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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흔드는 판첸 라마의 사진
 손을 흔드는 판첸 라마의 사진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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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걸었을까 그 아주머니 집과 비슷비슷한 집들을 몇 채 지났을 때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오지 전통마을과 너무도 안 어울리는 승용차여서 다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어느샌가 역시나 이곳과 전혀 안 어울릴 근사한 양복의 코털 아저씨가 다가와 "멋있지? 내 자가용이다"라고 했다. 난데없는 아저씨의 등장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드는데 아저씨가 한 발 빨랐다.

"우리 집 구경하고 싶지 않니? 우리 집엔 '마니차'도 있다."

'마니차'가 뭔지는 몰라도 이 아저씨 집 자랑이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인 게 틀림없었다. 나는 "한번 보자"며 냉큼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러자 다다다다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쟤가 또 무슨 사고를 치나 싶어 J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틀림없었다.

마니차는 금색으로 된 원통형 종이었다. 사원에나 어울릴 마니차들 여럿이 아저씨의 집 널따란 마당에 떡 하니 놓여 있었다. 아저씨의 권유대로 종을 돌려봤다. 동그르르 한 바퀴를 도는데 이분, "이게 한 번 돌면 경전 한 번 읽은 게 되는 거야. 나는 매일같이 이 종을 돌리면서 지내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니차만이 아니었다. 집 자체가 사원이었다. 거실이고 부엌이고 방이고 어느 한 곳 맨벽을 드러낼 틈을 주지 않았다. 연꽃이나 새, 부처, 그리고 희한한 문양과 글씨들을 그려 넣고 진한 원색으로 칠한 네모 네모들이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한쪽 벽면엔 포탈라궁의 웅장한 모습도 그려져 있었다. 벽화는 울긋불긋 눈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화려하긴 했지만 이런 무당집에서 나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터였다.

집에 '마니차'까지 있는 부자 장족 아저씨

관광객에게 과일을 파는 장족 아주머니
 관광객에게 과일을 파는 장족 아주머니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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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리 와봐. 우리 집엔 컬러TV가 있어. 엄청 크지? 이번에 새로 장만한 거야. 그릇들도 또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야, 이리 좀 나와봐라."

TV를 보여주고 굳이 찬장까지 열어젖히며 그릇들을 자랑하던 아저씨는 갑자기 누군가를 불러댔다. 쭈삣대며 머리를 박박 깎은 작은 남자아이 하나가 나왔다. "니 하오" 한마디 하고 아빠 뒤로 쏙 숨는데도 아이를 잡아끌며 아저씨가 채근을 했다.      

"자, 영어 해봐. 너 과외 받았잖아. 이분들한테 어디 실력 좀 보여봐라."

순간 나와 J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화해했다. '공감'이란 두 글자로 좀 전의 싸움은 날아가버렸다. 바라본 서로의 얼굴엔 같은 생각이 담겨 있었다. 그건 바로 '이. 건. 뭥. 미?'였다.

끝내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아들이 도망가버리자 머쓱해진 아저씨, 또 다시 집 자랑을 이어갔다. 이번엔 냉장고였다. 설명을 들은 체 만 체 집 안을 둘러보던 나는 한쪽 벽면에서 커다란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오른손을 쳐든 웬 승려의 사진이었다. 가족이냐고 묻자 아저씨가 펄쩍 뛰었다.

"아니, 우리의 종교 지도자를 몰라?"

장족들의 종교적 지도자는 '달라이 라마'다. 하지만 그는 티베트의 독립을 반대하는 중국 정부와의 마찰로 인도 다름살라로 망명했고 중국 내에서 그의 사진을 소지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런데 이 코털 아저씨 겁도 없이 저렇게 사진을 꺼내놓고 있다니! 아저씨에게 "달라이라마 사진을 소장하는 건 위험하지 않느냐"고 묻자 아저씨는 아까보다 더 펄쩍 뛰었다.

"뭐? 달라이 라마? 그런 사람 이름을 왜 들먹이는 거야? 저 사람은 판첸 라마야. 너희는 외국인이어서 잘 모르는가 본데 우리 중국 정부와 장족들은 판첸 라마를 지지해. 달라이 라마는 반역자라고!"

목까지 벌게져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코털 아저씨를 보며 나는 그제야 조금이나마 상황이 이해됐다. 어디선가 장족들 대부분이 달라이 라마를 지지하며 그의 사진을 베갯속이나 옷섶에 몰래 감춰두고 산다는 얘길 들은 일이 있었다. 다수를 차지하는 그들과 아저씨는 아무래도 다른 종류의 장족인 것이다.

나의 예상은 빛나가지 않았다. 진정이 된 아저씨와 전통차를 마시며 직업을 물었을 때 아저씨는 "나는 이곳의 관리자다"라고 하셨다. 아저씨는, 쓰레기를 치우거나 전통의상을 입혀주거나 전통 물품이나 먹거리를 팔며 살아가는 장족 서민들의 관리자였다.

장족 마을 동사무소, '장족 공무원'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냐?

관광객에게 해바라기씨를 파는 장족 아주머니.
 관광객에게 해바라기씨를 파는 장족 아주머니.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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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오라"며 손을 흔드는 코털 아저씨의 집을 나서면서도 마음은 좋지 않았다. 어쩌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푸'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보다 더 그랬다. 날은 저물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제 그만 숙소로 향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 들어설 땐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건물이 눈에 거슬렸다. 건물 위쪽에 문구가 쓰여 있고 다른 집들과 달리 벽화 하나 없는 회색 벽이 수상했다. 그 수상함이 또 한 번 호기심을 자극한 탓에 나는 '마지막'이라며 J를 꼬셔 건물에 들어섰다.

