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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른바 '48%'에 속한 사람들의 개표 다음날 아침은 비슷했을 것입니다. 억울했고 믿을 수 없었으며 분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의심하지 않았고, 더구나 그 높은 투표율이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라고 믿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투표 종료 후 이어진 방송 3사의 '출구 예측 조사' 결과 박근혜 후보가 우세했고, 또 그것이 최종 결과에서 사실로 확인된 후 갖게 된 심정은 '망연자실' 그 자체였습니다.

어쩌면 저로서는 더욱 아팠는지 모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정권 교체가 이뤄지기를 희망했고, 또한 노력했습니다. 지난 2003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사건을 담당했던 조사관으로서 장 선생님의 사인 의혹을 밝혀줄 수 있는 '정의로운 권력'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역사적 소명'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말과 글'의 자유를 얻고자 지난해 11월 제 직업이었던 공무원 직위를 사퇴했습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장준하 암살 의혹규명 범국민대책위원회' 주최로 서울 조계사에서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조사 과정을 담은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출판 기념회를 열었습니다. 또한 <오마이뉴스>에 '이 말 한 마디 하려고 공무원 사표 냈습니다'라는 글을 시작으로 이번 선거에서 '왜 정권교체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가'에 대해 강연과 글로 호소했습니다.

이러한 제 호소에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셨습니다. 부족한 사람의 눈물에 같이 울어주셨고 또한 부족한 제 주장에 넘치는 화답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공감에 진심으로 고맙고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더 큰 희망'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많은 분들이 이렇게 열성적으로 마음을 모아주는데 '어찌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못하겠냐'며 낙관한 것도 솔직한 고백입니다.

'멘붕'의 아침, 아내의 말이 고마웠다

2012년 11월 26일, 서울 조계사에서 개최한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출판기념회. 명진스님과 장준하 선생님의 장남 장호권 선생 등 많은 분들이 함께했다. 이날, 연설을 통해 "장준하 선생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정의로운 권력이 세워질 수 있도록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2012년 11월 26일, 서울 조계사에서 개최한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출판기념회. 명진스님과 장준하 선생님의 장남 장호권 선생 등 많은 분들이 함께했다. 이날, 연설을 통해 "장준하 선생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정의로운 권력이 세워질 수 있도록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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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과는 참담했고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무려 100만표가 넘는 패배를 보며 이것이 진짜인가 싶었습니다. 차마 끝까지 그 '참담한 패배'를 지켜 볼 용기가 없어 발작처럼 TV를 껐지만 잠은 쉬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뒤척이며 맞이한 아침. 정말 눈뜨기 싫었지만 인기척에 눈을 떠보니 출근 준비를 하던 아내였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저보다도 더욱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기대했던 아내였습니다. 학생운동 선후배로 만나 결혼까지 한 아내는 제가 재야단체에서 인권 운동을 할 당시 매일 도시락에 '콩' 글씨로 사랑을 표현하여 운동권 내에서 이른바 '내조의 여왕'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아내 역시 마음이 상해 있을 것 같고 저 역시 별로 할 말이 없어 저절로 시선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대에서 아내가 돌아앉으며 던진 한 마디가 들렸습니다.

"설마 잡혀가는 건 아니겠지?"

뜬금없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대선 기간 동안 제가 해온 '말과 글'로 인해 혹여 불이익이라도 받을까 정말 진지하게 걱정하는 아내의 말에 웃음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이런 걱정까지 해야 하는 시대를 다시 만난 것 또한 참담했습니다. 누구를 상대로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비난한 바도 없고 또한 사익을 추구하고자 한 말도 아니었는데 아내로서는 뭔가 불안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미안해졌습니다. 어쩌면 조용히, 그냥 평범하게 공무원 생활하면서 살아도 될 텐데 '스스로 부여한 역사적 소임을 자임'하며 갑자기 사표까지 낸 남편 때문에 저런 마음 걱정까지 하게 된 것이 그냥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던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다시 저를 돌아보더니 또 다른 뜻밖의 말을 꺼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 봤는데…, 정말 당신은 대단한 것 같아."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다시 아내를 쳐다봤습니다.

