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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역전시장 골목 안 깊숙이 자리한 충남 예산군 예산읍 주교2리 할머니 경로당, 회원 30명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

점심 한때는 함께 모여 밥을 해먹으며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병원에 가는 날이거나, 영감님을 챙겨야 하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빠지지만 매일 10명 이상 밥동무를 한다.

점심밥상을 물리고 나면 대개 윷놀이를 하거나 화투를 친다. "우덜은 고스톱 안쳐. 10원짜리 민화투지." 정직하고 부지런히 살아오신 분들을 누가 의심한다고 할머니들 묻지도 않는 말을 한다.

이쯤되면 '요새 시골 경로당에 다들 모여 점심 먹는데, 뭐가 특별하다고'하는 코웃음이 나올 법하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한사람이 반찬을 담으면, 누군가 나르고, 또 다른 이는 숟가락, 젓가락을 놓는다. 밥 푸는 사람, 국 푸는 사람, 당번을 정하지 않아도 누가 시킬 것도 없이 손발이 척척 맞는다. 다 먹고 난 뒤에는 밥할 때 앉아 있던 사람이 나서 설거지 하고 커피 타고 모든 게 자연스럽다. 밥을 먹으면서 더 먹으라커니, 소화 잘되게 밑엣밥으로 다시 퍼주겠다커니, 이 반찬은 누가 갖고 온 거라커니 왁자하다. 어르신들 소화는 걱정없겠다.
 한사람이 반찬을 담으면, 누군가 나르고, 또 다른 이는 숟가락, 젓가락을 놓는다. 밥 푸는 사람, 국 푸는 사람, 당번을 정하지 않아도 누가 시킬 것도 없이 손발이 척척 맞는다. 다 먹고 난 뒤에는 밥할 때 앉아 있던 사람이 나서 설거지 하고 커피 타고 모든 게 자연스럽다. 밥을 먹으면서 더 먹으라커니, 소화 잘되게 밑엣밥으로 다시 퍼주겠다커니, 이 반찬은 누가 갖고 온 거라커니 왁자하다. 어르신들 소화는 걱정없겠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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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 할머니 경로당은 2012년부터 예산군에서 유일하게 홀몸어르신 그룹홈 시범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혼자된 할머니 6명이 서로 의지하며 이곳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한다.

집은 옷가지를 가지러 가거나 잘 있는지 가끔 들러보는 곳일 뿐, 자식들 모두 출가시키고 남편 저세상으로 먼저 보낸 할머니들은 썰렁한 독방살이 대신 사람냄새 나는 경로당에 깃들어 외롭지 않은 노년을 보내고 있다.

"나라에서 경로당 만들어줘서 노인들 호강혀. 얼매나 고마운지 물러."

무슨 일이든 먼저 나서 척척해내는 젊은(?) 일꾼 김정순(79) 할머니가 경로당 자랑에 여념없다.

"우리집은 산성린디, 여기 와서 살어. 여기는 서로 뭐든 하려구 하구, 미루는 법이 없어. 눈치 볼 것도, 싸울 것도 읍지."

'타동탄다'는 말도 '함께 늙어가는 처지'에는 해당이 없나보다. 너나없이 잘 어울리는 이 마을 어르신들은 김 할머니 외에도 3년 전 인천에서 온 장희순(73) 할머니도 그렇고 오겠다는 사람 밀어내지 않는다.