건물 복도에는 사진이 걸린 액자들이 줄지어 나열돼 있었다. 중국어로 쓰인 설명들로 그것이 그들의 이름과 신분임을 알 수 있었다. 서기관, 주임, 직원 등 그들은 공무원이었고 이곳은 일종의 동사무소였다. 중국 공무원들의 퇴근 시간인 4시가 한참 지나 있었지만 다행히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이곳이 마을의 행정사무부터 치안까지 맡고 있다는 설명에 이어 이 사람은 우리에게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해주었다. 그것은 "우리 관청엔 장족도 있다"는 것이었다. 장족도 있다니. 그럼 이곳 공무원들 대부분이 한족이란 말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특히 가장 높은 책임 공무원은 다른 지역에서 온 한족이라고 덧붙였다.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마을이 점점 작아질수록 내 맘속엔 알 수 없는 슬픔이 점점 커져갔다. 티베트 대신 이곳 구채구에서나마 장족을 만나고 싶었고 장족에게 '중국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고 듣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나는 그들을 만나 잠시나마 장족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TV 속 장족 어린이는 "해방시켜주어 감사합니다"며 해맑게 노래했고 아미산의 장족 청년 역시 해방의 기쁨을 자랑스럽고도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 눈에 구채구에 사는 대부분의 장족들은 작은 집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푼돈을 벌며 별반 자유롭지도 별반 행복하지도 않아 보였다.

물론 자랑쟁이 코털 장족 아저씨는 부유했다. 하지만 그 마을에서 마니차까지 있는 근사한 집에 고급 승용차를 가진 이는 그 아저씨뿐이었고 아저씨는 관리인이었다. 그리고 마을의 보다 큰 권력자들은 그 마을에 살지도 않는 한족 공무원들. 이런 모습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식민지', 어쩌면 이 단어가 유일하지 않을까?

'하나의 중국'에서 장족들은 정말 행복할까?

영화 <영웅>의 한 장면
 영화 <영웅>의 한 장면
ⓒ 장이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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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옥빛 호수 옆에 멈췄다. 영화 <영웅>에서 두 주인공이 둥둥 떠서 칼싸움을 하던 곳과 닮은 모습이었다. 그 영롱한 호숫가에서 버스에 오르는 할머니들은 전통치마에 야광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쓰레기를 담는 비닐봉투가 다른 손에는 쓰레기를 줍는 집게가 들려 있었다.

정부가 국립공원으로 만들어 적극 관리를 하게 되면서 이분들은 일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그 신식 일자리가 몇 십 년 전 외지인의 발길이 조금도 닿지 않던 그때에 이 계곡, 저 계곡으로 마오뉴 떼 몰고 다니며 자유로이 누비던 삶보다 더 행복한 무엇일까? 오래전 꼬맹이였을 저 두 분 할머니들은 투명한 옥빛 호수에서 물장구치던 때보다 지금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계실까?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영웅>은 화려한 색감과 영상미로 유명하다. 그런데 정신 쏙 빼놓는 그 아름다움 이면엔 무서운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무자비한 전쟁을 치룬 진시황 때문에 부모와 형제들을 잃은 이들은 복수의 칼날을 간다. 주인공 '무명' 역시 복수를 꿈꾸는 이다. 그가 왕을 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서기 위해서는 동지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 숭고한 희생을 생각하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시황의 목을 쳐야만 한다. 하지만 진시황을 만나 얘기를 나누던 중 무명은 깨닫는다. 복수는 또다시 복수를 낳을 뿐이란 사실을. 여러 나라로 잘게 부서져 싸움을 반복하는 것은 결국 복수의 역사를 되풀이할 뿐 궁극적인 해결책은 하나의 나라, 천하통일 그것밖엔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명이 마지막 순간 스스로 칼을 거두는 이유다.

영화는 이 이야기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말하고 있다. 소수민족 독립이 무엇을 가져오겠느냐고. 독립하기 위해 싸울 때, 독립한 뒤에 충돌할 때 결국 수많은 생명들이 다치며 소모적인 아픔들이 생겨나는 것 아니냐며 영화는 '하나의 중국'이 유일한 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하나의 중국'이 유일한 답이고 진리일까? 이곳 구채구의 장족들은 관광지의 도우미로 전락해버렸다. 미래를 꿈꿀 수 없을 만큼 자유를 잃은 채. 중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의 물빛이라고 자랑하는 구채구에서 나는 물빛의 아름다움보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라며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장족 아주머니의 눈빛이 더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그 눈빛은 옥색, 코발트색, '파워에이드' 색 등 오색영롱한 물빛들을 예찬할 수만은 없을 만큼 서늘했다. 그 서늘한 눈빛은 다음날 황룡의 금빛 호숫가에서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근무지에서도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중국에 대한 뉴스를 보거나 중국 여행 얘기를 들을 때면 가끔씩 그 눈빛이 기억나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덧붙이는 글 | '여행사연 쓰고 공정여행 가자!' 응모 글



태그:#구채구, #쓰촨성, #중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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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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