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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사는 지인이 볼일이 있어 서울에 왔다가 연락을 해왔다. 궁궐의 가을을 보고 싶단다. 서울 사는 사람에겐 궁궐의 가을은 언제든지 볼 수 있어서 그런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데, 궁궐이 없는 섬에 사는 사람에겐 이채롭고 특별한 풍경인가 보다. 하긴 나 또한 제주 섬엔 흔한 오름의 가을을 보고 싶다며 매년 그 친구를 귀찮게 했으니, 별 수 없이 함께 궁궐 구경에 나섰다 . 

여러 궁궐 중 어느 곳에 갈까 하다가 오랜만에 풍성한 수목과 오래된 전각 사이로 산책하기 좋은 창덕궁의 가을이 보고 싶어 이름도 특별한 동네 종로구 와룡동으로 갔다. 와룡동은 이름대로 '용(왕)이 누워 쉬는 동네'로, '봉황의 날개'라는 뜻의 종묘 옆 봉익동과 짝을 이룬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동네 가운데 하나다. 조선시대 태조 5년(1396년)부터 동네 이름이 사용됐다고 한다.

파란만장한 조선왕조의 역사를 목격한 창덕궁의 노거수들

이궁 혹은 동궐이라고 불렸던 창덕궁은 조선왕조의 영욕이 서린 곳이다
 이궁 혹은 동궐이라고 불렸던 창덕궁은 조선왕조의 영욕이 서린 곳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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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건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궁궐이 자연처럼 느껴지는 창덕궁.
 자연과 건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궁궐이 자연처럼 느껴지는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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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계절이라 각양각색의 외국인을 포함한 많은 시민들과 함께 창덕궁 안으로 들어갔다. 창덕궁은 1405년(태종 5) 완공되었으며, 면적은 43만4877㎡의 넓은 궁궐이다. 이 궁궐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그만 소실되었다가, 몇 번의 화재를 겪고 1647년(인조 25)에서야 복구가 완료되었다. 창덕궁은 많은 재앙을 입으면서도 여러 건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는데, 금원을 비롯하여 다른 부속건물도 비교적 원형대로 남아 있다. 창덕궁은 지난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공식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궁궐이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궐'이라고 하고, '이궁(離宮)'이라고도 하는데, 이궁이란 나라에 전쟁이나 큰 재난이 일어나 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지은 궁궐을 말한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궁궐이 모두 불타버리자 왕실은 경복궁을 폐허로 버려두고 창덕궁만을 재건해 정궁으로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조선의 왕들 중에는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한 이들이 많았다. 많은 왕들이 머물며 나라를 다스린 탓에 창덕궁은 자연스럽게 조선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궁으로써 창덕궁이 생겨난 유래는 이렇다.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은 이방원은 형 이방과를 2대 왕 정종으로 임금 자리에 앉혔다. 왕위에 오른 정종은 다음 해에 수도를 옛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으로 옮겼다. 형제들 사이에 살인이 벌어진 한양이 싫었기 때문. 왕위에 욕심이 없었던 정종은 즉위한 지 2년 만에 동생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이방원은 3대 태종으로 왕위에 올랐다. 태종은 아버지가 수도로 삼았던 한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형제의 난이 일어났던 경복궁으로 돌아가는 것을 께름칙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경복궁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세우도록 했고, 그렇게 지어진 것이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왕위를 둘러싸고 왕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비극에서 탄생하게 된 것.

평탄한 곳에 질서 정연하게 건물이 들어선 경복궁과는 달리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궁궐로 유명하다. 다른 궁궐들이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어졌다면 창덕궁은 자연 지형에 맞게 배치되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궁궐 내에 오래된 노거수(老巨樹 : 오래되고 큰 나무)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즈음 창덕궁을 빨갛게 물들이는 단풍나무는 물론,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회화나무, 느티나무, 향나무, 소나무, 뽕나무, 다래나무 등은 오랜 세월이 느껴지듯 구부정한 자세로 서서 궁과 전각, 석탑을 지키고 있어 눈길과 발길을 머물게 했다. 수백 년 풍상을 이겨낸 노거수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한 창덕궁은 자연과 건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궁궐이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태풍에 허리가 꺽인 가슴 아픈 나무

거칠것 없는 기개와 기품이 느껴지는 천연기념물 회화나무.
 거칠것 없는 기개와 기품이 느껴지는 천연기념물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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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간 조선왕조의 영욕을 보며 살아온 천연기념물 향나무의 다친 모습이 안타깝다.
 수백 년간 조선왕조의 영욕을 보며 살아온 천연기념물 향나무의 다친 모습이 안타깝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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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입구인 돈화문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후손을 반기는 나무가 회화나무다. 하늘을 찌를 듯 큰 키의 회화나무 세 그루가 어깨동무를 한 친구들처럼 사이좋게 서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창덕궁을 다시 지을 때 심은 것으로 추정하면 나이가 최소한 400살은 넘을 것이다. 이 회화나무들은 창덕궁 그림 <동궐도>에도 그려져 있다.

