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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잉글랜드 중서부에 자리한 코츠월드(Cotswolds)는 옛 영국어로 '양 우리가 있는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다. '코츠월드'라는 이름답게 도로 옆에는 낮은 구릉의 잔디밭이 구불구불 넘어가고 있다. 바쓰(Bath)에서부터 옥스퍼드(Oxford)까지 길게 이어지는 이 코츠월드에는 잉글랜드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은 마을 200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영국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옛 마을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비가 흩뿌리고 있다.
▲ 캐슬 쿰 가는 길 잔뜩 찌푸린 날씨에 비가 흩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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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간간이 빗줄기가 차창 밖을 때린다. 하늘은 비가 왔다가 개기를 여러 번.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생각, 하늘이 맑게 변했으면 하는 희망은 포기하기로 했다.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하니 이곳 영국에서는 날씨가 되고 싶은 데로 마음 편하게 놔 주는 것이 상책이다.

바쓰를 출발한지 30분 만에 우리 차는 코츠월드 최남단에 자리한 캐슬 쿰(Castle Combe)의 입구로 들어섰다. 나무 깊은 숲속에 작은 숲길이 아늑한데, 그 좁은 길 속으로 차가 들어간다. 예상보다도 훨씬 작은 마을 입구가 놀랍기도 하지만 나무 우거진 숲길 속은 마음이 너무 상쾌하다. 나의 가족은 옛 세월이 그대로 이어지는 듯한 숲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그 숲길이 끝나는 곳에 영국에서 가장 예쁜 마을로 2년 연속 꼽혔다는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의 아기자기한 집들과 개울 위 다리는 그대로 중세 속의 한 모습이다. 마을을 둘러보는 여행자들도 거의 없어서 한적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나는 아내와 신영이의 손을 잡고 한가하게 마을 산책을 시작했다. 비에 젖은 듯 안 젖은 듯 습기를 머금은 마을길을 걸었다. 마을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중세의 성으로 들어가는 손님을 반긴다.
▲ 매너하우스 입구 중세의 성으로 들어가는 손님을 반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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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과 작은 아스팔트 도로가 나란히 이어지는 긴 입구가 있다. 마치 한 영주의 성 안으로 들어서는 것 같은 길이다. 그 길은 작은 마을 캐슬쿰에 자리한 호텔 입구다. 사는 사람 많지 않은 캐슬 쿰에 무슨 호텔일까? 호텔 건물은 동화의 전형적인 모든 조건을 갖춘 듯한 모습이다. 호텔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넓은 정원과 함께 빛을 발하고 있었다.

호텔 이름은 매너 하우스(Manor House). 온통 붉은 빛으로 치장한 꽃밭의 작은 간판이 호텔로 향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역시 이곳은 옛적에 캐슬 쿰의 영주가 살던 집이었다. 대저택을 호텔로 개조했기에 호텔보다는 영주의 큰 집에 구경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 큰 정원을 지나 큰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영주의 성 안으로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빨간 머리 앤이 나무 밑둥에서 올라올 것 같다.
▲ 매너하우스 큰 나무 빨간 머리 앤이 나무 밑둥에서 올라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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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의 성이었던 만큼 호텔 앞 정원의 크기는 거의 유원지 수준으로 넓다. 아내는 호텔 정원의 거대한 나무에 눈길이 가 있다. 주변 숲속의 나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 나무는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나무였다. 나무 아래 놓인 작은 의자가 장난감 가게에서 사는 미니어처 같이 보인다. 나무 몸통의 아래 부분도 가지가 뻗어 있어 무척 풍성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잔디밭 위에 홀로 서 있는 저 큰 나무 좀 봐. 나무 몸통이 보통 큰 게 아냐. 저런 아름드리 나무를 보면 상상력이 꽃을 피우지 않겠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저 나무 밑둥 아래를 파고 들어갔을 것 같아."

나는 아내의 생각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속 깊은 문학작품이 나오는 데는 다 그 지방의 문화적 토양이 있지. 영국의 시골에 와 보니 영국에서 나온 문학작품들이 어떠한 배경에서 쓰여졌는지 바로 이해되는 것 같아."

과거 캐슬 쿰 영주가 살던 대저택이다.
▲ 매너하우스 과거 캐슬 쿰 영주가 살던 대저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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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쿰에서 가장 큰 건물인 매너하우스는 외부에서 뜯어보면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생긴 건물이다. 14세기에 지어진 호텔 내부는 온통 사면이 갈색의 고풍스러운 목재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 작고 한적한 시골마을에 4성 호텔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건물의 로비에 호텔 리셉션 데스크가 있고 한 직원이 앉아 사무를 처리하고 있다.

호텔 내부를 자유롭게 들러볼 수 있다.
▲ 매너하우스 프론트 호텔 내부를 자유롭게 들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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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 오는 여행자들이 많아서인지 호텔 직원들은 호텔 안에 들어서는 우리를 전혀 제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부석사 무량수전같이 건물 내부는 온통 아름드리 목재로 만들어져 있다. 오래된 갈색의 나무 바닥에 마음이 포근해진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가 이 호텔의 화장실에 한번 들어가 보라고 한다. 흰색, 푸른색의 자기와 스케치 액자로 장식된 앤티크한 화장실마저 고급스러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어른 팔뚝만한 체스 말을 움직이며 체스를 즐길 수 있다.
▲ 매너하우스 체스판 어른 팔뚝만한 체스 말을 움직이며 체스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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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바로 앞은 잘 정돈된 잔디밭이 한적하다. 잔디 마당에는 이곳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가지고 즐길 커다란 체스판이 놓여 있다. 흑색과 백색의 사각형이 교차하는 체스판 바닥 위에 어른 팔 길이만한 체스판의 말들이 정연하게 줄을 맞추어 서 있다. 뭐든지 해 보기를 좋아하는 신영이가 이미 체스판의 말을 들고 장난을 치고 있다.