"이번에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도 진보가 졌잖아. 그런데 보수 교육감이 당선된 마당에 당신이 그냥 그 밑에서 일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선거 결과 후에 사표 내고 나오면 다른 사람 보기에 쫓겨나는 것처럼 보이니 그것도 좀 이상하잖아. 그런데 이렇게 사표내고 선거 운동 기간 안 할 말 다하고 후회없이 일했으니 얼마나 좋아. 그런 판단을 하는 것 보면 정말 당신은 참 대단한 것 같아."

아내에게 고마웠습니다. 그 마음이 사실이든, 아니든 실의에 빠진 남편을 위해 그렇게 말해주는 아내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처음 아내에게 공무원 사표내고 정말 중요한 이 시기에 자유롭게 '정권 교체'와 '진보 서울시 교육감 당선'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아내의 답변은 간결했습니다.

"그래. 지금까지 살아온 원칙대로 하면 되지 뭐. 나중에 죽을 때 후회하지 않게 지금 마음 가는대로 정직하게 살자구. 어차피 공무원 하려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아니잖아."

1991년에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갔었습니다. 그때 첫 면회 신청이 들어 왔다며 나오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부모님이 오셨나보다 생각하며 면회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가보니 생각지도 못한 제 1년 여자 후배였습니다.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평소 성실하고 착한 후배였지만 학생 운동 단체에 가입한 지도 얼마 안 되었고 또 여러 사정으로 많은 대화도 나누지 못했던 후배였습니다. 그런데 버스로 1시간이나 떨어진 그곳까지 그 후배가 혼자 면회를 왔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너무 고맙다며 웃었는데 책 한 권 넣었다며 인사하곤 이내 돌아갔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차입된 책을 펴보니 그 안에 편지가 한 장 있었습니다. 펴보고 웃었습니다.  편지에는 '오늘의 날씨'가 써 있었습니다. '오늘의 온도는 얼마, 꽃은 어느 정도 폈고 하늘은 무슨 색이며 바다에는 파도가 얼마나 친다.' '이게 무슨 편지인가' 황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도 후배는 자주 면회를 왔고 또 그렇게 비슷한 내용의 '오늘의 날씨'를 써서 저에게 넣어 줬습니다. 나중에 물어 봤습니다. 편지를 왜 그렇게 썼냐고. 그랬더니 그 후배의 말이 "선배가 있다는 감방이 일제시대 지하 감방이라고 해서 바깥을 전혀 볼 수 없을 것 같아 날씨를 알려주고 싶었다"는 답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의 아내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제 곁에서 제가 하는 일을 지지해 주는 사람. 남들 보기엔 불안하고 걱정도 되며 때로는 실패도 많이 했지만 그때마다 무너지지 않게 늘 저를 믿어주고 함께해 주는 사람. 그런 아내가 있어 행복합니다.

'문재인은 비빌 언덕', 그래서 아팠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 후보가 2012년 12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동화빌딩에서 열린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선대위 시민캠프 해단식에서 참석자들을 일일이 악수한 뒤 포옹하고 있다. 문 후보는 인사말에서 "제가 부족했고 송구하다"고 밝힌 뒤 "그러나 새 정치를 바랐던 1500만 국민의 꿈이 좌절된 것은 아니다"라며 "5년 뒤에는 제대로 된 정권교체,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 후보가 2012년 12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동화빌딩에서 열린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선대위 시민캠프 해단식에서 참석자들을 일일이 악수한 뒤 포옹하고 있다. 문 후보는 인사말에서 "제가 부족했고 송구하다"고 밝힌 뒤 "그러나 새 정치를 바랐던 1500만 국민의 꿈이 좌절된 것은 아니다"라며 "5년 뒤에는 제대로 된 정권교체,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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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신적 충격은 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누구처럼 지금까지도 TV로 뉴스를 보지 못합니다. 패배의 원인이 무엇이며 왜 우리가 질 수밖에 없었느냐는 분석 글이 넘치지만 솔직히 한 번도 정독하여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민주당을 포함하여 야당이 분석하면 되지 어느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은 제가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상처받은 48%의 국민은 도외시한 채 승리한 51% 국민을 향해 모든 정당이 구애하는 것을 보며 화가 났습니다.

