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시하는 최강희 감독 한국 축구대표팀의 최강희 감독이 11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최강희 감독의 후임은 누가 될 것인가. 축구협회는 신속하게 '최강희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 11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 당시 모습. ⓒ 유성호


최강희 축구대표팀 감독이 6월 18일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날 전망이다. 최강희 감독은 지난 2011년 12월 조광래 감독 후임으로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할 당시부터 스스로 '자신의 임기는 최종예선까지'라고 선언한 바 있다. 최강희 감독은 이후에도 수차례 언론 인터뷰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자신의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강조했다.

축구계에서는 최강희 감독의 하차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 감독의 원소속팀 전북도 이란전이 끝난 이후 곧바로 최 감독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은 벌써 차기 감독 후보군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돌연 최강희 감독의 거취에 대해 '유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스포탈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열린 풋살장 개장식에 참석한 정몽규 회장은 "아직 최강희 감독과 유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한 적이 없다"며 "이란전을 마친 뒤 최강희 감독을 만나 유임을 묻겠다, 본인의 생각을 들어본 뒤 다음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월드컵 본선을 확정 짓고 사령탑이 교체될 것이라던 기존의 예상을 180도 뒤집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이것이 단순히 실무자나 관계자 수준이 아닌, 바로 축구협회를 대표하는 수장의 입에서 직접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축구협회의 공식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별것 아닌 발언인 것 같아도, 정몽규 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축구협회가 최종 예선이 임박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령탑의 거취와 대표팀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었다는 고백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강희 감독이 '최종예선 이후 사퇴'를 예고한 때는 첫 취임 기자회견이었던 2011년 12월 22일이었다. 최강희 감독 영입을 주도한 조중연 회장 체제가 물러나고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현 집행부가 출범한 때부터라고 생각해도 올해 2월이다. 적어도 축구협회의 의지가 있었다면 사전에 최강희 감독의 거취를 논할 시간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국민적 관심이 걸려있는 대표팀과 월드컵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인 '사령탑 거취 문제'를 1년 가까이 허송세월하다 이제 와서 다시 논의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축구협회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새 사령탑 선임 늦어질수록 손해 보는 건 대표팀

일찍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한 지적들이 수차례 나온 바 있다. 최강희 감독의 거취 정리와 새로운 사령탑에 대한 선임이 늦어질수록 축구 대표팀에는 향후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리고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최강희 감독은 재임 기간 구원투수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는 '시한부 감독'으로서 리더십의 한계도 여러 차례 드러냈다. 당장의 결과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퇴행적인 '뻥축구'를 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최종예선을 통과하더라도 본선에서는 대표팀의 경쟁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감독이 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처음부터 대표팀을 원하지 않았던 최강희 감독을 최종예선에 이어 본선까지 억지로 데려가봤자 서로에게 '불편한 동거'가 될 뿐이다. 더군다나 지난 1년 6개월간 비정상적인 감독대행 체제를 감수하며 최 감독의 복귀를 기다려왔던 전북과 K리그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난다.

최강희 감독이 전북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후임 감독 선정 문제를 생각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월드컵 본선까지는 불과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새로운 감독이 영입된다고 해도 선수들을 파악하고 손발을 맞추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늦어도 7월 열릴 동아시아축구대회까지는 후임 사령탑 선임을 마치고 월드컵 본선 대비 체제로 돌입해야 한다. 지금 축구협회의 안이한 일 처리로 봐서는, 과연 그때까지 감독 선임은 고사하고 후보군이라도 제대로 추려놓을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 월드컵 때도 부랴부랴 허정무 부르더니...

축구협회의 안이한 일 처리가 도마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에도 축구협회는 당초 우선순위로 놨던 외국인 감독 후보군들이 연이어 고사하며 궁지에 몰리자 부랴부랴 하루 만에 당시 3순위였던 허정무 전남 감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2011년에는 아무 대안없이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고, 최강희 전북 감독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표팀으로 빼 오는 것으로 상황을 수습했다. 체계적인 기획도, 장기적인 비전도 찾을 수 없는 축구협회의 주먹구구식 행정은 대표팀과 후임 사령탑에게도 부담으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지금까지의 행태로 봐서는 축구협회가 또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축구협회가 이렇게 느긋한 이유가 처음부터 '빠져나갈 구멍'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전망도 있다. 홍명보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나, 김호곤 울산 감독은 일찍부터 최강희 감독의 뒤를 이어 대표팀에 오를 수 있는 유력한 후보군으로 거론돼왔다. 월드컵까지 1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이들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몽규 회장의 '최강희 유임' 발언도 진심이라기보다는, 아직 최종예선이 마무리되지 않은 가운데 세간의 관심이 벌써부터 후임 감독 문제로 쏠리는 것을 피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지체할 이유가 없다. 최강희 감독은 어차피 떠날 사람이고 본인의 의지 또한 확고하다. 대표팀은 한시바삐 2014년 브라질월드컵과 그 이후를 대비한 청사진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축구의 미래를 맡기기 위해 어떤 비전을 지닌 감독을 선임할 것인지, 그 역할과 임기는 어디까지로 정할 것인지 체계적인 논의와 검증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처럼 시간에 쫓겨서 여론몰이에 휘둘려 대표팀 감독이 부랴부랴 '땜빵'식으로 선임되는 모양새는 대표팀 사령탑으로서의 권위에도 맞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축구협회가 신속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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