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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의 역사> 책표지.
 <전화의 역사> 책표지.
ⓒ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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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길을 걸으며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다가 휴대전화 대리점을 지나쳤다. 판촉 활동에 전념하던 직원은 지나가던 내게 "요즘에도 버튼 눌러서 문자 보내세요? 스마트폰으로 바꾸시면 버튼 누르실 필요 없어요. 정말 편해요"라고 말했다.

순간 웃기기도 하고 약간 화가 나기도 해서 '내가 더러워서 스마트폰으로 바꾼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화낼 일은 아니었다. 기분은 나쁘지만, 그 직원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이미 1700만 명을 넘어섰고, 지금도 빠르게 늘고 있다. 당장 내 주변을 봐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왜 아직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느냐고 타박하고, 카카오톡으로 보낸 단체문자를 나 혼자 못 받은 적도 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조만간 원시인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전화는 이렇게 깊숙이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집 전화로는 부족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제 어떤 휴대전화를 쓰는지에 신경 써야 한다. 남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최신 기종이 아니라면 꺼낼 때도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전화가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전화의 역사>(인물과사상사)는 전화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전화의 도입과 일제강점기의 전화

전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90년대 후반의 일이다. 고종은 정부 각 부처를 연결하는 전화를 설치해 정사를 돌보는 데 이용했지만, 전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사람들은 "하늘의 전기바람은 비구름을 말리고 땅의 '덕률풍(당시에는 전화를 덕률풍이라 불렀다)은 땅위의 물을 말린다"며 가뭄을 전신과 전화 탓으로 돌렸다.

일제강점기의 전화는 일본의 식민통치와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전화의 혜택을 누린 것은 주로 일본인이었고, 3․1운동 후에는 전화가 독립운동을 감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전화교환양과의 통화가 일본어로 이뤄진 것도 전화와 식민통치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윤상길은 이와 관련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일본어가 국어의 지위를 가지고 공공기관의 공식언어로 사용되던 일제시기, 일본어에 익숙하지 못한 조선민들에게 (상대통화자와 연결하는 중간 교환과정에서) 일본어를 써야만 했던 전화는 소통을 위한 미디어라기보다는 식민지배자의 모습으로 다가갔다."
- <한국의 미디어 사회문화사> 146~147p

전화는 '식민지배자의 모습'을 띠고 있었지만, 대중은 예전만큼 전화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전화는 점점 권위와 신용의 상징이 되어갔다. <동아일보> 1920년 6월 11일자에 따르면, 이제 상점간판에 전화번호가 적혀있어야 신용이 있어 보이게 되었다. 전화가 없으면 사람들은 '전화 하나 없는 상점이 무엇이 변변하겠느냐'며 냉소를 보냈다는 것이다."
-<전화의 역사> 70p

그 시기의 전화는 대중매체가 아니었다. 1941년에야 전국의 전화기 대수가 7만 대를 돌파했다. 그나마도 패전을 앞둔 일본이 통신시설 공출운동을 펴면서 일반인의 전화 사용은 거의 억제됐다. 전화는 마지막까지 일본 식민통치의 도구로 이용됐다.

독재정권 시절의 전화: 특권의 상징

해방된 조국에서도 전화는 오랫동안 특권의 상징이었다. 1955년께 전국의 전화대수가 3만 2000대에 불과할 정도로 귀한 물건이었기에 대중은 전화를 신기하게 여겼다.

"1950년대 중반에도 서민들에게 전화는 여전히 신기한 물건이었다. 1955년 겨울 광문출판사에 취직한 이호철은 출판사에 있는 다이얼전화를 보고 '9나 0 같은 뒤편 숫자는 때르르르릉 거리며 한참씩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촌놈'인 나는, 그것 하나하나가 여간 신통방통하지가 않았다. 이런 전화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이런 큰 회사에 몸담고 있다는 것부터가 조금 우쭐해지는 느낌이기까지 했던 것이다'고 회고했다."
-<전화의 역사> 116p

전화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1985년 전국의 전화대수가 700만 대를 돌파했고, 1987년 9월에는 1000만 회선을 돌파함으로써 '1가구 1전화시대'에 접어들었다. 전화의 대중화는 민주화와 맞물린다.

