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지난 7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논문 'OECD국가의 삶의 질 구조에 관한 연구'는 그렇게 말한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삶의 질은 OECD에 소속된 34개국 가운데 32번째로 나타났다. 여기서 말하는 '삶의 질'은 OECD가 조사한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국가 신뢰도, 빈곤율 등을 더해 새롭게 만들어진 지표다.

논문의 저자인 이내찬 한성대 교수는 <한겨레>와의 7월 10일자 인터뷰에서 "한국의 삶의 질이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충분한 소득과 안정적 고용뿐만 아니라 부의 편중이 심화되지 않고 극빈자 수를 줄이는 고민을 병행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OECD국가 중 자살률도 가장 높다. 2010년을 기준으로 10만 명당 33.5명이다. OECD국가 평균인 10만 명당 12.8명의 2배를 웃돈다. 2003년 이후, 8년 동안 이 통계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지표들은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불행이 삶 자체의 위험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 어떤 나라들이 행복할까. 논문은 덴마크가 가장 행복하다고 분석했다. 이어서 오스트레일리아,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등으로 이어진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북유럽에 위치한 '복지국가'들의 순위가 전체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1위의 덴마크, 3위의 노르웨이, 6위의 스웨덴 등이 그렇다. 오히려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이 강력한 미국이나 영국은 중위권에 위치해 있다. 이쯤이면, '복지국가가 평범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증세 없이는 복지국가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좀 더 내자고 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버린다. 이래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 '복지국가가 이렇게 좋은 것'이라고 설득하고 싶었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좀 더 내는 것이 이득이고 나와 가족의 행복을 보장받는 길'이라는 것을 웅변하고 싶었다. -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여는 글에서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책표지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책표지
ⓒ 메디치

관련사진보기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이상이 씀, 메디치 펴냄)는 복지국가를 꿈꾸는 책이다. 글쓴이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공동대표, '복지국가 국민운동'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를 통해서 복지국가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사람 중 하나다. 참여정부 때는 건강보험연구원 원장을 지냈는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암부터 무상의료' 같은 정책을 추진했다.

책은 복지국가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한다. 2010년 6·2 지방선거의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국민의 요구가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올해의 총선, 대선에서도 복지는 핵심쟁점으로 논의되었다. 불안이 아니라 행복 속에서 삶을 살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정치권도 이를 외면할 수 없었는지, 선거에 맞춰서 복지공약을 쏟아냈다.

문제는 돈이다.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재정조달이 필수다. 재정조달을 위해서는 증세가 일반적인 해결책이지만,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복지가 시대정신으로 올라서면서, 변화의 흐름도 읽혀진다. <경향신문>의 10월 6일자 대선여론조사에서 '복지를 위한 증세'에 찬성하는 비율이 55.2%로, 반대하는 비율인 44.3%보다 10% p 이상 높게 나타났다. 특히 미래세대인 젊은 층이 가장 높은 찬성 비율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이제 많은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더라도 국가복지가 보편적으로 보장되기만 한다면 기꺼이 그 길로 가겠다고 말한다"(111쪽)는 책의 주장과도 맞아떨어진다. 물론 여론만으로 복지국가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대선후보들의 입장을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증세에 대한 대선후보들의 입장차... TV토론에서도 격렬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증세에 반대한다. 세출 구조조정, 조세·복지행정·공공부문 개혁을 통해서 재원조달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혁신으로 탈루소득이나 체납세액을 관리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여기에 증세의 방법이나 폭은 차후에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논의하겠다고 덧붙인다.

반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증세의 불가피성을 말한다. 낮은 조세부담률, 저출산, 고령화에 대응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소득세 최고세율 38%가 적용되는 구간을 '3억 원 초과'에서 '1억5천만 원 초과'로 조정할 뜻도 내비쳤다. 현 정권에서 이뤄진 '대기업 감세'도 혁신 대상이다.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관련기사: '맞춤형 강조' 박이냐,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 문이냐).

제18대 대통령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온 10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여의도 KBS스튜디오에서 진행된 2차 TV토론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온 10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여의도 KBS스튜디오에서 진행된 2차 TV토론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이러한 입장차는 지난 10일의 두 번째 대선 TV토론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복지정책은 시대상의 반영인데, 재원마련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라는 국민공모 질문에 유력한 두 대선후보가 맞부딪친 것이다.

