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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광역수사대는 예비교사들을 상대로 교사 자리와 관련해 금품을 받아온 한 연구소(S연구소)의 대표 등을 구속 및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10개월 전 이 업체를 처음 기사화해 서울광역수사대에 고발했던 나로서는 너무도 기쁜 소식이었다. 그런데 지난 14일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과 이 사건에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난 뒤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S연구소가 제공한 서비스
▲ 학교에 대한 숨겨진 정보를 준다는 정회원 서비스(연회비 77만 원, 수수료 140~200여만 원)
▲ 3년 안에 정교사로 만들어준다는 프리미엄회원 서비스(납부 금액 : 5000만~1억2000만 원)
▲ 신설학교 개교 시 정교사로 채용하겠다는 신설학교창단멤버 서비스(납부 금액 : 1억5000만 원)
김미화씨는 인터뷰 중 '얘기 들어보면 불법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 왜 돈을 낸 걸까요? (돈을 낸 회원들의) 심리가 뭘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예비교사인 척 그 업체 대표로부터 상담을 받았을 때 그에게서 들은 S연구소의 세 가지 서비스(옆 박스 기사 참고)를 소개한 뒤에 이어진 질문이었다.

사실 김미화씨가 한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 아니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주변 사람들, 특히 학교 밖 사람들 중 비슷한 질문을 한 이들이 많았다. 김미화씨의 질문에 몇 분간 간략한 답변을 하긴 했지만, 인터뷰를 마친 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마음의 갑갑함은 사라지질 않았다. 짧은 전화 인터뷰로 전하지 못한 말들이 가슴에 남아서인 듯했다.

'사립학교 선생 자리는 원래 그래...' 그게 정상은 아니죠

S연구소 누리집. 누리집 팝업광고로 '갑작스러운 사유'로 정상운영이 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이 갑작스러운 사유는 연구소 대표의 구속 입건이다.
 S연구소 누리집. 누리집 팝업광고로 '갑작스러운 사유'로 정상운영이 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이 갑작스러운 사유는 연구소 대표의 구속 입건이다.
ⓒ S연구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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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교사들이 S연구소에 적지 않은 돈을 낸 것은 일단 '사기'와 관련된다. 취재 중 그 연구소를 거쳤다는 경험자 대부분은 "미처 의심하지 못했다"는 말을 했다. 그들이 교직사회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 연구소가 내세운 '국책사업기관'이라는 말의 영향도 있었다.

이 연구소는 오래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로부터 창업지원금을 받았다는 점과 특허증을 받았다는 점을 내세워 스스로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국책사업기관'이라고 홍보했다. 또 연구소의 소장은 스스로 '현직 교사 출신으로 현재 교과부에서 이러 저러한 직책을 맡고 있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이런 홍보 멘트에 속아 이 연구소를 신뢰했던 것이다. 실제 몇 년 전 이 연구소의 회원이었던 한 예비교사는 끝까지 인터뷰를 거부하며 "그곳은 국책사업기관으로 절대 사기를 치는 곳이 아니다, 만일 당신 말이 맞다면 어떻게 10년도 넘게 건재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잠시 달리 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교직사회를 잘 모르는 예비교사들이라도 돈을 내고 학교의 숨겨진 정보를 받는다거나 인사권 자체를 연구소에 위임한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하다. 특히 프리미엄 회원들은 자신들이 낸 몇천만 원의 막대한 금액이 컨설팅 비용이 아닌 브로커 비용으로 쓰인다는 걸 정말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가입해 돈을 낸 이들을 무조건 '순진하게 속았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실제로 이런 측면 때문에 요행을 바라고 이런 곳에 가입한 이들도 문제가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중등교사가 되고자 얼마 동안이라도 노력해 본 일이 있는 이라면 이들을 쉽게 비난할 수만은 없다. 중등교사가 되는 길이 좁아도 너무 좁기 때문에, '사립학교 정교사 채용이나 기간제 교사 채용은 원리 이런 방식'이라는 사고가 만연해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좁은 교단 진출의 문과 교사 채용 비리

정교사든 기간제교사든 교사 채용의 문은 좁아도 너무 좁다
 정교사든 기간제교사든 교사 채용의 문은 좁아도 너무 좁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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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교사직에서 문이 가장 좁은 곳은 공립 정교사 자리다. 공립 정교사가 되려면 임용고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교사 자격증 소지자 수에 비해 선발 인원은 극소수다. 그래서 중등 정교사를 희망하는 이들은 (임용고사 준비와 병행하거나 또는 포기하고) 사립 정교사나 기간제교사 자리를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특정 자리에 대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때 전체가 함께 치르는 필기시험은 가장 공정한 선발 방법이 될 수 있다. 부모의 직업·학벌·성별·외모·연줄 등에 비해 '책상 앞에서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가'로 선발 유무가 결정될 때 탈락자들은 깨끗이 패배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사립정교사 및 공·사립 기간제교사 자리와 관련해서는 이런 문구들이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직자는 넘쳐나지만 국가가 관할하는 공식적인 시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전국 사범대에서 배출되는 졸업생만 해도 전국에서 신규 채용하는 중등 정교사와 기간제교사의 수보다 훨씬 많다. 여기에 교직이수자·교육대학원 졸업자·누적 구직자가 더해지면, 구직자의 공급량은 그야말로 초과 상태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원하는 자리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이들 중 교사 자리를 돈과 인맥으로 채우려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

