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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 땐 우리들의 통화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 집으로 가는 길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 땐 우리들의 통화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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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밤 11시 40분,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런데 대뜸 "나야. 너한테 미안해서 전화했어." 친구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애써 태연한 척 하며 "그래. 잘 지냈냐? 술 마셨어?"라고 물었다. "응, 미안. 미안해서 전화했어. 잘 지냈지? 미안하다. 계속 연락하려고 했는데. 그리고 지난 번 빌린 돈 말이야. 진짜 갚으려고 했는데 미안해."

친구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야, 잠깐만. 너 무슨 일이야? 지금 어딘데? 뭐하고 있어?" "……." 친구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더 이상 못 견디겠어. 미안하다. 친구야. 더 이상 전화할 곳도 없고, 못 버티겠어. 이제 가려고. 미안하다." "야, 기다려. 기다리고 있어. 내가 지금 갈 테니까.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기다려."

친구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대를 갔다가 다시 공부해서 4년제 대학에 들어갔고, 군대도 무리 없이 잘 마쳤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취업도 했다. 그런데 3년 전, 잘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망해 직장을 잃었다. 물론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어느 날 연락이 와서 회사가 부도나서 잘렸다며 소주나 한 잔 사달라고 해서 위로만 해줬다. 그 후로 시간이 지나 친구에게 다시 연락이 왔을 땐, 좋은 아이템이 있어 이제 곧 대박 날 것이라며 인터넷 창업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친구에게 재차 전화가 왔을 땐, '돈 좀 빌릴 수 있냐'는 물음이었다. 긁어모아 200만 원을 빌려줬다. 그런데 다시 연락이 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미안하다. (죽으러) 간다"는 말이었다.

처음 전화를 받고 화가 났다. 돈 빌려가서 갑자기 '죽겠다'고 말하는 친구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런데 진짜 화가 났던 이유, 친구의 마지막을 막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야, 너 이대로 가면 나는 어찌 되는 거냐? 너 마지막 통화하고 이렇게 가버리면 나는 너희 부모님 어찌 보냐? 다른 친구들은? 친구 하나 못 살리고 보낸 나는 어찌 되는 거냐고?"

친구는 계속 울기만 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지금도 왜 그렇게 울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우리들의 '서른', 어디서부터 우리들의 삶이 이렇게 꼬여버렸는지 이유조차 몰라 한없이 울기만 했다. 그 날 새벽 세 시 언저리까지 통화를 했다. 전화가 갑자기 끊어지면 다시 걸어 달래고 달래며 괜찮다고 힘내자고 말했다. 그러다 지쳐 결국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늦은 오후가 돼서 친구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미안하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질질 짠 것 창피하고 미안해. 힘낼게. 방법이 있겠지. 다시 연락할게. 건강해라."

문자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그냥 슬펐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들과 함께 했을까?
▲ 광화문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이들과 함께 했을까?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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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슬펐다. '우리들의 청춘, 왜 이리 사는 게 힘든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친구에게 한없이 위로했지만, 나 역시 도서관 구석에 앉아 다른 청춘처럼 희망 없는 내일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죽겠다'는 친구와 처지에선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친구와 달랐던 점 하나는 스스로를 "괜찮다"고 위로했을 뿐이다.

그래도 바람 하나는, 친구와의 다음 통화에선 "나도 이제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내일의 '투표'가 우리들의 '희망'이 되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태그:#투표,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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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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