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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새로운 일을 준비하며 지난 두 달여간 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이하 알바) 경험을 토대로 1부 ''진상손님' 자가테스트…당신의 품격은?', 2부 '먹고, 싸고, 앉을 수도 없다... 누구를 위한 알바인가'를 통해 우리 주변 친숙한 업종 종사자들이 겪는 다양한 고충을 알리고자 합니다. - 기자말

"직장에서 휴식하고 화장실 갈 권리는 전문직 또는 관리직 종사자들이 지지하는 사회적 정치적 운동의 의제들 중에서 긴급을 요하는 사안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들은 공장 노동자들이 꿈속에서나 그려 볼 수 있는 개인적 자유를 직장에서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근무 중 화장실에 갈 권리가 노동자들에게 없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노동자들은) 필요할 땐 언제나 기본적인 생리 욕구를 해결하도록 고용주가 허락할 거라는 순진한 믿음을 외부인들이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떤 공장 노동자는 6시간 동안 휴식이 허락되지 않아 작업복 안에 붙여 둔 패드에 소변을 봤다. 한 유치원 교사는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스무 명의 아이들을 화장실 밖에 세워 놓고 일을 봐야 했다." (마르크 린더·잉그리드 니거드의 <금지된 곳에서 배설하다> 일부)

지난 두 달여간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괴로웠던 건 '진상 손님'뿐이 아니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에서 인용된 위 글이 편의점·커피숍·생활용품점 등 우리가 흔히 접하는 업종 근로자에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임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먹을 권리, 쌀 권리, 앉을 권리는 없다

우리에게 인간이 누릴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되지 않았다
 우리에게 인간이 누릴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되지 않았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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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했던 편의점은 다른 동종·유사업체 점포와 비교해 그 규모가 크고 청결했으며 점주와 동료 알바생 모두 매우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난감하고 괴로웠던' 상황들이 악덕 점주, 동료간 불화 등 개별적 사유가 아닌 해당업계가 고수하고 있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일하는 내내 경험했던 일 중 첫 번째로 난감하고 괴로웠던 상황은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은 말그대로 점심 밥을 먹고, 오후 업무에 돌입하기 전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상시 손님을 맞아야 하는 편의점 특성상 모든 직원이 한번에 자리를 비울 순 없다. 그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는 교대로 한 명씩, 매장 내 주로 물품 보관과 발주 업무를 보는 사무실에서(한 사람 겨우 운신할 만한 크기), 오로지 식사만을 위한 단 10분도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 근무할 당시 원래 두 명이던 알바생이 본인 한 명으로 준 탓도 있었지만, 다시 한 명이 충원되고도 손님이 밀려들면 '태평스레' 밥을 먹을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손님이 없는 틈을 타 계산대에 서서 간편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삼각김밥이나 빵류가 주메뉴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손님이 들어오면 식사를 중단해야 했다. 무엇보다 음식을 입 안에 넣고 타인과 눈이 마주치면 그것이 무척 계면쩍었는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자존감마저 상했다.

두 번째 난감·괴로웠던 상황은 화장실을 갈 때였다. 가끔 "화장실 좀 이용해도 되겠냐"라고 묻는 손님들에 "없습니다"라고 답하면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매장 내엔 정말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꼭 볼 일을 보고 싶을 땐 바로 옆 건물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내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했다. 하지만 그것도 7시간 근무 내 두 번 가기가 눈치 보였다.

역시 언제 올지 모를 손님이 가장 큰 이유였고, 해당 커피점 직원들 보기가 불편해서였다. 게다가 점주에게 용변을 보러 갈 때마다 허락을 구하는 상황은 어떻게 생각해도 비상식적이었다. 여기에 점주가 밤을 새고 정오 무렵 퇴근하면, 혼자서 편의점을 지켜야하기에 그때부터 두어 시간은 아예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힘겨웠던 것은 다리가 아파도 앉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한 명의 근로자가 성실하게 업무하는 가운데 최소한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일, 그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 아닐까.

7시간 동안 근무하면서도 점주의 허락으로 손님이 없을 때면 사탕통 두 개를 겹쳐 수시로 앉을 수 있었지만(마음 좋은 점주마저도 의자를 두자는 의견에는 끝내 난색을 표했다), 퇴근 후에 잠을 잘 때면 무릎 앞뒤쪽 근육이 쑤시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본사 직원이 손님으로 위장... 누구를 위한 암행점검?

편의점 '속사정' 중에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알바 시작 후 한달 만에 알게 된 본사의 '암행점검' 시스템이었다. 어느날 한 주에 한 번씩 오는 본사 직원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모니터링"을 했는데 우리 매장이 꼴등했다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최소 한 달에 한 번 꼴로 본사 직원 한 명이 손님으로 가장, 예고없이 매장을 방문해 물품 진열과 위생 상태, 특히 서비스 친절도 등을 평가해서 점수를 알려준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의 경우 멤버십(각종 할인·적립) 카드 소지 여부를 묻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나갈 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게 감점 이유라고 했다.

처음에는 당혹스럽고 점주에게 미안하였지만 곧 억울해졌다. 감점 사유가 된 '서비스 규칙'이라니... 계단대 한 쪽에는 손님을 맞았을 때 해야하는 '6가지 접객용어'라는 것이 있다.

손님이 처음 들어올 때 "어서오세요", 계산대에 섰을 때 "안녕하세요, 할인·적립카드 있으세요?", "계산 금액과 받은 금액, 거스름돈 말하기" 등등에 끝으로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까지가 그것이다. 이 멘트는 손님에 따라서 또 그때그때 상황따라 유용하게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딱 봐도 바쁜 손님에게 이 여섯 가지 멘트를 다 하는 건 되레 당사자를 성가시게 한다. 또 단골이라 현금 영수증은 늘 하거나 하지 않음을 알고 있거나, 경험상 나이 지긋한 특히 남자 손님들은 멤버십 카드를 갖고 있지도, 갖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또 손님이 너무 많으면 일일이 그 말을 다 하기가 힘들 뿐더러 되레 '시끄러울' 정도다.

어쩌다 한 번 와서 앞뒤없이, 평가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 결과에 따라 해외여행이나 도서상품권 등 포상도 주어진다고 했다. 이 사실을 알려준 본사 직원에 "이렇게 하는 건 너무 형식적이지 않느냐" 했더니 "그런 불만들이 많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을'도 사람, '갑'도 사람... 동등한 존중이 필요

여기까지가 지난 두 달여간 편의점에서 알바한 내 체험기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조금은 면목이 없었다. '고작 그만한 일을 하고선 무슨 불만이'라고 할 지 모른다. 그것은 내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을 읽을 때 느꼈던 마음과 비슷한 것일 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작가로 성공한 상류층 바버라가 한 달(심지어 한 달!) 간 가정 청소부와 대형 할인마트 알바 등을 경험하며 블루칼라의 현실을 고발한 책을 보며 왕자가 재미로 거지 행세를 해보는 듯한, 어쩔 수 없는 괴리감에 대한 '재수없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책은 미국사회에 꽤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실제 여러 블루칼라 노동자의 응원도 받았다. 내가 이 기사를 쓴 이유도 이 일을 하기 전에 모르거나 무심히 넘겼던 손님으로서의 무례함을 자성하기 위해서다.


태그:#GS편의점, #노동의배신, #암행점검, #아르바이트, #미스터리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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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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