오겠구나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간암 선고를 받아요. 이건 또 뭔가 했는데 갑자기 이 채권추심원이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집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발소를 하시는 부모님...그 부모님에게 고백을 하나보다 했더니 또 예상치 못하게 흘러갑니다. 이 모든 전개, 예상치 못한 전개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실제 다운중후군 앓는 유민 군에게 너무 미안해"

극중에서 정재영은 다운중후군을 앓는 아들을 부정하고 아들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퍼붓고 또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아들 유민(극중 배역 이름) 군은 실제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가 연기했다. 이에 두 사람의 연기 호흡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술 먹고 아이한테 XXX야, 라고 하는데 상대가 유민이다 보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엄마는 옆에 와 계시니, 애는 실제 연기하는 애도 아니고 그래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실제로 그 친구는 머리가 길고 되게 잘 생겼어요. 그런데 극중 배역 때문에 머리도 짧게 깎고 다운중후군이라는 것을 보이도록 한 것이죠.

연기의 흐름을 위해서 영화의 후반부에는 실제로도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어요. 너무 미안했습니다. 이 영화는 절대 그 아이를 비하하거나 학대하려고 하는 영화가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그에 대해 반성하는 아빠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돌이켜봐도 너무 마음이 아팠을 유민 군과 그의 어머니에게 죄송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의 정재영'을 기대하게 하는 연기자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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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재영, <카운트다운>, 아이러니...이 키워드로 진행됐던 인터뷰였다. 배우들을 인터뷰하면 두 가지 종류의 인터뷰이가 있다. 세월이 갈수록 더 여유로워지고 더 솔직해지고 더 허물없어 지는 배우,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 사회적 명성과 지위가 올라가면서 그에 비례하게 쌓아올린 벽을 두고 홍보 인터뷰 하나하나를 톱스타의 의무감인 것처럼 간신히 소화하는 배우들이 있다. 정재영은 이 두 가지 유형 중에 전자에 해당한다.

조연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은 주연으로 올라선 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진솔하고 소탈한 매력을 뿜어내는 배우다. 영화에서는 진지하고 과묵한, 아픔을 간직한 태건호로 분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실제 만난 정재영은 인터뷰 한 시간이라도 유쾌하게 꾸려가고 싶고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전도연씨가 '내 몸뚱이는 전도연의 몸뚱이가 아니라 배우, 연기자의 몸뚱이'라고 했는데...참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워서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도 너무 잘 해요. 전도연씨 인터뷰 기사 제목을 봤는데 너무 놀랐어요(웃음). 저도 멋있는 말을 하고 싶은데. 참... 저는 관객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다음의 정재영'을 기대하게 하는 연기자였으면 좋겠습니다. 아 이거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지금 <카운트다운> 속 정재영의 모습은 분명 다음 작품에서의 그의 연기도 기대하게 한다.

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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