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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5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당원들에게 손을 들어보이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영장실질심사 마친 이석기 의원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5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당원들에게 손을 들어보이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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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이 종북적이라고 의심받으니 (국회에서) 제명하자는 건 신중히 해야 한다."

지난해 6월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의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사퇴를 요구받은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을 두고 한 말이다. 당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밝힌 것과 '차별화'를 한 셈이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제명 논란이 1년여 만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 의원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강제 구인되자, 새누리당에서는 이 의원을 국회에서 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법당국의 수사를 지켜보자며 신중론을 펴던 당 지도부도 "이번 기회에 종북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자"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는 강경파 의원들에게 떠밀리는 분위기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5일 "국회가 종북세력의 놀이터가 돼 있는데 왜 방치하고 있느냐는 국민적 분노 때문에 (이석기 의원) 제명안을 (국회 윤리특위에) 내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개별 의원의 주장이 아니라 새누리당 차원에서 제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반면 일각에서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상의 자유 침해, 그리고 제명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과 실효성 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새누리 "국회가 종북세력의 놀이터" 이석기 제명 추진

5일 오전에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는 전날(4일) 국회 본회의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한 '이석기 체포동의안'을 화두에 올리며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특히 심재철 의원은 내란음모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석기 의원에 대해 국회 제명을 재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리특위에 이석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이 제출되어 있지만 이것은 통진당 내부의 비례대표 경선부정에 관한 것"이라며 "이 의원이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은 만큼 기존의 자격심사안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란음모라는 경천동지할 이번 일에 대한 징계안을 다시 빨리 제출해야 될 것"이라며 "이석기를 속히 제명 처리하지 않는다면 제명될 때까지 정부에 대한 각종 자료 요구권을 계속 가지게 될 것이고, 이석기 본인에 대한 세비와 보좌진들에 대한 월급 등 막대한 국고낭비도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새누리당은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현재 윤리특위에 계류돼 있는 이 의원 자격심사안과는 별도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이르면 금주 중 제출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상현 원내부대표는 회의 직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사법절차가 마무리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사법절차와 상관없이 (이석기 의원) 제명안을 다시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새누리당 지도부는 사법당국의 엄정한 수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 의원에 대한 의원직 박탈과 진보당 해체론에 신중론을 펴왔지만, 체포동의안 가결 등을 계기로 기조가 변한 것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의원을 제명하기 위해서는 30인 이상의 의원이 자격심사안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출해야 하고, 본회의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새누리당 소속인 장윤석 윤리특별위원장은 이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이 윤리특위로 넘어오면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이 의원을 제명하는 문제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지만, 새누리당이 이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제출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여야 합의로 이 의원을 제명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 시절인 1979년 의원직을 박탈당한 이후 34년 만에 처음이다.

사법부 판단 전에 입법부가 판단?... "절차적 정의 지켜져야"

그러나 아직 정식 기소가 되지 않은 시점에서 새누리당이 이 의원의 제명을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 향후 수사 진척 상황에 따라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사법부가 최종 판단을 내리기 전에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까지 위배해 가면서 입법부에서 정치적 판단만으로 의원을 제명하거나, 당 일부 의원과 지역 조직의 문제를 근거로 정당해산까지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당 윤리특위 간사인 박범계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사법절차를 통해 최종 판단하고 확정될 사안을 충분한 사실조사권도 없는 국회 윤리특위에서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며 "절차적 정의는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어 "16일 열리는 윤리특위에서는 이 의원의 부정경선 건만 자격심사소위에 회부하는 것으로 합의했다"며 "새누리당이 추가로 이 의원을 제소해도 이번에는 안건 상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진보당 해산 문제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국회 권한 밖의 문제로, 헌법 제8조 4항에 따르면 정당해산심판권은 정부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헌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진보당 해산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청원을 제기해야 하고, 진보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게 된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당해산이나 국회의원 제명 추진에 대해서 "성급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것이 유죄를 판결한 것은 아니"라며 "재판 결과가 나온 다음에 그 결과에 따라서 제명을 하든 정당해산을 하든 그 때 하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실효성 측면에서 이석기 의원 제명과 진보당 해산에 반대했다. 그는 이날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석기 의원을 지금 시점에서 자격심사 제명을 하면 그가 비례대표이기 때문에 제 2의 이석기 같은 사람이 또 나온다"며 "이석기 의원은 사실상 식물 정치인이다. 자격 심사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이석기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잃게 된다면, 이 의원의 비례대표 의원직은 재일동포였던 강종헌 한국문제연구소 대표가 승계한다. 강 대표는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의 상고로,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하 의원은 진보당 해산 주장에 대해서도 "당 강령만으로는 법률적 해산 요건이 안 되고, 입증할 때 엄청난 논란이 될 것"이라며 "진보당이 해산되더라도 비례나 지역구 의원의 자격이 박탈된다는 법조항이 없다. 소속 국회의원은 그대로 살아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이 지난 3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몽준 의원, "새누리당 공천부터 개혁해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이 지난 3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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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정몽준 "사상의 자유" 강조하며 '이석기 제명' 반대