호텔 마당에는 양산이 접힌 한 테이블이 빗줄기 속에서 외로이 있다. 번잡하지 않은 영국 시골마을의 이 잔디밭 벤치에 앉아 오후의 홍차 한잔 마시고 있으면 딱 좋을 분위기이다. 캐슬 쿰 여행은 내가 설계한 자유여행이지만 런던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들 때문에 벤치에 여유 있게 앉지는 못했다. 나의 여행은 자유여행이지만 내 성격상 차 한잔 마시는 한가로운 여행은 애당초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베이지색 석회석 석재로 만든 집이 정갈하다.
▲ 캐슬쿰 마을집 베이지색 석회석 석재로 만든 집이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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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하우스에서 작은 길을 따라 캐슬 쿰의 마을로 다시 나왔다. 정연하게 깔린 회색 아스팔트 마을길 왼편으로 작은 집들이 올망졸망하게 이어지고 있다. 옛 사람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집들 앞에는 작은 화단이 있고 화단 속의 붉고 빨간 꽃들이 은은한 회색빛 중세마을의 색상을 화려하게 물들이고 있다. 참으로 이놈의 화단은 크지도 않으면서 감탄사를 불러일으킨다.

집들은 이 부근에 풍부한 베이지색 석회암을 두부 자르듯 넓적하게 잘라서 맞춘 집들이다. 집 입구에는 화분들이 걸려 있는데 붉고 노랗고 하얀 꽃들이 모양도 다르며 색상도 다른데 모두 모여 화려함을 자랑한다. 화분이 시골집 대문의 바로 옆 눈 높이에 걸려 있으니 눈길은 자연히 집주인이 자랑하는 꽃 장식 실력을 감상할 수 밖에 없다. 각 집마다 걸린 대문 앞 꽃 장식은 서울 어느 유명 꽃집의 장식보다 앞설 정도로 화려하다.

꽃 색상의 배합이나 꾸밈이 세련되어 있다.
▲ 시골집 입구의 꽃장식 꽃 색상의 배합이나 꾸밈이 세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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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담벽 위로는 나무 덩쿨이 끝없이 올라가고 있다. 석재 벽돌집의 담을 오르는 나무 덩쿨의 모티브는 아마 이곳 영국의 시골에서 시작된 것 같다. 석재로 만든 시골집들은 인공 구조물이지만 집의 석재 주변은 풍성한 자연을 동경하는 영국인들의 마음이 가득 담겨 꾸며져 있다. 이 영국의 시골집들은 도시에서 살아온 우리 가족에게 시골생활의 로망같이 다가온다.

이 예쁜 시골집들을 그냥 지나칠 아내가 아니다. 아내는 남의 집 구경하기를 너무나 즐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는 과감함을 가지고 있다. 아내는 문이 열린 한 집으로 이미 무작정 들어서며 "여기 한번 들어가 보면 안 될까?"라고 한다. 아내는 이미 영국 시골집의 거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작고 아담한 집에는 17세기 전통 복장을 한 예쁜 영국 숙녀가 방을 정돈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 집은 여행자들에게 숙소로 제공되는 집이었고 이 참한 아가씨는 침대 시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아가씨에게 이 집 내부를 딱 5분만 둘러볼 수 없느냐고 물었다. 아가씨는 의외로 선선하게 집 내부 구경을 허락했다.

잘 정돈된 중세의 방과 침대가 아늑하다.
▲ 캐슬 쿰의 숙소 잘 정돈된 중세의 방과 침대가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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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젊은 아가씨가 곱게 단장해놓은 짙은 갈색 나무의 침대 위로는 그리스 신전의 지붕 같은 캐노피가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침대 캐노피 지붕 아래에는 침대 시트와 같은 꽃 장식 모양의 천이 하늘거리고 있다.

방 천장의 흰 벽면 위에 선을 긋고 있는 17세기 목재의 짙은 갈색은 이 집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집의 역사성 위에서도 순백의 벽면은 최근에 덧칠한 듯 깔끔하기만 하다. 침대 시트 위에는 이 집을 다녀갈 손님을 기다리는 작은 곰 인형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계단의 조명이 옛스럽고 분위기 있다.
▲ 시골집 분위기 계단의 조명이 옛스럽고 분위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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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벽면에 붙은 장롱을 열어보며 꼼꼼히 둘러본다. 마치 자신이 이사 갈 아파트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호기심 많은 여인 같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새끼와 가족이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를 만나면 편안해 지는 법이다. 캐슬 쿰의 마을 속, 이 집은 아내가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집이다. 아내는 오늘 여행 중에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다.

여행은 자기가 가장 관심이 있는 곳에서 유독 즐겁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1년 7.17일~7.27일의 영국 여행 기록입니다.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80편이 있습니다.



태그:#영국, #잉글랜드, #코츠월드, #캐슬 쿰, #매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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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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