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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실

2013년 10월 31일 이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깨자, '경술국치'(庚戌國恥) 소식을 듣고 자결에 앞서 <절명시>를 남긴 매천(梅泉) 황현(黃玹) 선생이 떠오른다.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새와 짐승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이 나라가 망하고 말았구나.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천고 옛일 돌아보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렵구나!
- <절명시> 네 수 중 제3수

매천 황현 선생의 초상
 매천 황현 선생의 초상
ⓒ 매천황현선생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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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45년 경북 구미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났다. 이제 곧 고희(古稀)로 살 만큼 살았다. 그동안 교육자로, 작가로, 늘그막에는 시민기자로 누가 알아주든 말든 내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며 이날까지 살아왔다. 솔직히 나는 오늘 죽어도 억울치 않다. 다만 남은 내 소원은 두 동강난 나라가 통일이 되고, 이 땅에서 젊은이들이 꿈을 가지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들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면 그 꿈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그래서 대한민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라고, 뜨거운 조국애를 가졌으면 더욱 좋겠다.

그런데 이즈음은 도시 농어촌 할 것 없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젊은이들이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극히 일부 선택받은 젊은이들만 사람대우를 받을 뿐, 나머지는 대부분은 살기가 매우 힘들다고 탄식한다. 얼마 전 서울에 사는 아들 내외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 이즈음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한 마디로 직장에 다녀도 여유가 없어요. 저녁이 없는 삶이에요.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아 기르기가 힘들어요."

아무튼 이즈음 젊은이들의 삶이 매우 팍팍하다는 것이다. 교단에 있는 한 후배는 요즘 교단생활도 엄청 힘들다고, 그야말로 10년 전이 옛날이라고 말했다.

"선배님은 강원도로 내려간 뒤 역사공부를 해서 잘 알지요. 이즈음 나라 돌아가는 꼴이 꼭 대한제국 말기 같다요."

매천 황현 선생이 순절하신 구례 매천사
 매천 황현 선생이 순절하신 구례 매천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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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이 망한 이유

박도 엮음 <개화기와 대한제국> 표지
 박도 엮음 <개화기와 대한제국> 표지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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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년 전, 교단을 떠난 뒤 강원산골로 내려와 새로 역사공부를 하며 내가 미처 몰라 지난날 젊은이에게 가르치지 못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펴내고 있다.

최근에는 근현대사 편으로 <개화기와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펴냈으며 곧 <미군정기>를 펴낼 예정이다. 내가 공부한 바, 대한제국이 망한 원인은 바로 우리 내부에 있었다.

곧 나라 임금을 비롯한 지도층의 무능과 부정부패, 그리고 특히 매관매직으로 나라가 백성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민생이 도탄에 빠지자 백성들은 횃불을 치켜들고 민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이를 조정에서 스스로 수습치 못하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외국군대를 끌어들이다가 그것이 빌미가 돼 결국 이웃 일본에게 나라조차 빼앗겼다.

그 무렵의 문헌에 나오는 지도층의 부패상 가운데 극히 일부만 옮겨본다.

"명성황후는 비용이 부족한 것을 염려하여 수령 자리를 팔기로 마음먹고 민규호에게 그 정가를 적어 올리도록 하였다. 민규호는 근민관(近民官)의 관직은 팔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응모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 그 가격이 1만 꾸러미라면 2만 꾸러미로 정하였다. 그러나 그 응모자들은 더욱 경쟁이 심하였고, 그들이 관직을 받으면 백성들에게 착취를 강요하여 백성들은 더욱 궁핍하게 되었으므로 민규호는 후회하였다."(황현 지음 김준 역 교문사 발간 <매천야록> 제1권 갑오이전 63쪽)

"이때 초시를 매매하기 시작하여, 그 가격은 200냥에서 300냥으로 동일하지 않았으나 500냥을 호가하면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갑오년(1894) 이전 두 식년(式年·과거 보는 시기를 정한 해) 동안은 1000여 냥씩 하였다. 그것은 화폐가 점차 많아지자 화폐 가치도 점차 떨어졌기 때문이다."(위의 책 83쪽)

"임오년(1882) 6월 초 9일, 한성의 영군들은 큰 소란을 피웠다. … 민겸호는 그 주동자를 잡아 포도청에 가두고 그들을 곧 죽일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수많은 군중들은 더욱 분함을 참지 못하고 칼을 빼어 땅을 치며, '굶어 죽으나 법으로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일 사람이나 하나 죽여서 원한을 씻겠다'고 하며, 서로 고함소리로 호응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 그들은 곧바로 민겸호의 집으로 쳐들어가서 순식간에 집을 부수고 평지로 만들었다. 그 집에는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군중들은 '돈 한 푼이라도 훔치는 자는 모두 죽인다'고 하고, 그 보물을 뜰에 모아 놓고 불을 질렀다. 비단과 구슬이 타서 그 불빛은 오색을 띠고 인삼과 녹용과 사향 등의 냄새가 수리까지 풍겼다. 이때 민겸호는 담을 넘어 대궐로 도주하였다."(위의 책 117쪽)

"이때 외직으로는 감사·유수·병사·수사 등으로부터 수령·진장에 이르기까지 매도되었는데, 그 중 돈을 많이 들여놓은 사람이 실직(實職)을 받을 수 있어 어떤 사람이 자리 하나에 1만 냥을 주고 제수받기도 하였다. … 영남의 어느 읍에서는 1년에 네 번이나 신관을 맞기도 하였는데 … (그들은) 백성들의 재산을 긁어모으는데 급급하였으므로 … 이에 가난하게 사는 사람과 부자로 사는 사람들이 모두 피곤하여 백성들은 살 생각을 잃고 있었다."(위의 책 208쪽)

"갑신 이후로 갑오에 이르는 10년의 사이는 그 악정이 날로 심하여 그야말로 큰 고기는 중간 고기를 먹고, 중간 고기는 작은 고기를 먹어 2천만 민중이 어육이 되고 말았다. 관부의 악정과 귀족의 학대에 울고 있는 민중이 이제는 참으로 그 생활을 보존할 수 없이 되었다. 살 수 없는 민중이 혁명 난을 일으킴은 자연의 추세였다."(이이화 지음 한길사 발간 <한국사이야기> 18권 158쪽)

경계의 말

지난 30일 오후 경기화성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새누리당 서청원 후보가 화성시 봉담읍 선거사무소에서 손을 들어 지지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지난 30일 오후 경기화성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새누리당 서청원 후보가 화성시 봉담읍 선거사무소에서 손을 들어 지지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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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이상 문헌을 들추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망국의 원인은 바로 지도층의 무능과 부정부패임을 불을 보듯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벽, 나는 망국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매관매직 전과가 있는 구시대의 한 정치인 서청원이 염치도 없이 다시 정계로 복귀한다는 보도에, 이 시대 한 지식인으로 이를 방관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님을 깨닫고 읍소드린다. 아울러 내 비록 학식과 덕망이 부족하나 매천(梅泉) 황현(黃玹) 선생의 마음을 백분지일이라도 담아 경계의 말을 남긴다.

나라가 망한 뒤에 망국의 주범들을 꾸짖어도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리고 망한 나라를 다시 되찾는 일이 그 얼마나 어려운가는 지난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우리는 반쪽 나라에 살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지도층과 일부 백성들에게 한 우국노인이 간절히 읍소드린다.

"이 나라는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으로, 후손에게 살기 좋은 나라로 물려주자."
"정권은 유한하지만, 나라와 역사는 무한하다."


태그:#재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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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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