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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교사 유적지에서.
 외국인 선교사 유적지에서.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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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여름휴가의 절정기는 7월 말에서 8월 초까지라고 한다. 해변으로, 산으로, 계곡으로 내남없이 떠나는 계절. 8월은 팔팔하게 끓어오르는 뜨거운 여름의 절정이고 여름휴가의 절정기다. 모두 피서 가는 뜨거운 계절에 집에 가만있는 것도 오히려 휴가가 되기도 하련만, 남편이 모처럼 지리산 종주를 해보자고 한다. 지리산 종주를 해 본 지가 언제였는지를 헤아려 보면 마음이 설렌다.

세 번째 종주산행. 둘만의 오붓한 시간, 며칠을 함께 보낼 수 있어 좋고 지리산 종주해서 좋다. 예전과 달리 비박산행이 금지되어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갈 수가 없어 대피소 예약해야 하는 데 여러 날 신경을 써야 했다. 며칠을 지리산에서 보내려면 몇 개의 대피소를 예약해야 하는데 여름휴가 때라 예약도 쉽지 않았다. 출발 하루 전날에는 3박 4일 동안 먹을 양식과 간식과 옷가지 등을 챙겨 놓았다. 드디어 지리산을 만나러 간다.

지리산 종주 첫날, 노고단 가는 길

노고단 가는 길.
 노고단 가는 길.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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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언제 가도 좋고 어느 코스든 다 좋지만 종주코스의 묘미는 그 중 으뜸이다. 지리산을 어느 정도 알고 싶다면 종주를 해 봐야 비로소 조금은 지리산을 가까이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지리산 종주라 하면 일반적으로 지리산의 주능선이고 가장 큰 골격을 이루고 있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서쪽 노고단까지를 말한다. 동서로 장장 25km에 걸쳐있는 남한 단일 산으로는 최장, 최고의 산마루 길이다.

지리산 종주는 등, 하산 길까지 합쳐 보통 40km 이상의 거리와 최소 2박 3일 이상의 일정과 그에 필요한 산행 짐들과 장비들을 갖춰야 하기에 어느 때보다 배낭 무게가 부담된다. 이번에는 느긋하게 3박 4일 일정을 잡았다. 오전 11시 40분. 집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지하철 2호선을 갈아타고 사상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낮 1시에(1시간에 1대씩 있다) 구례행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는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후덥지근했고, 곤양에서 쉬고 하동 쉬어 구례에 도착했다.

구례에서 성삼재까지 가는 버스는 2시간마다 1대씩 있다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가 좀 넘었고 막차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 난감했다. 마침 서울서 왔다는 중년 부부가 택시를 타고 가자고 해서 성삼재까지 동승했다. 성삼재에 도착한 우리는 함께 탔던 서울 사람들과 좋은 산행되시라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성삼재는 지리산 능선 서쪽 끝에 있는 높이 1102m의 고개로 삼한 시절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라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가는 길에 들어서며...
 성삼재에서 노고단 가는 길에 들어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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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약 1시간. 오랜만에 노고단 가는 길을 걷는다. 천천히 느긋하게. 많은 사람이 가벼운 차림으로 노고단까지 걷고 있다. 노고단 대피소 가는 길은 넓고 한적하다. 비가 제법 온 것일까? 걷는 길 너머로 '콸콸콸' 물소리가 들려온다. 노고단 대피소 가는 길은 넓고 완만한 길로 이어지다가 두 갈래로 갈라진다.

곧바로 치고 올라가는 길에는 가파른 돌계단 길과 호젓한 숲길로 에둘러 가는 길이 있다. 얼마쯤 걷다 보니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계곡 길이 내려다보이는 '무넹기'에 도착했다. '무넹기'라는 지명의 유래는 1929년 구례군 마산면 소재에 큰 저수지를 준공하였지만 유입량이 적어 만수를 하지 못해 가뭄이 들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그 이듬해인 1930년에 해발 1300고지 노고단에서 전북으로 내려가는 물줄기의 일부를 구례 화엄사 계곡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유도수로 224m를 개설했고, 저수량을 확보하여 지금까지도 매년 풍년 농사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무넹기는 물이 부족하여 노고단 부근의 계곡 물의 일부를 화엄사 계곡으로 돌렸다고 하여 '물을 넘긴다'는 뜻에서 '무넹기'라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노고단 가는 길, 외국인 선교사 유적지를 만나

노고단 가는 길.
 노고단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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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숲길 걸으며...
 호젓한 숲길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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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앞에 서서, 화엄사 계곡 길을 내려다보고 땀을 식힌 후 다시 걷는다. 길가엔 야생화들이 반기고 다람쥐도 등산객들이 다니는 길에까지 나와 서성거린다. 사람을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바로 앞에서 귀를 쫑긋하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다. 노고단 대피소가 안갯속에 멀찌감치 보이는 곳쯤에 선교사 유적지라는 푯말을 발견했다. 벽돌로 쌓은 탑 같은 것이 높이 치솟아 있다.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긴 했지만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곳이고 어렵게 찾은 선교사 유적지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저 건물은 무엇일까요?'라는 제목아래 간단하게 소개된 선교사 유적지 글은 이랬다. 

