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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신축하 선물, 경조사비, 출판기념회 축하금, 병문안비, 점심식사, 취미활동·역사탐방 비용 지원….

'대한민국 헌정회'(아래 헌정회)가 국가보조금으로 회원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들이다. 헌정회는 전·현직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단체다. 국민의 세금이 이들의 친목도모와 복리후생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오마이뉴스>가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홍익표 민주당 의원에게서 받은 '2012년 헌정회 국가 보조금 정산서'와 월별 지출 영수증 등을 전부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대한민국 헌정회 사업 목적
 대한민국 헌정회 사업 목적
ⓒ 헌정회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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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현재 전직 의원 1111명·현직 의원 299명(특별회원)이 속한 헌정회는 지난해 사업비 중 절반 이상을 회원 지원 비용으로 썼다. '회원 후생 및 복지에 관한 사업'을 명목으로 회원들에게 생일선물, 병문안비, 경조사비 등을 지급했다. 현직 국회의원 후원금, 내부 직원 결혼 축의금 등 사업 목적과 맞지 않는 곳에 국비를 쓴 사실도 드러났다.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돈독히 하기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는 이유로 헌정회 내 골프회, 산악회에 국민 세금으로 지원금을 줬다. 1년에 한 번 있는 의원 동기모임에 헌정회 최고지원금액인 150만 원에 가까운 식사비가 제공되기도 했다. 헌정회가 국비 예산으로 과도한 특혜를 누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이들은 65세 이상 연로회원에게 월 120만 원을 지급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국고로 정치인 후원금, 내부 직원 축의금 전달하기도
전직 국회의원인 헌정회 회원이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혜택
 전직 국회의원인 헌정회 회원이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혜택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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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회는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생신축하' 선물과 경조사비를 회원들에게 지급한다. 지난해에는 생일을 맞은 회원들에게 각각 6만 원 상당의 선물 (와인 1만5000원 + 동양란 4만5000원)을 보내 총 6198만 원 정도를 썼다. 경조사비는 보통 회원의 자제 결혼이나 가족이 상을 당하면 20만 원씩 지급했다. 회원 본인이 사망하면 100만 원을 조의금으로 냈다. 15만 원 상당의 화환도 별도로 전달했다.

'복지'와 크게 관련 없는 경조사비가 나간 경우도 있었다. 헌정회는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장영달·홍희표·김성식 전 의원, 김형오 전 국회의장에게 출판기념회 축하금으로 10만~20만 원씩 제공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 우상호·이낙연 민주당 의원 등 현직 국회의원에게도 후원금을 줬다고 기록했다. 김정숙·문희 전 의원이 대표로 있는 단체의 후원의 밤 행사 때도 20만 원씩 냈다.

심지어 회원이 아닌 내부 직원 경조사비를 국비로 내기도 했다. 헌정회는 지난해 4월 시어머니가 상을 당한 직원 조의금으로 30만 원을 건넸다. 6월에는 편집실 직원 결혼 축의금으로, 7월에는 장인상을 당한 직원에게 조의금으로 각각 30만 원씩 냈다. 11·12월에도 직원 딸 결혼 축의금과 부친상 조의금으로 각각 10만·20만 원을 썼다. 이렇게 나간 한 해 경조사비는 6174만 원이다.

복지사업비 중 하나인 병문안비는 입원한 회원들에게 20만 원씩, 총 7197만 원이 지급됐다. 그런데 김종필 전 총리와 헌정회 사무총장인 권해옥 전 의원에게는 약 30만 원 상당의 선물 또는 현금이 전달됐다. 병문안을 안 갔는데도 계좌이체로 돈을 보낸 경우도 있었다. 헌정회는 병문안비와 관련해 별도의 지급 기준이나 내부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2010년 국정 감사에서 병문안비 집행과 관련해 지적을 받자 "계좌이체보다는 입원 중인 회원을 직접 방문해 확인한 후 전달하고, 1인당 지급액도 통일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2012년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전·현직 의원들이 모여서 골프 치고 등산하고 밥 먹은 비용도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줬다. 헌정회 내 친목단체인 기도회·걷기모임·골프회·기우회·산악회·조우회·정각회는 지난해 지원금으로 100만 원씩 받았다. 활동내역을 증빙하지 않아도 돈이 지급됐다.

일종의 '동기모임'인 2대~18대 국회의원회는 지원금으로 식사를 하거나 와인·등산가방 등을 구입했다. 최고 지원금(150만 원)을 받은 11대~17대 국회의원회 중에는 식사비로 140만 원을 넘게 쓴 모임도 있었다.

이외에도 중국 3박4일 역사탐방을 명목으로 지원금 8869만 원(총 106명, 1인당 개인부담금 30만 원 별도)이 지출됐다. 연말에 열린 창립기념식 개최 비용을 복지사업비로 쓰기도 했다. 당시 행사 때는 공로패와 참석자 기념품 제작, 호텔 식사와 주류 제공 비용 등으로 총 5382만 원이 지출됐다.  

국회입법조사처 "국외 주요국, 전직의원단체에 국고 지원 안 해"

2012년 헌정회 사업비 사용 내역
 2012년 헌정회 사업비 사용 내역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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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헌정회 사업비 중 의원 지원 비용 비율
 2012년 헌정회 사업비 중 의원 지원 비용 비율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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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총 125억8170만 원의 국고를 쓴 헌정회는 사업비 6억8926만 원 가운데 총 3억8829만 원을 회원 복지사업, 친목단체 지원, 역사탐방, 회원접대 비용으로 썼다. 사업비의 50%를 넘는 돈이 전·현직 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지출된 것이다. 이들은 2008년 국회 감사에서 "복지사업비와 회원접대비 비중이 과다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회사무처는 헌정회에 국고를 지원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민주헌정의 유지 발전에 기여한 전·현직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헌정회에 법인단체활동비·연로회원지원금을 지원해 국회활동지원단체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연로회원(전직 국회의원)의 생활보장·복리향상을 도모한다."