박 후보는 "재정 건전성을 뛰어넘는 포퓰리즘은 짐이다. 나라 살림을 투명하게 하고,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면서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문 후보는 "복지는 가장 좋은 성장동력이며, 중산층을 살리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다"고 맞섰다.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박 후보는 서민경제의 부담 등을 이유로 증세에 반대하고, 문 후보는 고소득층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제한적인 증세에 찬성하는 모양새다.

'국민건강보험 하나로'가 보여주는, 증세가 내게 좋은 이유

큰 병에 걸리거나 장기간 진료를 받을 경우 가난한 사람들은 진료를 포기해야 하고, 중산층도 본인 부담금 마련이 큰 부담이다. 의료비 불안이 우리 삶을 위협하는 것이다. (…) 우리 국민은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으로 생기는 이중의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유럽 복지국가의 경우처럼 우리도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 의료보장 제도인 국민건강보험 '하나'면 충분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160~162쪽

그렇다면, 증세는 정말로 내게 도움이 될까. 책은 그 중요한 사례로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를 꼽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은 62% 수준이다. 전체 의료비 중 국가가 62%만을 부담한다는 의미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90%에 다다르고, OECD국가 전체로 보아도 우리는 최하위권이다.

따라서 민간의료보험이 급성장했다. 주변에서 암이나 뇌졸중 같은 큰 병 소식이 들려오면, 모두가 "(민간)보험은 들었어?"라고 묻는다. 교통사고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생명이 위중할 때에도, 돈 걱정이 앞서는 상황을 우리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살면서 한두 번은 맞닥칠 위기에서 국가는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책도 전체 국민 열 가구 중 여덟 가구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더 큰 문제는 민간의료보험이 비싸다는 데 있다. 국민건강보험은 보험료가 평균 7만 원이지만, 민간의료보험은 21만 원 수준이다.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유럽 복지국가들은 소득의 12% 정도를 건강보험료로 납부한다. 우리는 5.8%만을 낸다. 책은 가구당 2만 6000원 수준을 더 낸다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일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고소득층과 대기업에게는 서민층보다는 좀 더 많은 부담도 요구된다.

이렇게 '국민건강보험 하나로'가 체계화되면 민간의료보험이 대부분 필요 없어진다. 즉 국민의 실질적인 부담은 오히려 감소한다. 무엇보다도 닥쳐올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든다. "내가 부담한 만큼,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당장의 눈앞에서라면 증세는 손해다. 그러나 멀리 보았을 때, 증세가 내게 좋을 수 있음을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는 충분히 보여준다.

우리의 변화도 필요...정치권에 증세를 요구하자

우리가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설을 원한다면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을 더 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이러한 부담을 더 지겠다고 나서야 한다. 그러면서 부담 능력에 따라 부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라고 정치사회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복지국가 건설을 원한다면 온 국민에게 부담 능력에 따라 세금을 더 내도록 설득하겠다는 정당과 정치인이 더 많아지고, 이들이 우리나라 정치의 주류로 나서야 한다. (…) 반복지의 덫에 갇혀 있는 나라, 복지는 좋은데 부담은 싫다는 국민들로 넘치는 나라는 '나'만 살겠다는 각자도생과 시장 만능주의 세상, 양극화와 민생 불안의 세상을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의 정당 정치와 함께 국민 스스로가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244쪽

국민이 증세를 기피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불신'이다. 각종 여론조사에도 정치권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을 친다. 내가 더 낸 세금이 온전하게 사용될 수 있느냐는 의심이 솟는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정치권의 변화는 그저 요행일 따름이다. "우리가 세금을 더 낼 테니, 정치권은 복지국가를 만들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세금이 제대로 걷히고,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겠다"는 목소리도 높여야만 한다.

증세를 두고, 유력한 두 대선후보는 분명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증세에 관해서는 둘 다 '유보적'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이정희, 김소연, 김순자 등의 진보성향 후보와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국민 인식변화의 폭만큼, 정치권도 움직여나갈 것이다. 아직은 멀었다.

그러나 대선이 일주일도 남아있지 않은 지금, 차기 대통령은 박근혜, 문재인 후보 중 결정될 것이 확실시된다. 물론 선택은 각각 유권자의 몫이다. 이제 우리는 남은 대선기간과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 우리의 행복을 위해 증세하라"고 말이다. 그것이 본질적으로 복지국가를 향한, 국민의 소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기능하리라 믿는다.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를 읽으며, 함께 고민해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이상이 씀, 메디치 펴냄, 2012년 11월, 255쪽, 1만 4천원.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이상이 지음, 메디치미디어(2012)


태그:#<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서평, #복지국가, #증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