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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9시. 서울 영등포의 한 찜질방. 설 연휴에도 찜질방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기자가 본 사람만 해도 100명은 족히 넘었다. 매점에는 가족 단위로 모여 앉아 설 특선 영화를 보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만두가 놓여 있다. 한 아이가 아빠 무릎을 베고 누워 재롱을 피운다.

오후 11시. 사람들이 하나둘씩 찜질방을 나선다. 단란한 가정의 모습도 사라졌다. TV도 꺼졌다. 남은 이들은 잘 곳을 찾아 나선다. 찜질방 내부를 대충 훑어봐도 혼자 온 사람, 가족과 함께 온 사람이 구분이 간다. 가족들은 찜질방 마루에서 함께 잠이 든다. 혼자 온 사람들은 구석에서 웅크려 자거나, 안마 의자에 눈을 감고 누워 있다.

10일 오전 1시. 고요해진 찜질방. 가족들이 둘러앉아 있던 TV 앞에 한 명씩 자리를 차지했다. 찜질방 식당에는 혼자 남아 배를 채우는 사람들만 남아 있다. 이들은 찜질방이 곧 집인 사람들이다. 설 연휴, 저마다의 외로움을 안고 찜질방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가족끼리 오는 사람들은 다 행복한 사람들"

찜질방 내부 모습. 한 눈에 봐도 혼자 온 사람과 가족과 함께 온 사람이 구분 지어졌다. 새벽에는 코 고는 소리만 들렸다.
 찜질방 내부 모습. 한 눈에 봐도 혼자 온 사람과 가족과 함께 온 사람이 구분 지어졌다. 새벽에는 코 고는 소리만 들렸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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휑한 찜질방 식당 한켠에는 한 여성이 홀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캔맥주 세 캔이 널부러져 있었다. 장윤진(가명·55)씨는 "명절이면 TV 보는 것조차 두렵다"며 "명절은 괴로우니 술 마시고 자는 게 장땡"이라고 연신 술을 들이켰다.

"가족들끼리 (찜질방) 오는 사람들은 다 행복한 사람들이야. 명절은 항상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어. TV만 봐도 그래. '아이구~ 우리 며느리 왔네', '우리 아들 왔네' 하는데 사람이 안 외롭겠어? 소주 마시고 팍 취해서 잠들어야 하는데, 맥주 가지고는 안 취하고…. 여긴 소주를 안 팔아서 나갔다 왔어. 8시 반에 나가서 혼자 소주 한잔 하다가 들어와서 또 마시고 있는 거야. 명절 되니까 마음이 허전해서 살 수가 없어."

23살. 아무것도 모르던 나이에 회사 동료와 결혼을 했다. 회사 안에서 자주 마주치다가 정이 든 그 사람은 결혼한 지 몇 해가 안 지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렇게 혼자 남은 장씨는 식당일을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2년 전, 영등포로 오게 되었다. 그나마 영등포 내에서 이 찜질방이 저렴한 편이라 제 집으로 삼게 되었다. 그렇게 이 찜질방에서 3번째 명절을 맞았다. 올해로 31살이 된 아들이 있지만, 남편과 이혼한 뒤로 남이 된지 오래다.

조금만 더 마시고 잘 거라던 장씨는 남은 술을 다 비우자 찜질방 카운터로 내려갔다. 카운터 입구에는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장씨와 함께 찜질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카운터 직원 몰래 신호를 주고 받자 남자들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둘이 돌아왔고, 찜질방 식당 문은 닫혔다. 그 속에서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남자들이 사온 것은 소주 2병. 명절이 괴로운 이들끼리 술상을 차렸다. 조창호(가명·63)씨는 "피차 외로운 건 마찬가지라 이렇게라도 마시는 것"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조씨는 이 찜질방에서 3년 넘게 살고 있다. 갑자기 그가 장씨에게 "왜 술이 비게 하느냐"며 "술을 따라달라"고 소리를 쳤다. 깜짝 놀란 기자에게 조씨는 "우리가 술도 많이 마시고 성품이 거칠지만 동병상련이라 서로 싸우진 않는다"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세상에 데인 게 많아서 그렇다"... "여기 60~70%는 노숙자"