자신을 지지한 51%가 좋아할 '윤창중'씨를 끝까지 대변인으로 앉힌 박근혜 당선인의 고집에 경악했고 반면, 그 51%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또 다시 패배한다며 그들의 마음을 사야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민주당 일부를 보며 실망했습니다. '패배한 것이 죄'라며 문재인 후보를 매도하는 것을 보고 또한 실망했습니다. 어쩌면 너무 과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제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대선이 끝난 직후 <오마이뉴스>에 제가 쓴 '이것만 들어준다면, 박근혜 비난하지 않겠다'는 글처럼 저에게는 이번 선거가 '비빌 언덕'이라고 여겼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 순진하게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가 당선된다면 적어도 '장준하 선생' 사인 재조사와 올해로 꼭 15년이 되는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를 비롯한 군 의문사 사건을 재조사할 수 있는 국가기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은 되어주리라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빌 언덕'이 사라진 자리에 극우인사 '윤창중'과 부도덕한 의혹의 중심 인물인 '이동흡'씨가 헌재소장으로 내정되는 것을 보며 말 그대로 울화통이 터졌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멘붕'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크리스마스 밤, 그냥 내키는대로 제 마음을 표현하는 '페이스북' 담벼락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기다렸던 '산타는' 끝내 오지 않았다. 만약 산타가 왔다면 나는 무엇을 받고 싶었을까. 어쩌면 나는 아무 말도 못했을지 모르겠다. '장준하 선생' 사인 규명과 '판문점 김훈' 등 억울한 군 의문사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소원만 말하기에는 미안한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제주 강정마을, 쌍용 자동차 해고자, 철탑 위로 올라간 노동자, 4대강 문제와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 개혁 문제, 언론 자유. 그리고 또…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 모든 것을 다 묶어 그냥 '문재인 당선'만 해 줬더라면 싶다. 5년 후, 산타가 다시 올 수 있도록 이제부터 '굴뚝 청소'를 잘 해야겠다.

중3 딸아이의 '산타 선언', 다시 희망을 찾다

이렇게 페북 담벼락에 글을 써 놓고 어떤 자료를 찾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딸 아이가 "아빠 뭐하세요?"라며 글방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더니 제 책상에 앉아 뭐라고 또 말을 합니다. 그냥 건성으로 답하며 자료를 찾기 위해 집중하는데 딸 아이가 조용히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제가 찾던 자료가 끝내 보이지 않아 실망하여 다시 컴퓨터 책상에 앉았는데 제가 쓴 '페북' 글 아래에 입력하지 않은 낯선 댓글이 보였습니다.

"아빠. 산타는 아빠에게 오지 않아요. 왜냐하면 산타는 어린이에게만 오는데 아빠는 지금 어른이잖아요."

여기까지 읽고 빙그레 웃음이 났습니다. "아빠를 골려 먹으려고 엉뚱한 말을 써 놓고 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를 잇는 아이의 글에 순간 제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대신 제가 아빠의 산타가 되어 드릴게요. 앞으로 5년 후에는 저도 투표권이 생기니 그때는 아빠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제가 아빠의 산타가 되어 드릴 거예요. 아빠. 힘내세요."

조용히 울었습니다. 그리고 딸 아이가 준 그 한 마디가 '비빌 언덕'을 잃어버려 상처받았던 제 마음을 치유해 줬습니다. 그랬습니다. 제 딸아이의 말을 저처럼 힘들었을 다른 분들과 나눠가지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이제 그만 마음의 상처를 딛고 아침마다 행복한 미소로 눈 뜨고 내일에 대한 새로운 기대로 잠을 청하는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보다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시간이 더 많은 올해가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다시 함께 5년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다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이 땅의 억울한 사연에 대한 관심도 놓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나 억울하게 방치되어 있는' 이 나라의 인권 현실에 작은 목소리라도 함께 공감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하여 5년 후 '다시 돌아올 산타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사회적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부터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5년 후. 제 산타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한 딸 아이 앞에서 그 약속이 부끄럽지 않은 '우리 사회의 희망을 준비하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 길 위에서 여러분이 함께 걸어가 주실 것을 또한 믿습니다. 다시 희망을 말합니다.


태그:#고상만,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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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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