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영화 <노인들>  포스터

▲ 영화 <노인들> 포스터 ⓒ 제16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도대체 무슨 이런 병이 있을까. 그토록 정성을 다해 기른 자식도 못 알아보고 자기 자신마저도 잊어버리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오래 전 즐겨 부르던 노래만은 새겨진 듯 사라지지 않고, 또 때로는 단 한 사람만 기억에 남아 노상 그를 그리워한다. 그 누구라고 나는 절대 그런 병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치매, 이번에는 스페인의 '에밀리오' 할아버지가 치매 증세를 보인다.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고, 아직 상태가 그리 심하지 않은 에밀리오 할아버지의 눈에 다른 친구들의 모습은 영 낯설기만 하다.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야 한다며 하루종일 전화기를 찾아 헤매는 할머니, 앵무새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는 할아버지, 자신은 지금 오리엔탈특급열차를 타고 여행 중이라고 여기는 할머니, 아내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식사조차 하지 못하는 할아버지…

그런데다가 위층에서는 늘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위층은 중증 치매 환자들이 가는 곳이다. 거기다 또 에밀리오 할아버지의 룸메이트인 '미겔'은 멀쩡한 얼굴을 하고 치매 친구들의 돈을 야금 야금 가로챈다.

영화 <노인들>의 한 장면  왼쪽이 주인공 에밀리오 할아버지

▲ 영화 <노인들>의 한 장면 왼쪽이 주인공 에밀리오 할아버지 ⓒ 제16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겉으로 나타나는 치매 증세 말고, 치매 노인이 겪는 증세를 적절하게 표현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자신에게 수시로 나타나는 혼란과 어려움을 설명할 수단을 이미 잃어버린 상태가 대부분이므로, 옆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감정 표현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고 헤아려 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애니메이션 <노인들>이 특별히 치매 노인의 혼란한 머릿속과 감정 상태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단순한 선과 동작을 통해 치매 노인의 일상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보다 쉽게 다가가게 만들어준다.

미겔 할아버지가 동료들의 돈을 뜯어내 차곡 차곡 모아둔 것은 바로 요양원을 떠나기 위한 것. 중증 노인들의 괴성이 들려오는 위층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지 않기에 이들은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그런데 치매에 걸린 데다가, 다리마저 불편한 노인들이 과연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 <노인들>의 한 장면  그들은 요양원을 벗어나 어디로 가고 싶을까

▲ 영화 <노인들>의 한 장면 그들은 요양원을 벗어나 어디로 가고 싶을까 ⓒ 제16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물론 젊은 사람들도 살아야 하니 아픈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 또 돌봐줄 사람 하나 없고 몸이 아파 도저히 홀로 살지 못하니 요양원을 택할 수밖에 없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가족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안하게 돌봐드릴 수 있는 장점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남은 세월을 살아가야 하는 당사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시간이 흐르면서 에밀리오의 상태는 나빠지고 미겔이 그 옆에서 에밀리오를 돌봐준다. 그들의 우정은 또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애니메이션 영화제여서일 것이다. 객석의 구십 퍼센트 이상을 <노인들>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이십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채우고 있었다. 치매 노인들의 엉뚱한 말과 행동에 그들은 자주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나는 마음 놓고 웃을 수 없었다.

나이 먹는 것이, 치매에 걸리는 것이 정말 무슨 잘못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은 순전히 미겔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미겔은 에밀리오와의 첫 대면에서 묻는다. "자네는 또 무슨 죄목으로 이 감방에 들어왔나?"

또한 영화 속 한 마디가 내내 가슴을 울렸다. 기억도 생각도 다 떠나 비록 텅 비어버렸을지라도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있다. "우리는 빈 그릇이 아니야!"

덧붙이는 글 애니메이션 <노인들, Arrugas, Wrinkles> (스페인, 2011 / 감독 : 이냐시오 페레라스)
* 제16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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