가족들이 다 떠난 자리에는 혼자 찜질방에 온 사람들이 TV를 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개 술이 취해 있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가족들이 다 떠난 자리에는 혼자 찜질방에 온 사람들이 TV를 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개 술이 취해 있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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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고 있던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설인데 어디 안 가냐"고 묻자 벌컥 화를 냈다. 등 뒤로는 욕이 쏟아졌다. 한 남자가 "인터뷰하면 돈이 나오냐, 술이 나오냐"며 "맥주 한 캔만 사주면 다 이야기 해주겠다"고 기자의 손목을 잡았다. 진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성희(가명·39)씨는 "사람들이 세상에 데인 게 많아서 그러니 이해하라"며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니 바라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떠돌이 인생이었다. 이씨는 "명절이 없어진 지 오래라 이제는 괜찮다"며 "설이라서, 추석이라서 가족이 그리운 것보다는 그냥 가끔 생각나는 게 더 무서운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찜질방 야간 관리자까지 합세했다. "여기 (찜질방) 도난 사고가 많아 저번에 형사가 와서 캐묻고 갔다"며 "쓸데없는 것 묻지 말고 나가라"고 기자를 경계했다. 명함을 건넸지만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신문사가 기자협회 소속인지', '어느 채널에 나오는 언론인지' 등을 캐묻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의 설명이 이어졌고, 그 뒤에야 "인터뷰에 응해주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내 집이에요. 누추하지만 앉아요."

3년 동안 찜질방 야간 관리자는 찜질방 PC방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 그 역시 찜질방에 오랜 기간 상주해온 사람들과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 살다가 야간 관리자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찜질방 밑 24시간 구두집과 야간 관리자를 해왔다. 손톱 밑에 끼인 새카만 때가 그의 직업을 말해줬다.

"여기 있는 사람 60~70%가 노숙자에요. 전부 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죠. '노가다'라고 하죠? 일용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에요. 지적장애인도 한 10명 정도 있는 것 같고. 장기 손님은 따로 안 받고 있는데, 한 달 끊으면 할인을 해줘요. 원래 하루 8000원인데, 5000원으로 한 달 15만 원 내면 되요. 지금은 겨울이라 일반 사람들도 좀 있지만, 여름 되면 전부 여기 상주하는 사람들 밖에 없어요. 더운데 누가 찜질방 오나요. 그냥 여름엔 거의 노숙자라 보면 되요. 7, 8년 전에 찜질방 생길 때부터 오는 사람도 있고, 5, 6년 된 사람도 많아요."

일용직 노동자들, 명절에는 일감마저 없어... 낮잠이 '전부'

찜질방 이불 대여료는 1000원. 찜질방에 오랜 기간 투숙하는 이들은 장판을 이불 삼았다.
 찜질방 이불 대여료는 1000원. 찜질방에 오랜 기간 투숙하는 이들은 장판을 이불 삼았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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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에 가장 많이 상주하는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새벽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아는 직업소개소가 있다면 바로 찾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영등포역 앞으로 나간다. 오전 5시가 되면 영등포역 앞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을 태울 버스가 도착한다. 이 버스는 원래 오기로 했던 사람들을 태우고 떠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리가 남으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간다.

"일용직 아저씨들이 많은데,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요. 4시 30분쯤 돼서 씻고 5시에 나가는 것 같아. 하루 일자리 없고 공치고 들어오면 6, 7시 되는 거지. 일 없는 날에는 하루 종일 잠만 자요."

찜질방 스낵 코너 관리자는 "오늘 일감이 없어서 다들 잠만 잘 것"이라며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여기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10일 오전 9시. 어제만 해도 100명 남짓했던 사람들이 40명으로 줄었다. 관리자 말에 의하면 이 40명이 찜질방을 집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이들에게 행복한 설날은 없다. 그저 외로운 제 한 몸 누일 곳을 찾아다닐 뿐이다. 찜질방이 고향집이 된 이들. '민족 대명절', '설날', '윷놀이', '세배', '덕담'은 모두 옛일이 됐다. 되레 이들에게 명절은 일거리가 없어 두려운 날일뿐이다. 누군가에겐 기다려지던 날이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날이 됐다.

덧붙이는 글 | 김다솜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 기자입니다.



태그:#설날, #찜질방,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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