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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운조루. 명당 자리에 위치한 오래된 옛집이다.
 구례 운조루. 명당 자리에 위치한 오래된 옛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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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섬진강변에 있는 운조루(雲鳥樓)는 널리 알려져 있다. 구례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한번쯤 들러 가는 집이다. 본디 99간이었으나 지금은 60여 간만 남아 있는 오래된 옛집이다. 한옥이 지닌 멋도 빼어나다. 터도 천하의 명당으로 꼽히고 있다.

이 집을 더욱 빛내주는 건 따로 있다. 집주인이었던 류이주(1726∼1797년)의 마음 씀씀이 덕분이다. 류이주는 영조 때(1776년) 낙안 군수를 지냈다. 지금 운조루를 지키고 있는 후손들의 마음도 예쁘다.

예부터 뒤주는 집안 깊숙이 모셔졌다. 곡식이 곧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조루는 달랐다. 누구나 쉽게 엿볼 수 있는 부엌에 놔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동그란 뒤주에 여닫이 마개를 만들고 '他人能解(타인능해)'라고 써 놓았다.

누구라도 필요하면 가져가라는 의미였다. 수시로 곡식을 채워놓은 것도 잊지 않았다. 주인이 직접 퍼주지 않은 것도 다른 사람의 자존심까지 생각한 배려였다.

구례 운조루. 한옥의 멋이 빼어난 옛집이다.
 구례 운조루. 한옥의 멋이 빼어난 옛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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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의 뒤주. 뒤주에 새겨진 '타인능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운조루의 뒤주. 뒤주에 새겨진 '타인능해'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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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대문에 문턱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언제나 누구라도 드나들라는 의도에서다. 굴뚝을 세우지 않은 것도 그랬다.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에서 이웃에 대한 배려가 묻어난다. 그 마음이 예쁘다.

삭풍 몰아치는 겨울이다.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도 다가오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운조루의 나눔과 배려가 그리운 요즘이다. 그래서 찾아갔다. 지리산 자락,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로. 지난 1일이었다.

곽영숙(43) 씨가 반긴다. 이 집의 막내 며느리다. 경남 진주에서 살다가 지금의 남편(류정수·49)을 만나 1996년 결혼했다. 2004년 운조루로 들어왔다. 벌써 10년 됐다. 그녀의 운조루 생활이 궁금했다.

뒤주와 곽영숙 씨. 곽 씨가 뒤주의 덮개를 열어 보이고 있다.
 뒤주와 곽영숙 씨. 곽 씨가 뒤주의 덮개를 열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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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와 곽영숙 씨. 운조루를 지키고 있는 곽 씨는 운조루가의 셋째 며느리다.
 운조루와 곽영숙 씨. 운조루를 지키고 있는 곽 씨는 운조루가의 셋째 며느리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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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상전으로 모시고 살았죠. 날마다 쓸고 닦고…. 하루 해가 짧았죠. 솔직히 달아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이해가 됐다. 도시에서 살던 젊은 새댁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하지만 집안을 이해한 다음부터는 마음이 변했다고 했다. 뒤주와 안채 2층에 들어선 다락의 의미도 그때 알았다. 다락은 당시 바깥 구경을 할 수 없는 여자들의 쉼터로 따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시나브로 선조들의 마음 씀씀이에 반했다.

후손들의 마음새도 예뻤다. 고인이 된 시아버지는 논 12마지기를 마을에 내놓았다. 당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다. 동학농민전쟁과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집안이 건재한 건 이런 연유인가 싶었다.

"첫 번째는 저죠. 운조루가의 예쁜 며느리인데요. 저를 빼놓을 수가 없고요. 그 다음에는 타인능해 뒤주, 2층 다락, 누마루를 봐야죠."

"운조루에서 빠뜨리지 않고 봐야할 것이 무엇인지" 묻자, 그녀는 이같이 답했다. 대화 상대자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준다.

운조루가의 셋째 며느리 곽영숙 씨.
 운조루가의 셋째 며느리 곽영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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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사진을 찍으면서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더니 "그렇잖아도 쌍수(쌍커플 수술)를 고민하고 있다"며 맞받았다.

"인터넷에 제 사진 많이 올라있으니 다운받아 써도 된다"고 하기에 "어디에서 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고현정씨 사진을 쓰면 된다"고 덧붙였다. 자신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유머 감각이 돋보였다. 곽씨는 이 감각으로 문화관광해설사 교육과 인증을 받았다. 운조루는 물론 구례를 찾는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해설을 한다.

오미마을의 이장을 맡아 마을 일도 보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 "키 크고 예뻐서" 이장이 된 것도 벌써 2년 반이 됐다. 3남매의 엄마 역할도 버겁다.

"제가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선친들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해야죠. 그보다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손가락질 받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집도 잘 보존해서 후손한테 물려줘야죠."

며느리의 마음이 겸손하고 소박하다. 가진 자의 도리를 일깨우는 운조루처럼. 그래서일까. 운조루가 더 귀하게 다가온다. 옛집에 대한 부담감도 사라진다. 사람들도 더 정겹게 느껴진다.

운조루. 지리산 자락,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자리하고 있다.
 운조루. 지리산 자락,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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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운조루, #곽영숙, #운조루 며느리,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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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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