"이곳 노고단은 한여름에도 날씨가 서늘하고 아름다운 경관이 사방에 펼쳐져 있어 예전부터 건강을 위해 찾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 건물은 1920년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풍토병 치료를 위해 지었던 수양관 건물로 '변요한 목사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수양관은 노고단 주변으로 이러한 건물이 여러 채가 있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과 1968년 지리산 무장공비 토벌작전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관리한 인휴 선교사가 떠난 후 현재는 북쪽만 남은 건물 흔적 1채만 남아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군부대 시설과 야영터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사라졌거나 철거한 후 본래의 자연모습으로 복원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노고단에는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배어 있습니다."

지리산 종주산행 중 만난 다람쥐.
 지리산 종주산행 중 만난 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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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하자면 이곳 외국인 선교사 유적지는 일제강점기 시대 외국인 선교사들이 지어놓은 50여 채의 수양관이 있던 장소라는 것이다. 현재는 모두 없어지고 건물터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다. 이곳은 한말과 일제강점기 시대 선교사들이 심신의 피로를 풀고 치료하는 안식처로 혹은 영적 재충전하는 장소 또는 풍토병치료를 받던 곳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1920년대 당시 한국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이질과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이 심해 선교사 자녀들 중 일부가 죽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 수인성 질병을 막는 방법으로 6, 7, 8월 기온이 서늘한 고온지대를 생각했고, 적격지로 노고단을 택한 것이었다. 또한 이곳에서 한글 성경 번역과 주요 성경 공부 교재의 번역이 이루어졌고, 선교전략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1948년 10월에 일어난 14연대사건(일명 여수반란사건) 당시 반란군의 거점으로 활용하던 것을 국군토벌대가 점령했고 6·25전쟁 시에는 빨치산의 거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곳 노고단 밑의 수양관을 모두 불태워버려 건너편 왕시루봉에 있는 몇 채의 집만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실정이라 한다. (왕시루봉은 아직 못 가봤다) 그 후 노고단에 조금 남아 있던 수양관의 흔적들도 사라호 태풍에 모두 훼손되었고 지금은 교회건물 흔적만 남아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좁고 미끄러운 바윗길로 들어섰다. 숲이 우거진 바윗길은 짧지만 제법 미끄러웠다. 숲을 헤치며 올라서자 곧바로 선교사 유적지가 드러났다. 잦은 안개와 비를 맞아 숲은 축축했고 야생화는 여기 저기 피어있다. 유적지는 그야말로 일부 형태만 남아 있었다. 내가 모르는 과거 시간의 흔적이다. 가만히 서서 그때 그 시간과 역사를 느껴보았다. 역사의 현장인 폐허 위에 과거의 흔적을 보고 서 있다가 다시 길로 내려섰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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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안개가 길과 숲을 온통 감싸고 있는 가운데 저만치 노고단 대피소가 보인다.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밝음 아래 드러나던 사물은 안개에 갇혀 있다. 대피소에 도착해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 방을 배정받아 2층 방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왔더니 새로 개조해 더 좋아졌다. 다른 데 비하면 거의 호텔 수준이다.

잠자리도 각각 마련돼 있어 옆 사람과 몸이 붙지 않아 좋고, 전기 콘센트 꽂는 곳도 따로 마련되어 있고, 작은 등도 달려있어 책을 읽기에도 좋겠다. 꼭 지리산 종주나 산행이 아니더라도 노고단까지 와서 산책하듯 와서 하룻밤을 묵어가는 것도 좋겠다 싶다.

안개로 자욱한 밤, 노고단 대피소에서 느긋하게 저녁을 지어 먹고 밤안개 속을 더듬어 산책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지리산에 든 첫째 날 밤이다. 짙은 안개와 어둠 속에서 고요히 하루가 저문다.

"작은 고양이의 걸음으로
안개는 온다.
조용히 앉아
항구와 도시를
허리 굽혀 바라본 뒤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긴다." ('안개'/ 칼 샌드버그)

 산행수첩
일시: 2013년 7월 31일(수)~8월 3일까지
총 산행시간: 29시간 45분(성삼재~천왕봉~중산리)
첫째 날: 2013년 7월 31일(수) :1시간 05분 걸음
성삼재탐방지원센터(4:55)-무넹기(5:30)-외국인선교사유적지(5:55)-노고단대피소(6:00)1,380m)



태그:#지리산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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