23일, 어르신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설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오늘은 산자 만드는 날. “역전시장 잔치란 잔치는 저 양반 읍스면 안됐어. 저 형님이랑 폐백음식 하고 그랬는디…, 몇년 안된 거 같은디 어느새 이렇게 늙었어”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최흥분(83) 할머니를 두고 왕년의 얘기가 쏟아진다. 최 할머니는 “몇해 전 넘어져 다리 다친 뒤로는 뭐 할라면 이르케 어려워”라면서 불편한 자세로도 동생들의 성원에 힘입어 손을 쉬지 않는다.
 23일, 어르신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설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오늘은 산자 만드는 날. “역전시장 잔치란 잔치는 저 양반 읍스면 안됐어. 저 형님이랑 폐백음식 하고 그랬는디…, 몇년 안된 거 같은디 어느새 이렇게 늙었어”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최흥분(83) 할머니를 두고 왕년의 얘기가 쏟아진다. 최 할머니는 “몇해 전 넘어져 다리 다친 뒤로는 뭐 할라면 이르케 어려워”라면서 불편한 자세로도 동생들의 성원에 힘입어 손을 쉬지 않는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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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노인종합복지관 독거노인생활관리사 서경희씨는 "이 마을 어르신들은 유난히 정이 돈독하고 화합이 잘 된다. 나도 산성리가 담당인데 5년째 정 들어 주교2리는 자청해 계속 맡고 있다"라며 남다른 분위기를 강조했다.

홀몸노인 그룹홈 지원금이 넉넉치 않고,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후원물품도 예전 같지 않지만, 할머니들은 늦게 오는 사람 생각해서 점심밥은 늘 여유있게 한다. 장사하는 사람이 와도 끼니때면 숟가락을 하나 더 놓는다.

"1년에 430만 원 지원받아서 공과금으로 120만 원 정도 나가고 나면 아무리 애껴 써도 늘 가와지지, 남진 않어. 쌀은 지원받는 거 외에 추수 때 각자 조금씩 가져오는 걸로 충당하는디 살림이란 게 그걸로 끝나나. 특히 지원금이 나오는 2월 전, 1월 한달은 메꾸느라 힘들어. 복지관 선생님이 연신 반찬 갖다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회원들이 입을 모아 'A급 총무님'이라고 인정하는 이계희(72) 총무 할머니가 살림규모를 묻는 질문에 똑부러지게 설명한다.

장희철(81) 회장 할머니도 한마디 거든다.

"요가도 하구 싶구, 노래교실도 하구 싶은디 너무 좁아서 엄두가 안나. 매달 15일에 총회 허는디, 회원 서른 명이 한데 둘러앉을 수도 없으니께. 난 우리 경로당 크게 지어준다고 허믄 누구라도 찍을텨."

그러고 보니 낡은 가정집을 활용해 작은 방은 창고로, 큰 방은 주방겸 회합장소로, 마루였던 곳은 기거하는 방으로 쓰는데, 여섯명 잠자리가 빠듯하겠다.

차례상에 올릴 산자를 함께 만드는 일. 그런데 크기가 다 달라 어쩌냐고 물으니 “걱정마. 조금 들 먹으면 어떻고, 더 먹으면 어뗘. 크고 작은 거 안가려” 쿨한 대답이 돌아온다(위). 커다란 통북어가 물을 잔뜩 머금고 두드려 펴질 각오를 하고 누워있다. 모든 일을 힘이 아니라 수십년 쌓은 요령으로 해내는 할머니들의 자신감 있는 대답 한마디. “펴서 만들어 놓은 건 맛읍서”
 차례상에 올릴 산자를 함께 만드는 일. 그런데 크기가 다 달라 어쩌냐고 물으니 “걱정마. 조금 들 먹으면 어떻고, 더 먹으면 어뗘. 크고 작은 거 안가려” 쿨한 대답이 돌아온다(위). 커다란 통북어가 물을 잔뜩 머금고 두드려 펴질 각오를 하고 누워있다. 모든 일을 힘이 아니라 수십년 쌓은 요령으로 해내는 할머니들의 자신감 있는 대답 한마디. “펴서 만들어 놓은 건 맛읍서”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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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몸어르신들만 남은 밤시간에는 무얼 할까.

"테레비 연속극 보며 저년, 나쁜 년, 징역보내야혀 하며 욕허지. 밥두 같이 먹는 게 맛있구, 테레비두 같이 보는 게 재밌구, 그래서 사람은 혼자 못 살어."

하나 같이 10년 이상 젊어보이는 주교2리 할머니경로당 어르신들, 비결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겠다.

형님, 아우 하며 이웃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자매로 서로 의지하며, 어울려 많이 웃기.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경로당, #함께사는 세상,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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