궁궐 너머로 뻗어나간 가지들의 형상이 물안개가 피는 듯, 번개가 치는 듯 거칠 것이 없어 쉬이 알아볼 수 있는 나무다. 돈화문 주변은 조정의 관료들이 집무하는 관청이 배치되는 공간으로, 이곳에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궁궐 정문 안쪽에 괴목(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을 심고 그 아래에서 삼공(三公)이 나랏일을 논했다'는 중국 고사에 의한 것이다.

회화나무는 자유분방하면서도 기개 있고 기품을 잃지 않은 모습에 '학자나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궁궐 이외에 학덕 높은 선비들이 사는 마을에 흔히 심었다. 이 나무의 분위기를 느끼는 데는 동서양이 비슷한가보다. 서양에서도 'Scholar Tree(학자 나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회화나무 꽃이 필 즈음에 과거 시험이 있었다는 것도 선비나무 혹은 학자나무라고 부르게 된 연유가 되었다고. 예로부터 선비들의 입신출세를 상징하는 나무로 사랑받아왔고 선비들이 이사할 때 이삿짐 목록에 빠뜨리지 않았다 한다.

지팡이 같은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지만 노거수 나무의 위용은 여전하다.
 지팡이 같은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지만 노거수 나무의 위용은 여전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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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100m 정도 걷다 보면 절로 눈길을 끄는 우람한 나무 한 그루를 만날 수 있다. 무려 700살이 넘은 신령스런 분위기의 향나무다. 750살로 추정되는 이 향나무는 1824~1827년 사이 그려진 궁중 기록화인 <동궐도>에도 지주로 받친 모습이 그려져 있다.

파란만장한 조선왕조의 영욕을 수백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켜본 증인이요, 생명체가 바로 천연기념물 창덕궁 향나무다. 향나무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부정을 씻어 주는 정화 기능을 가졌다고 믿어 이렇게 궁궐을 비롯해 사찰, 사대부의 집에도 많이 심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노거수 향나무의 형상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2010년 태풍 '곤파스'의 피해로 인해 12m나 되던 키가 4.5m에서 부러지는 큰 손상을 입고 말았다. 큰 가지의 절반 이상이 부러진 나무 모습을 보니 마치 존경받던 집안 어른 한 분이 다친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우람한 줄기나 용틀임 하는 모습은 남아 있어 천연기념물로의 보존 가치는 여전하다고 한다.

잘린 부분은 종묘제례나 궁중 행사 등에서 향을 피우는 데 사용한다고. 향나무는 향을 풍기는 여러 식물 중 가장 유명하다. 나무를 태울 때 강한 향이 나는데, 그 때문에 일찍이 시신이 상할 때 생기는 냄새를 없애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향나무를 태울 때 나는 향은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도 알려져 제례에도 빠지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향기를 뿜어내는 나무의 희생이 인간사에 많은 의미를 만들어준 셈이다.

향나무는 나무 몸체에 마치 용(龍)이 하늘을 오르는 듯한 모양의 줄기가 꼬여 있는 것이 참 개성적이고 특이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나무다. 기나긴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향나무 특유의 용틀임을 하듯 가지가 뒤틀린 모습 하며, 우람하고 당당한 밑줄기는 그런 감탄사가 충분히 나올 만하다. 비록 세월의 무게에 겨워 무거워진 몸을 철제 지지대에 의지하고는 있지만 노거수의 위용은 여전하다.

늙음은 쇠퇴가 아닌 완성임을 보여주는 고목

유년시절 동네의 당산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고목 느티나무.
 유년시절 동네의 당산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고목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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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하게 가지를 펼친 붉은 소나무, 적송.
 신묘하게 가지를 펼친 붉은 소나무, 적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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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가면 궁궐은 물론 민가에서도 사랑받는 고목(古木) 느티나무가 곳곳에 서 있다. 우리나라 고목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느티나무다. 창덕궁에도 느티나무 고목 30여 그루가 살고 있다고 한다. 나무도 사람처럼 시간과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나보다. 몸통에 찰흙처럼 보이는 것으로 '외과수술'을 받은 느티나무가 흔하다.

