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영화 포스터

▲ <스파이> 영화 포스터 ⓒ (주)JK필름,CJ 엔터테인먼트


모든 협상에 능한 대한민국 최고의 스파이 김철수(설경구 분). 그러나 그의 협상술도 스튜어디스로 근무하는 부인 영희(문소리 분)만큼은 예외다. 영희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는 평범한 가장 철수는 많은 스파이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출장이 잦아 결혼 7년 차이건만 아직 아이가 없다. 철수가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줄로만 아는 영희는 남편의 출장으로 도통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게 불만이다.

2세를 가지려고 날짜까지 잡았건만 하필 의문의 테러 사건이 발생하는 통에 태국으로 출장을 간 철수. 세계 각국이 얽힌 위험한 첩보전이 전개되는 태국에 난데없이 영희가 나타난다. 그런데 그녀의 옆에는 잘 생긴 라이언(다니엘 헤니 분)이 함께한다. 부인의 불륜을 의심하는 철수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첩보 작전을 뒤로 한 채, 영희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노심초사한다.

<스파이> 영화 스틸

▲ <스파이> 영화 스틸 ⓒ (주)JK필름,CJ 엔터테인먼트


초여름이 다가오기 직전이었던 2012년 4월. 당시 충무로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명세 감독과 JK필름 사이의 연출권을 둘러싼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미스터 K>로 진행되던 100억 원대의 대형 프로젝트에서 연출을 맡은 이명세 감독과 해외 포함 11회차의 촬영을 진행한 분량을 편집한 영상을 본 제작사 JK필름은 영화의 성격과 방향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명세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JK필름이 자사의 작품인 <해운대>와 <퀵>에서 조연출 경험이 있던 이승준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기면서 <미스터 K>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영화는 태국에서의 해외 촬영 등 모든 진행을 원점부터 다시 시작했다. 영화 제목도 <미스터 K>에서 <협상종결자>로, 다시 <스파이>로 바뀌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JK필름의 대표작인 <퀵>과 <댄싱퀸>의 각본에 참여했던 박수진 작가가 쓴 <스파이>는 <댄싱퀸>을 떠올릴만한 구석이 많다. 서울 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남편 모르게 왕년에 꿈꾸었던 댄스 가수 활동을 시작한 아내가 등장하는 <댄싱퀸>은 정체를 숨긴 여자의 이야기였다. <스파이>는 정체를 숨긴 남자의 이야기다.

'남편은 최고의 첩보원이지만 부인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스파이>의 설정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트루 라이즈>(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 <토탈 라이즈>의 리메이크작했지만, 원작보다 훨씬 유명하다)를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하다. 여기에 대한민국과 북한을 둘러싼 미국, 일본, 중국 등이 개입하는 국제 첩보전을 덮어씌웠다. <해운대> <퀵> 등 일련의 JK필름에서 어김없이 나오던 코미디는 조미료로 쳐졌다.

<스파이>는 배후에 있는 적의 설정이 억지스럽고, 여러나라의 첩보전은 산만하다. 그러나 <박하사탕> <오아시스>에 이어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설경구와 문소리의 앙상블이 주는 매력은 여전하고, 다니엘 헤니, 고창석, 라미란, 정인기, 한예리 등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100억 원대라는 큰 예산이 투입된 작품답게 태국과 한국을 오가며 펼쳐지는 첩보전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7급 공무원>의 규모가 커진 확장 버전을 떠올리게 하는 <스파이>는  추석 연휴에 어울리는 가벼운 코미디 영화로 손색이 없다.

<스파이> 영화 스틸

▲ <스파이> 영화 스틸 ⓒ (주)JK필름,CJ 엔터테인먼트


<스파이>에서 지적해야 할 점은 표절과 참고의 경계선이다. <스파이>는 <트루 라이즈>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남편은 최고의 첩보원이지만 부인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모티프 정도를 넘어서 인물 구조도 흡사하고, 안경을 사용한다거나 여자가 총을 난사하는 등 구체적인 장면까지도 유사하다. <스파이>는 <트루 라이즈>(또는 <토탈 라이즈>)의 판권을 구입하지 않은 걸로 알려졌다.

케이블 프로그램 <썰전>의 2부 '예능심판자'는 지난 방송에서 "예능의 논란, 새로운 진화인가 진부한 표절인가"를 주제로 방송가에 만연하는 주요 컨셉트를 비슷하게 베끼는 문제를 다룬 바 있다. 이것은 비단 방송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상업 영화를 보면서 독창적인 느낌보다는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잦아졌다. 구체적인 사례를 꼽자면 <광해>와 <데이브>, <타워>와 <타워링>, <최종병기 활>과 <아포칼립토>는 많은 면에서 닮은꼴이다. <베를린>은 소설 <차일드 44>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국 영화에서 기술적인 면과 세련된 장르 문법이 더해지는 건 반갑지만, 독창성이 사라지는 건 분명 안타깝다. 그런 측면에서 원작 <천공의 눈>보다 더 흥미진진한 리메이크 영화 <감시자들>, 제한 공간이란 유사한 모티프의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재미있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한국 영화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스파이>가 여기에 속하지 못한 사실이 아쉽다.


스파이 이승준 설경구 문소리 다니엘 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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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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