2010년 3월에 제정된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 제2조는 "(헌정회) 운영 및 연로회원 지원에 필요한 자금과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보조금을 교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정회처럼 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에 국고가 지원되는 사례는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홍익표 의원에게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 "주요국 의회의 경우 전직의원으로 구성된 단체에 국고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홍 의원은 "국고보조금이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에 쓰인 때가 굉장히 많다"며 "특히 정치인 출판기념회 축하금을 주는 건 정말 목적에 맞지 않는 지출"이라고 꼬집었다. 병문안비, 친목단체지원금 지급과 관련해서도 "국민들이 보기에 과도한 지원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단체든 친목모임은 내부 회비로 운영하는 게 맞다"며 "내년도부터는 이같은 문제가 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엔 의원 연금제도가 없으니, 이해해줘야 한다"
[인터뷰] 이규담 헌정회 사무처장

대한민국 헌정회(아래 헌정회)가 국가 보조금을 지나치게 의원 지원 비용으로 쓴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헌정회 쪽은 "아무래도 회원들이 연세가 많고 생활이 어려우신 분들이 많다보니 복지 관련 지출 비중이 높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규담 헌정회 사무처장(국회사무처 이사관)은 5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상부상조 식으로 서로 모임을 갖고 성의 표시하는 걸 가지고 뭐라 한다면 할 말이 없다"며 "우리나라에는 '정(情)의 문화'란 게 있다, 그런 것도 감안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이 사무처장과의 전화 통화 내용.

- 국고 보조금으로 지출되는 사업비 중 회원 지원 비용 비중이 높다.
"과거부터 그렇게 해왔다. 아무래도 헌정회 회원들이 연세가 많고 생활이 어려우신 분들이 많다보니 복지 관련 지출 비중이 높은 것 같다. 병원에 입원하신 분들도 있고 본인이 돌아가신 경우도 있다. 자녀 결혼이나 부모상도 많다."

- 지난해에는 정치인 출판기념회 축하금 등이 복지사업비로 지출됐다.
"예산을 분리하다보니 거기다 넣은 모양인데, 엄밀히 말하면 복지사업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출판기념회, 심포지엄, 토론회 한다고 연락한다. 이 중에는 회원들이 주최하는 행사가 많다. 그쪽에서 화환 좀 보내달라고 한다. 화환이 없으면 썰렁하지 않나. 그래서 보내준다. 원래 출판기념회는 다 그렇지 않나. 책값도 좀 내고 한다. 헌정회가 창피하게 그냥 오는 것도 체면 없고 해서 (축하금을) 조금씩 가져다 드리고 있다. 돈 10만 원 보내는 것 가지고 뭐라 하면 너무하다. "

- 현직 의원 후원금도 경조사비에서 나갔다.
"그런 데는 후원금을 내지 않는다. 제 기억으로는 없다. 아마 의원 행사할 때 낸 돈을 '후원금'이라고 표현을 잘못한 것이다. 절대 의원 후원금을 낸 적이 없다."

그러나 지난해 헌정회 국가 보조금 지출 영수증 자료에는 '3월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 후원금 10만 원', '5월 우상호 민주당 의원 후원금 10만 원', '11월 이낙연 민주당 의원 후원금 10만 원'을 썼다고 기록됐다. 

- 내부 직원 경조사비도 국가 보조금에서 나갔다.
"직원은 회원이 아니긴 한데…. 직원 결혼은 큰 행사로 볼 수 있다. 원래 직원에게는 일체 국고로 경조사비가 안 나가는데, 어려운 직원이 결혼하다 보니 나간 것 같다. 양해해 달라."

- 국회입법조사처는 "주요 선진국의 경우 전직의원단체에 국고 지원 안 된다"고 한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의원 연금제도가 있다. 독일·프랑스는 의원 1년 이상만 하면 연금이 나간다. 한국은 의원 연금제도가 없다. 그래서 한탄하는 회원들이 있다. 한 의원이 "내가 7선을 했다, 영국으로 치면 400만 원 받아도 마땅한 사람인데 겨우 120만 원 받는 거 가지고 뭐라 한다"고 한탄하는 걸 봤다. 우리는 의원 연금제도가 없어서 연금에 해당하는 연로회원지원금을 지급한다. 다른 나라와의 차이를 이해해줘야 한다."

- 생신축하 선물, 경조사비 지출은 과도하지 않냐는 지적도 있다.
"아무래도 일종의 '전직 의원 친목단체'이다 보니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 선물을 챙겨드린다. 앞으로 살날도 얼마 안남은 분들이 많은데 생일 날 아무것도 없으면 쓸쓸하니까 조그마한 선물을 드린다. 그런 거 가지고 뭐라 하면 할 말이 없다.

헌정회 회원들은 연금도 없고 가난한 분들이 많다. 선거 몇 번 치르다 보니 재산을 다 써서 그렇다. 상부상조 식으로 서로 모임도 갖고 성의 표시도 하고 그런 건데, 그거 가지고 뭐라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우리나라의 '정의 문화'란 게 있다. 그런 것도 감안해주셨으면 한다."



태그:#국회의원, #헌정회, #국회, #국회사무처, #홍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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