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 쉘터>의 포스터

<테이크 쉘터>의 포스터 ⓒ 찬란

막연히 불안했다. 서울이 원래 군사도시라던가 깊은 지하철이 안전한 대피소라던가 따위의 얘기도 들렸다. 한동안 북한의 쓰나미와 같은 도발은 이렇듯 적극적인 불안을 조장했다. 하지만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은 더 큰 공포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테이크 쉘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일상으로 스며들며 벌어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커티스의 표정은 우울하다.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바라볼 때도 그랬고 웅얼거리듯 뭔가를 얘기할 때도 그렇다. 건설현장 매니저인 커티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악몽을 꾸기 시작하면서다.

애완견에게 팔을 물어뜯기거나 자신의 어린 딸을 공격하는 좀비가 나타나거나, 하늘에서 갈색비가 내리고 검은 구름 사이로 새떼가 자신을 향해 덮쳐온다. 며칠째 이어지는 악몽으로 불길함을 예감한 남자는 그 징조가 암시하는 것이 세상을 뒤덮을 토네이도의 재앙임을 느낀다.

남자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자신의 집 뒷마당에 지하대피소를 만들기 위해 회사의 장비로 뒷마당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회사에 발각돼 직장을 잃게 되자 대출금도 갚지 않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공사를 하고 비상식량을 채운다. 어린 딸을 수술해야 할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불안이 조금씩 숨통을 조여 오듯 가정경제도 서서히 무너지며 위기를 맞는다.

토네이도가 모든 것을 덮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을 때 커티스의 불안과 공포는 극대화된다. 닥쳐올 재앙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순간, 더 큰 절망에 휩싸인다. 그러나 감독은 젊은 시절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커티스 어머니의 존재를 등장시킴으로 불안의 정체에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 와중에 자신의 상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밝혀내고자 하는 커티스. 그의 악몽은 재앙의 암시일까 아니면 정신이상의 증상인 것일까.

'토네이도가 온다!'... 재앙의 암시일까 정신이상의 증상일까

<테이크 쉘터>에는 공포와 맞서기 위해 서서히 변해가는 주인공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고립되기 시작하며 겪게 되는 이야기와 거대한 토네이도가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공포가 공존한다. 진지한 공포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남자를 지켜주는 아내(제시카 차스틴)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이 영화가 진부하지 않은 것은 시종일관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한 개인의 불안을 관객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의 비정상적인 불안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다가올 뭔가를 정말로 예고하는 것인지 혹은 개인의 정신분열인지에 대한 모호한 지점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또한 감독은 커티스의 불안이 서서히 공포로 바뀌며 고립되기 시작하는 과정의 심리묘사를 꼼꼼하게 표현한다. 화면 가득 불안을 가중시키는 특수효과와 탁월한 연출력으로 저예산 독립영화의 저력을 보여준다.

커티스를 연기한 배우 마이클 섀넌의 불안하고 어두운 기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가만히 서 있어도 완전무결하게 허무뿐인 자태는 엄숙한 절망이다. 지울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한 채 사는 남자의 표정이 정해져 있다면 바로 그런 얼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멜랑코리아>가 지구의 대재앙을 예견한 개인의 우울을 다뤘다면 <테이크 쉘터>는 정체모를 불안에 잠식된 개인과 가정이 어떻게 무너지기 시작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절망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커티스의 표정에 긴 여운이 남는 것은 지치고 외로운 현대인의 단면을 닮았기 때문일까. <테이크 쉘터>는 어느 정도 예견되는 엔딩보다 과정이 충만한 영화다.

덧붙이는 글 <테이크 쉘터>(2011) 드라마 | 미국 | 120 분 | 개봉 2013-04-18 |
감독 제프 니콜스 출연 마이클 섀넌 (커티스 라포체 역), 제시카 차스테인 (사만다 라포체 역), 쉬어 윙햄 (듀워트 역), 캐시 베이커 (사라 역)
테이크 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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