"중심도 없고 서열도 없는 전화 커뮤니케이션은 그 본질이 민주적인 바, 전국에 걸쳐 이루어진 그런 소통의 기운은 민주화 열망으로 분출됐다. 1가구 1전화시대가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해낸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같이 도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전화의 역사> 186p

저자 강준만은 전화가 대중화한 요인으로 군사주의와 핵가족화를 꼽는다. 아파트 대단지가 제공하는 군사주의적 효율성이 통신 인프라 구축에 큰 도움이 됐고, 핵가족화가 가속하는 가운데도 대가족제의 관습이 남아 있어 전화로 안부를 전해야 하기에 전화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1990대~현재: 휴대전화의 시대

1가구 1전화 시대 뒤에는 휴대전화의 시대가 왔다. 1984년 국내에서 휴대전화가 처음 선보였지만, 이용자는 소수였다. 휴대전화가 대중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1997년 휴대전화 가입자가 500만 명을 넘어선 후 1998년 6월 1000만 명, 1999년 8월 2000만 명, 2002년 3월 3000만 명을 돌파했다.

휴대전화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뒤바꿨다. 사람들은 수업 중 쉬는 시간이나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할 때처럼 잠깐만 짬이 나면 휴대전화를 붙잡고 게임을 하거나 문자를 보낸다. 학생들이 휴대전화에 중독되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2007년에는 대전 시내 149개 중·고교교장들이 '학교에 휴대전화 안 가져오기 결의대회'까지 열었다.

휴대전화가 부정적인 역할만 하지는 않았다. 촛불집회 때는 '연대의 미디어'로 톡톡히 제 몫을 했다. 2008년 5월 25일 자 <한겨레>에 실린 <새로운 10대가 왔다: 문자와 인터넷으로 실시간 소통 '사회에 댓글'>기사는 휴대전화가 촛불집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10대는 빨랐다. 한 손엔 촛불을, 다른 한 손엔 휴대전화를 들었다. 촛불집회현장을 실시간으로 카페사람들에게 전달했고, 이는 카페게시판을 통해 다른 회원들에게 공유됐다. 엄지손가락으로 문자를 쓰는 속도는, 기자들의 노트북 자판속도보다 더 빨랐다."

2008년 12월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가입자는 총 4561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93.8%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지만, 전화의 진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이다.

<전화의 역사>는 스마트폰의 등장만을 다루고 있지만, 스마트폰은 그 이후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폰 가입자는 2010년 10월 500만을 넘었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가입자가 늘고 있는 것이 지금 진행 중인 전화의 역사다.

휴대전화는 소통의 도구일 뿐

강준만은 '맺는말'에서 휴대전화를 한국의 '신흥종교'로 규정한다. '신흥종교'가 급성장한 이유를 ①'고독으로부터의 탈출' 욕구 ②'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 욕구 ③공사(公私) 구분 없는 '뫼비우스효과' ④인맥사회에서의 생존술, ⑤초강력 1극 구조 사회에 대한 저항 ⑥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구별짓기' 문화 ⑦휴대전화 산업의 정치경제학 등 일곱 가지로 정리하고, '신흥종교'를 적당히 믿자는 말로 마무리한다.

전화의 본질은 누가 뭐라 해도 소통이다. 휴대전화에 아무리 게임이 많이 있어도, 스마트폰이 아무리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부가적인 기능일 뿐이다. 늘어난 휴대전화만큼 소통을 더 잘하게 됐는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부질없는 공허한 말들만 쏟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이켜 볼 때다.

나아가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든 기계에 종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잠깐이라도 휴대전화와 떨어져 있으면 불안한 우리는 이미 휴대전화의 노예가 된 건지도 모른다. 휴대전화가 없다고 소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휴대전화가 없을 때도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 보며 소통했다. 휴대전화는 소통을 위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고, 이제라도 신앙의 대상으로 승격된 휴대전화를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아야 할 때다.

그나저나 휴대전화를 바꿀 때가 되긴 했는데, 무슨 스마트폰으로 바꿔야 하나?


전화의 역사 - 전화로 읽는 한국 문화사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2009)


태그:#전화, #휴대전화,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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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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