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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여의도까지 가서 참석했었습니다.
▲ 2013년 2월 25일 제 18대 대통령 취임식 울산에서 여의도까지 가서 참석했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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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2013년 2월 25일. 대통령 박근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취임식 날이 생각나네요. 2013년 2월 25일. 벌써 1년이 다 돼갑니다. 대통령 취임식에 한 번 참석해 보려고 인터넷에 등록하고 초청장을 받았을 때, 역사적인 현장에 참석하게 된다는 걸 가문의 영광 쯤으로 여겼습니다.

'기본'이 안 지켜지는 사회

2013년 2월 25일. 당시 저는 제가 사는 동네 한 학교에 대체인력 일용직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일용직 일자리라 정규직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적은 임금이었지만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다른 학교에 다니다가 1년도 되기 전에 퇴직금도 못 받고 계약해지 됐다가 한 교육의원의 민원 접수로 다시 일자리를 얻게됐습니다. 그래서 더 성실하게 일했지요.

1년 전 대통령 취임식에 갔던 일이 생각나네요. 뉴스를 보니 전국에서 8만여 명이 초청받아 참석했다더군요. 발디딜 틈도 없이 행사장을 꽉 메운 관중들 틈에서 무대 구경도 제대로 못해보고 왔지만, 취임식 장에 있었다는 기분이 흐뭇했습니다. 당시 저는 학교에 하루 휴가를 내고 참석했습니다(관련 기사 : 대통령님, 제가 쓴 희망의 메시지 보셨습니까?)

저는 현재 크게 세 가지 일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2000년 7월 초부터 2010년 3월 중순까지 10년 가까이 하청업체에서 일했습니다. 제가 현대자동차로부터 정리해고 당한 지 4개월 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가 불법 파견을 저질렀다'고 판결내렸습니다.

2003년 이후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노동자로 이뤄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현대차는 불법파견 중단하고 정규직 전환 이행하라"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습니다. 저도 4년 전 하청업체에 사직서를 억지로 내고 나오긴 했지만, 부당해고자로 인정돼 금속노조에 다시 가입했습니다. 현재 현대자동차가 불법 파견을 인정하길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관련 기사 :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저 잘렸습니다).

2개월짜리 근로계약서에 도장을...

두 번째 일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 관한 일입니다. 2012년 7월 초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정규직 노동자가 정년퇴임 하면서 자리가 비었습니다. 교육청에서 정규직 발령을 내지 않자 대체인력으로 제가 일하게 됐습니다. 학교는 저를 임시 일용직으로 대했습니다. 이미 저는 다른 학교서 계약해지를 당한 적이 있어 고용불안에 떨면서 일을 해왔지요. 6개월마다 한 번씩 고용계약을 다시 체결하면서 말입니다. 다행히도 지난해 7월 초, 학교는 근무 1년이 지났지만 계약을 해지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에서 '교육감 직접고용'과 '교육공무직 쟁취'를 주장하고 있어 그 힘이 작용하나 싶었습니다.

"3월 초에 교육청에서 정규직 발령이 날 확률이 커서 이렇게 계약해야 한다."

하지만 2013년 12월 마지막날, 저는 갑자기 교장실로 불려갔습니다. 고용계약을 다시 체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4조 고용기간'이라는 항목에 그동안 여러 차례 고용계약을 했을 때는 없었던 조항(②항 본 계약기간 종료와 동시에 근로계약은 자동 해지된다)이 첨가돼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제 방식으로 정리해보니 '계약기간은 2월 28일까지로 하고, 정규직이 발령이 나와도 계약해지, 발령이 없어도 계약해지'였습니다.

이미 찍어버린 도장. 항의해도 소용 없는 일이 됐습니다. 학교가 그런 변칙 고용계약을 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청렴교육 시범학교'라는 곳에서 말입니다(관련 기사 : 2개월 근로계약서... 이게 새해 선물입니까).

저는 '대한민국 신문고'를 통해 울산시 교육감, 교육부 장관, 박근혜 대통령 앞으로 호소문을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울산시 교육청 인사 담당관이 답변을 달았더군요.

"귀하의 민원은 교육부으로부터 재분류돼 우리 교육청으로 이송된 민원으로, 우리 교육청에서 답변드립니다. 지방공무원 대체인력은 소속 정규공무원의 1개월 이상 병가, 출산휴가, 휴직 등의 결원으로 인한 단기간의 업무공백을 해소하고자 한시적으로 외부인력을 채용해 운용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OO초등학교에 정규공무원 대체인력으로써 한시적으로 근무 중에 있습니다. 귀하의 안타까운 사정은 공감합니다만, 우리 교육청 인사운영상 귀하의 사정만을 고려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가 났습니다. 국민신문고에 호소문을 올렸는데 왜 울산시 교육청 인사 담당관이 답변을 달까요. 저는 울산시 교육청 담당관의 답변을 보고 '학교 대체인력 노동제도도 위장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방공무원 대체인력은 소속 정규공무원의 1개월 이상 병가, 출산휴가, 휴직 등의 결원으로 인한 단기간의 업무공백을 해소하고자 한시적으로 외부인력을 채용하여 운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에서 1년, 지금 다니는 OO초등학교에서 1년 7개월 다니다 계약해지됐습니다. 그것이 단기·한시적이라고요? OO초등학교의 사례는 교육청에서 말하는 "1개월 이상 병가나 출산휴가, 휴직"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정규직 공무원이 정년퇴직했습니다. 저는 교육청과 학교의 비상식적인 태도에 치가 떨렸습니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아르바이트

세 번째 일은 24시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관한 것입니다. 제 학교 일당은 5만3000원 정도 됩니다. 4대보험과 식대, 차비가 포함된 일당이라 이것 저것 공제가 되면 한 달에 받는 급여는 100여만 원 남짓 됩니다. 그마저도 공휴일이 많으면 월급은 줄어듭니다. 일용직이라 출근하는 날만 일당이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턱없이 부족한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저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게 지난해 11월께였습니다. 편의점주는 제 나이를 고려해 시급 4500원을 준다고 했습니다(2013년 고시된 최저임금은 4860원, 2014년 최저임금은 5210원). 그 시급은 2014년 해가 바뀌어도 그대로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올해 우리나라가 '기본만이라도 지켜지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기본만이라도 지켜지고 있다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십수 년 동안 처절하게 투쟁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기본만이라도 지켜지고 있다면 제가 그렇게 여러 정부기관장 앞으로 호소문을 쓸 이유도 없었습니다. 기본만이라도 지켜지고 있다면 아르바이트들이 최저임금을 받자고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산성 향상에 투입돼야 할 상황에서 "기본만이라도 지키라"며 시간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2월이 됐습니다. 몇 주 뒤면 제18대 대통령 취임날 1주년이 됩니다. 청와대 누리집에 들러보니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문구가 보였습니다. 서민들의 밥벌이가 위협받는 게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아닐 것입니다.

현대자동차가 기본만이라도 지킨다면 더이상 불법파견을 하지는 못할 겁니다. 불법파견으로 일하고 있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겠지요. 교육부가 기본만이라도 지킨다면 위장 대체인력을 사용해 차별과 착취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사용 중인 대체인력이나 비정규직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겠지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전국에 있는 편의점들이 기본만이라도 지킨다면 아르바이트들이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야간 수당·주휴 수당을 착취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노동착취를 당하지 않는 것, 차별을 당하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 권리입니다. 저는 이런 기본이 지켜지는 게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박근혜 대통령님.

부당한걸 부당하다고 말할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당한걸 부당하다고 말할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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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학교 대체인력, #교육청, #비정규직, #울산,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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