지난해 새누리당 대권주자였던 정몽준 의원이 이석기 의원의 제명에 반대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비록 당시 이 의원에게 제기됐던 제명 사유와 현재 내란음모 혐의의 강도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정 의원이 '사상의 자유'를 이유로 제명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국가관의 문제를 제기하며 제명에 찬성했던 박근혜 대통령과도 대비됐다.

당시 정 의원은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 논란에 대해 "그분들이 정말 반국가적인 사상이나 활동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을 했다거나 할 가능성이 있다면, 행정부 수사기관이 수사를 먼저 해야 할 일로 본다"며 "이분들 사상의 문제가 있기에 국회의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그 사람들이 종북으로 의심을 받으니 제명하자는 것에 대해선 저는 신중히 하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 의원은 새누리당의 제명 추진에 반대한다는 거냐는 질문에도 "신중히 하자는 것이니 반대가 되겠다"며 당과 다른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사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개인의 사상을 이유로 국회의원직을 박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우리 헌법과 유엔 자유권규약은 양심의 자유, 즉 사상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보다 훨씬 더 높은 단계의 권리로 보장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국가안보나 타인의 명예 등을 이유로 제한받을 수 있지만, 사상의 자유는 그러 제한 조건이 없다. 특히 유엔 협약은 '아무런 제약 없이' 누릴 수 있는 권리로 규정까지 했다.

국회가 이석기 의원을 사상의 이유로 제명한다면, 헌법과 국제인권협약을 위반하는 셈이 된다. 또한 참여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당시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조항을 삭제하자고 주장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었다.

정몽준 의원의 주장은 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정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79년에 국회 의결로 제명된 적이 있는데 그때 김영삼 당시 의원과 이석기·김재연 의원 사례는 다르다고 본다"며 "국회가 확실한 증거 없이 어느 특정 의원을 사상적 이유로 제명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정 의원이 이석기 의원의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 때 두 번 사면복권이 됐고 그게 절차상의 하자가 있었는지는 알아봐야겠지만 이미 사면복권으로 해소가 됐다"고 말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그는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을 처벌할 때는 처벌의 목적이 그 사람이 반성해서 잘하라는 것이지 앞으로 사회생활을 계속 못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 이석기 의원이 특별사면으로 가석방 돼 피선거권을 다시 회복하게 된 점, 지난해 야권 연대를 통해 국회에 진입한 점 등을 들어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을 공격하고 있다.

한편 새누리당의 이석기 의원 제명안 추진에 대해 진보당은 "국정원과 검찰,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이 한통속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리 짜놓은 것처럼 '내란죄', '체포동의안', '구인영장'에 이어 국회 윤리특위 자격심사안 논의, 위헌정당해산 심판청구 검토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홍성규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새누리당이 드디어 정확한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며 "애초부터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나 진위문제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태그:#이석기 영장실질심사, #이석기 체포동의안,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사상의 자유, #이석기 의원 제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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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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