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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3인 동민이. 사진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재능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받는다.
 올해 고3인 동민이. 사진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재능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받는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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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민] "그래도 엄마가 한달에 한번 만나러 오세요"

"5살부터 보육원에서 살았어요. 엄마랑 헤어진 건 잘 기억나지 않아요. 보육원에서 지내다가 그룹홈에 들어왔어요. 그룹홈에 오니까 형들도 누나들도 잘해줘서 참 좋아요."

자신이 찍은 사진 앞에서 자랑스럽게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동민이(이동민·19세)는 지적장애 3급이지만 자신이 찍은 사진을 설명할 만큼 인지기능이 좋고 사회성도 뛰어난 친구다. 하지만 동민이에게 사진을 가르친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란다.

장애가 있는 데다 보육원과 같이 남다른 환경에서 자라다보니 남 앞에 서기를 부끄러워 하고 말도 잘 못하며 때때로 눈치를 보기도 했던 동민이. 하지만 사진을 배우면서부터는 이전에 비해 훨씬 밝고 당당해졌다. 사진작업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존감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일요일엔 엄마가 오신다고 했어요. 엄마가 한 달에 한번쯤 저를 만나러 오시는데 사진전도 보러 오신다고 했어요."

동민이는 다행이도 엄마와 연고가 끊어지지 않은 상태다. 말 못할 사정으로 보육원에 맡겼지만 초등학교 4학년 이후부터는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씩은 동민이를 만나러 왔단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동민이는 그룹홈에 들어가 살며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해든솔에서 마련한 작업장에 취직할 거예요. 요즘 떡 공장에서 떡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어요. 맛있는 떡도 많이 만들고 멋진 사진도 많이 찍고 싶어요."

[지명] "아직도 할아버지가 생각나요"

자신을 닮은 고릴라 사진을 찍은 강지명군
 자신을 닮은 고릴라 사진을 찍은 강지명군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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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닮은 고릴라 사진 앞에서 코믹한 포즈를 취해보이는 지명이(강지명·지적장애1급)는 22살 청년. 해든솔 그룹홈에서 생활하며 선생님들의 일을 돕고 있다. 샘도 많고 욕심도 많아서 사진 작업할 때도 가장 열심인 지명이. 고릴라 사진을 왜 찍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원숭이들의 왕이기 때문이란다.

"이건 킹콩이에요. 저는 원숭이들의 왕이라고 생각해서 킹콩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킹콩이라는 영화는 못 봤지만 원숭이들의 킹. 킹이 왕이잖아요. 그래서 원숭이들의 왕이라고 생각하고 힘도 세고 멋있다고 생각해요."

부모님의 이혼으로 보육원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지명이. 너무 어린시절 헤어져 부모님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할아버지가 지명이에게 주신 사랑은 잊혀지지 않는 듯 어떤 어른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할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저를 많이 사랑해주셨어요. 아직도 할아버지가 생각나요."

할아버지 생각에 울컥한 지명이가 목이 메이는 듯 말을 잇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깊은 듯했다.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지명이는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꿈을 이야기 한다. 

"해든솔에서 일을 열심히 배워서 직장인이 되고 싶어요. 월급 받아서 카메라도 사고 싶어요. 디지털 카메라 말고 렌즈 카메라로요. 엄마, 아빠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요. 제가 열심히 사진을 배우고 찍어서 훌륭한 사진작가가 되면 다시 만나고 싶어요. 선생님들께도 감사해요. 그동안 말썽 많이 부려서 힘들게 해드렸는데 이제 잘 할게요. 사랑해 주세요."

[현정] "결혼 안하고 동생들 돌보면서 살 거예요"

사진을 배운 후 수줍음도 사라지고 표현력도 좋아진 현정씨
 사진을 배운 후 수줍음도 사라지고 표현력도 좋아진 현정씨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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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 현정씨(본명 이현정)는 서른한 살에 해든솔에 들어왔다. 병석에 누운 엄마와 언니 그리고 장애가 있는 남동생과 함께 지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마땅히 돌볼 보호자가 없어 동생과 같이 해든솔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아요. 집에서는 동생이랑 거의 TV만 보고 지냈거든요. 여기 오니 동생들도 있고 선생님도 계시고 일도 할 수 있고 정말 좋아요. 월급을 모아서 옷도 사 입고 언니네도 갔다 오고… 저는 결혼하지 않고 해든솔에서 동생들 돌보면서 평생 살거예요."

카메라로 들여다보는 세상도 즐겁고 선생님들과 사진을 찍으러 여기 저기 소풍을 다니는 것도 즐겁다는 현정씨. 사진 작업을 하면서 현정씨 성격도 많이 밝아지고 자신감 있어졌다.

"처음엔 카메라가 어색했는데 지금은 정도 들고 재미있어요. 비싼 거라서 조심스러웠어요. 혹시 망가뜨리면 어쩌나 해서요. 멘토 선생님이 이거 찍어 보라고 가르쳐 주시고 가깝게 찍어 보라든지 멀리서 찍어 보라든지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찍어서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구요."

현정씨는 장애인 작업장에서 일을 하며 약간의 월급을 받고 있다. 많은 월급은 아니지만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얻는 보람과 기쁨은 남다르다.

"양지작업장에서 일을 하는데 월급 받으면 옷도 사고 여행도 가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그래요. 저는 그룹홈 가족들이 좋아요. 그래서 선생님들처럼 해든솔에 들어오는 친구들과 동생들을 돌보면서 살고 싶어요."

장애인 그룹홈 해든솔 친구들의 사진 작품전
 장애인 그룹홈 해든솔 친구들의 사진 작품전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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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보고 싶으면 엄마처럼 따뜻한 담당 선생님을 생각하거나 엄마 사진 본다는 현정씨는 속도 깊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고아나 다름없던 현정씨와 막내동생을 돌봐준 언니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는 착한 동생이기도 하다. 

"언니, 나 현정이야. 엄마 돌아가시고 힘들었을 때... 나랑 동생 키워줘서 고맙고... 사랑해. 그리고 선생님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장애가 있고 남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 그룸홈에서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 밝고 맑은 세 사람. 그들이 세상을 향해 웃고 있다. 괜찮다, 사랑한다, 감사한다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떠나는 행복한 '사진소풍'에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서 눈물 나는 '사진소풍전'이다.




태그:#해든솔, #장애인그룹홈, #지적장애인, #사진소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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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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