산책로 길가에 홀로 서 있는 어느 느티나무는 몸의 반 이상을 외과수술을 받았는데도 매년 이렇게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걸 보면, 자연의 경이로움과 함께 늙음은 쇠퇴가 아닌 완성임을 새로이 깨닫게 된다. 거기다 허리춤에 우주 비행선을 닮은 버섯들까지 살게 해주는 걸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나 경탄해 마지않는다.

늦가을의 정취로 가득한 이 노거수 앞에서 기억 속 어디엔가에 숨어 있었던 유년시절 동네의 정자목이요 신목(神木)이었던 당산나무가 떠올랐다. 그 앞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공을 차며 뛰어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산나무가 발치 아래서 재잘거리고 뛰놀며 커가는 동네 아이들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던 것 같다.

비라도 내리면 웅~ 하는 기분 나쁜 소음이 들려오곤 했던 동네의 삭막한 송전탑도, 가까이에 당산나무가 있어서 덜 무서웠다. 나무가 서 있는 공터에서 가끔씩 개를 잡아 구워먹는 동네 아저씨들, 흥겨운 농악과 달리 들을수록 기분이 신묘해지는 무당의 굿하는 소리··· 당산나무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쳐다보고 있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쭉 살아온 내게도 나무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지 싶다.

언제 어디서 봐도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하게 하는 소나무지만 궁궐에 사는 소나무들은 그 정취가 특히 더했다. 소나무는 우리 땅에서 가장 흔한 나무지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특별한 나무이기도 하다. 한반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자란다.

그 가운데 오래 묵은 소나무는 늠름한 기개와 지조, 충절을 상징한다. 노거수 소나무의 장구한 수명, 크고 늠름한 자태, 아름다운 조형미는 그에 어울리는 여러 이야기들과 함께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소나무는 금강송, 황장목, 춘양목, 해솔, 육송, 적송 등 다양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나무는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사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의식하지 못하는 존재다. 하지만 나무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도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며 시간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창덕궁의 특별한 존재, 귀여운 너구리 가족

어릴 적엔 회청색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흰색을 띄는 신비한 소나무 백송.
 어릴 적엔 회청색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흰색을 띄는 신비한 소나무 백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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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엔 왕족을 대신해 너구리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다.
 창덕궁엔 왕족을 대신해 너구리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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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과 멋들어진 조화를 이룬 소나무(육송, 陸松) 앞에선 한동안 그림 감상을 했고, 붉은 빛을 띤 노거수 적송(赤松)의 신묘한 자태도 눈길을 끌었다. 하얀 소나무라는 의미 때문인지 호기심과 상상력을 일으키는 소나무도 몇 그루 살고 있었는데 바로 백송(白松)이다. 백송은 어릴 적엔 회청색, 나이를 먹을수록 흰색을 띠는 희귀한 소나무다.

점점 흰 얼룩무늬가 많아지다가 나중에는 거의 하얗게 된다. 사람이 하얀 머리로 늙어가듯, 백송의 일생은 이렇게 하얀 껍질로 나이 값을 한다. 조선시대 중국에서 건너온 나무인데 토종 생물의 생태계를 뒤흔들 만큼 강력한 생명력을 가진 여느 귀화식물과 달리 백송은 생장력이 약해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희귀 식물이다.

수령이 오래될수록 줄기가 하얗게 되는 백송은 10년에 겨우 50cm밖에 자라지 않을 정도로 생장도 느리고 번식도 어려운 희귀한 나무지만 초록 껍질을 하나씩 벗어가며 결국엔 흰 얼룩무늬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나무다. 이렇게 자람이 늦고 흰 껍질이 독특하여 웬만한 굵기의 백송은 특별 보호목이 될 정도이다. 천연기념물은 순서와 중요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천연기념물 나무 1호부터 10호 중에 6점이 백송이란 사실은 그런 백송만의 특별한 속성을 나타내준다.

나무구경에 흠뻑 빠져 돌아다니다가 나오는 길에 어느 전각 앞마당에서 생각지도 못한 야생 동물과 마주쳤다. 궁궐 마당을 지나는 수로 속에 있던 너구리 한 마리가 수로 위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살피는 모양이 귀여워 사람들이 너도 나도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해치지 않는 것을 아는 모양인지 일정 거리만 유지한 채 도망가지 않고 사람들을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하는 모습이 웃음이 나고 재미있었다. 직원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 놀라기는커녕 창덕궁엔 새끼들까지 줄줄이 거느린 너구리 가족이 살아가고 있단다. 왠지 창덕궁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고 푸근한 마음으로 궁궐의 가을을 거닐었다.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11월 2일에 다녀 왔습니다.
ㅇ 관람문의 : 창덕궁 안내소 (02-762-8261)



태그:#창덕궁, #노거수 나무, #향나무, #회화나무 , #백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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