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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시간표에 그린 그림
▲ '7교시는 절망, 멘탈붕괴' 학생들이 시간표에 그린 그림
ⓒ 이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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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새로운 시작이다. 대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11년째 맞는 신학기이지만 매해 새롭고 매해 정신이 하나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도 역시나다. 교과서가 다 바뀌고 블록수업제도(수업 시수를 종전보다 배로 늘려 수업하는 방식으로 수업 흐름을 끊지 않고 연속적으로 진행하는 방식)가 전면 적용돼 2013학년도는 시간표를 짜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근데 그 가운데 더 낯선 단어가 등장했다. 행복기가 바로 그것. 행복기가 뭐지?

대구시교육청은 1년에 5주 이상의 '행복기'를 만들고 운영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름도 생소한 행복기는 학교에서 행복한 시즌이라는 의미로 학생들이 학교에서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로 만들어진 시책이라고 시교육청 장학사는 설명했다.

그런데 이 행복기의 가장 핵심적인 운영 방침은 수업을 한 시간씩 더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체육이나 음악, 미술과 같은 수업들을 좋아하니 행복기에 '체음미' 수업을 더 늘려 학생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안이다. 그래서 6교시까지 수업하는 학년은 7교시를 하게 되고 1, 2학년의 경우에도 5교시까지 오후 수업을 하게 된다. 처음으로 오후 수업을 하는 3학년도 초반에는 체력이 달려 몸살이 나곤 하는데 1학년이 오후 수업을 해낼 수 있을까? 나는 학생들에게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다음주부터는 행복기라서 7교시를 해요"라고 말했을 때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학생들의 7교시에 대한 반응은 너무 확실하다. 한 학생은 시간표에 그림으로 7교시는 '절망' 혹은 '멘탈붕괴'라고 표현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돌이 날아올까봐 무섭다. 학생들이 학교에 더 오래 잡혀있어야 하는 이유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행복기'라는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건 다른 교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 학교에는 행복기를 운동회 앞에 한번, 예술제 앞에 한번 잡았어요. 그래서 7교시에 운동회 연습, 예술제 연습을 하는 거죠. 그게 무슨 행복기예요."

"작년에 대구시교육청 출석일수가 좀 많았다는 민원이 있었나봐요. 그래서 올해 출석일수를 3일 줄였는데 그러니 수업시간이 모자라게 된 거죠. 7교시를 하긴 해야겠고 말 끼워맞추기로 나온 게 이 행복기라는 말이 있어요."

더구나 행복기에는 수업을 조정해서 짜라는 지침도 함께 있었다. '체음미' 수업은 행복기에 몰아서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총 수업시간은 같아서 행복기에 '체음미' 수업을 몰아서 하면 행복기가 아닌 다른 때에는 오히려 '체음미' 수업이 줄어든다. 대구시교육청의 말대로 학생들이 좋아하는 '체음미' 수업을 오히려 더 오랜기간 박탈하는 꼴이다. 대체 누가 행복해지는 행복기란 말인가.

대구교육청이 말하는 '행복'

대구시교육청 홈페이지 홍보배너
▲ 대구시교육청의 행복교육 대구시교육청 홈페이지 홍보배너
ⓒ 대구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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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동기 대구교육감은 행복교육에 전념하겠다고 발표했다. '행복기'도 그 일환이다. 더욱이 전국 최초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행복교육'이라는 걸 실시한단다. 행복교과서도 있다.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왕따') 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행복지수를 높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란다. 교육청은 이를 통해 학생 자살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13일 우연찮게 출근길에 MBC라디오에서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이 직접 출연해 행복교육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학생들이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행복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교육시킨다고 했다.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교사인 나는 화가 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얼마나 기만적 이야기기인가? 자살하는 학생들이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성격이 부정적이라서 자살한다는 말인가?

지난 6일에도 대구에서 고등학생이 '이 나라 입시제도가 싫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2012년 한 해 동안 대구에서 10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분이 나빠서, 그냥 우울한 성격이라서 그들이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유서를 남기고 수 년간 고통스러워하고 결국 한층 한층 건물을 올라가 몸을 던졌을까?

학생들이 진정 행복해지길 바라고, 학생들의 자살이 줄어들기를 바란다면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해결방법이다. 학생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공문을 통해 3층 이상의 교실과 복도의 창문은 20cm-25cm만 열리도록 공사를 하도록 하고, 수업시간에 책에 적힌 '행복이 무엇인가'를 교사들과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 도대체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까? 심지어 학생들은 '행복교육'을 잘 받았는지 평가도 받아야 할지 모른다.

관련기사 : 잇단 자살에 대구교육청 "창문은 20cm만 열라"

학생들은 매해 10명이 죽어나가는 데 대구시교육청은 '행복교육'나 '행복기' 같은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사업들만 내놓고 실제로 학생들이 살아가고 있는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속이 문제인데 알맹이는 그냥 두고 포장만 바꾸는 것은 위선이고 기만이다.

학생이 입시교육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지만 수업시간을 늘리고 일제고사를 가장 열심히 치르는 대구 교육의 아이러니. 학생이 자살해도 학교의 야간 '강제' 학습은 계속 되는 대구교육. '행복교육'을 하는 대구에서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고통스러운 선택을 할지 교사인 나는 두렵다.


태그:#대구, #학생인권, #자살, #행복교육, #우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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