이 같은 뒷거래는 사실 공립보다 사립의 경우에 더 많다. 지난 7월, 서울 C고등학교 윤아무개 교장 집 금고에서 17억 원의 현금이 발견됐는데 그 중에는 1억 원의 정교사 채용대가가 포함돼 있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 있다. 또, 지난해에는 기간제 교사들로부터 총 14억 원을 받은 부산의 한 사립학교에 대한 뉴스도 나왔다. 최근 문제가 된 S연구소가 교사 채용 브로커 역할을 한 곳 역시 사립학교였다.

그런데 최근 공립학교에서는 법정 교원 수를 모두 채우지 않고 정원 외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때문에 임용고사 선발 인원은 줄어들고 공립학교에서도 학교장이 채용권을 불투명하게 행사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대로 사립학교의 못된 습성이 공립으로 번진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교사들은 이 연구소의 홍보를 접한 뒤 반신반의하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번쯤 문을 두드려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교사 채용 비리와 관련한 문제의 핵심은 사립정교사와 기간제교사의 채용 방식에 있다.

근본적 대안은 공·사립 통합 임용고사 실시

사립학교의 교사 채용권의 일부라도 국가가 관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사립학교의 교사 채용권의 일부라도 국가가 관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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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씨가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한 소감을 물었을 때 나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교사 채용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 교직매매업체가 십여 년간 예비교사들을 상대로 돈을 갈취해올 수 있었던 건 모두가 불공정한 교사 채용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교사 채용 비리가 만연한 곳은 사립학교다. 비리가 끊이지 않는데도 사립학교 학교법인이 교사 채용권을 갖고 있는 게 근본적 문제라 판단된다. 사립학교도 공교육 기관과 다름 없고, 국가에서 교사에게 월급을 주는 데도 학교법인은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인사권을 투명하게 행사하는 사립학교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들도 적지 않은 게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립학교의 정교사 채용권을 국가가 담당하거나 적어도 일부 관여하게 하는 것이다. 예전 순위고사처럼 공·사립 통합 임용고사를 실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무시할 수 없다면 적어도 필기시험 정도는 교육청별로 실시하는 것도 차선책이다.

또 임용고사와 무관한 기간제교사의 경우에는 교육청별로 아예 최종 선발하는 게 가장 좋다고 여겨진다. 사립학교의 자율성이 침해당할 우려가 있다면 적어도 필기시험만큼은 교육청별로 실시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투명한 교사 채용은 바른 교육의 첫걸음

너무도 좁은 교직의 문. 또 돈과 인맥에 의한 뒷거래가 더 이상 놀라운 소식이 아닌 사립 정교사와 기간제교사 자리들. 일자리를 놓고 뒷거래가 오가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문제가 된다. 하지만 교육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다른 분야에서보다 그 악영향이 훨씬 심각하다. 교사는 학생을 만나고 지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육사회학자들은 학생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표면적 교육 과정이 아닌 잠재적 교육 과정이라 입을 모은다. 교과서 속 이야기보다 학교에 떠도는 공기 속에서 학생들은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뜻이다.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어야 할 교사가 돈과 인맥을 통해 불공정한 방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음을 알게 될 때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정의·공정·진실·투명 등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10년 전 당선된 대통령은 당선된 즉시 수많은 사학들의 반발 속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미흡함이 많았지만 당시의 개정 흐름 속에서 2005년 사립학교 교사 채용과 관련해 인사위원회가 감시·감독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만약 연속성 있게 사립학교법 개정의 흐름이 이어졌다면 사립학교 교사 채용은 보다 투명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몇 년 동안 사립학교법은 되레 후퇴했다.

감히 바란다. 다음 정부에서는 부디 사립학교법을 제대로 바로잡을 수 있기를 말이다. 이를 통해 사립학교 정교사 및 기간제교사 채용 방식이 보다 투명해지고, 공교육 교사 수급 체계의 정상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S연구소와 같은 교직매매업체는 언제라도 또다시 등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태그:#서울교육문화연구소, #교직매매, #사립학교법 개정,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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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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