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한국 상업영화 계보에서 윤제균 감독이 차지하는 위치는 확실하다. 천만관객을 돌파한 <해운대>(2009), 섹시과 코믹의 묘한 경계를 지켰던 <색즉시공>(2001) 등으로 윤제균은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에서 강점을 지닌 감독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국제시장>을 내놓았다. 한국전쟁 이후의 역사를 살았던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코미디보다는 애잔함과 따뜻한 감성을 담아냈다. 재기발랄한 이야기꾼으로 통했던 그가 "영화 인생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작품을 이제야 들고 왔다"고 표현했다. 그래서였을까. 개봉을 약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윤제균 감독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첫 아이 낳고 본격적인 기획..."핵심은 곧 아버지였다"

오랜만의 복귀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가 <국제시장>을 잘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전쟁의 아픔을 겪은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부산 국제시장을 공간적 배경으로 부모 세대의 모진 경험을 덕수(황정민 분)와 영자(김윤진 분) 부부를 통해 표현해냈다.

"2004년 첫째 아이를 낳은 직후 문득 아버지라는 존재가 보였어요. 제가 대학생 때 부친이 병으로 작고하셨는데 평범한 가장이셨어요. 가족을 위해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고 사신 분이죠. 딱 덕수처럼 융통성도 없고 잔소리도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땐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고, 이해도 안 됐는데 어느새 저도 내 자식에게 똑같이 행동하고 있더라고요. 임종하실 때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때 왜 감사하다 말을 못했을까 후회했죠."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주)JK필름


처음 가제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였다. 이산가족 찾기에서 제목을 따와 여러 방식의 이야기 전달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주인공 덕수 부부의 관점으로 사건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정했다. 약 3년간의 시나리오 작업 결과였다. 윤제균 감독은 "재미를 위해 다르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도 있었지만 덕수 본인의 입으로 자신의 부모와의 약속을 지켜가는 과정을 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진정성이 곧 핵심이었다"고 설명했다.

한 인물의 유년시절부터 노년기, 즉 한국전쟁 직후부터 약 50년이 흐르는 시간을 영화에 담아야했기에 주요 사건을 선택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은 피난-독일 광부·간호사 파견-월남전쟁-이산가족 찾기로 총 4개다.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사건이 많았지만 유독 정치적 주제는 피한 기색도 역력했다.

"두 시간 분량을 어떤 사건으로 압축하는지, 주제와 부합하는 사건을 정하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 시대에 대한 정치적 시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그걸 다루거나 혹은 아예 안 다뤄도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알고 시작했어요.

결국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버지에게 '고생하셨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였잖아요. 여기에 정치관, 역사관을 어설프게 다룰 바에야 아주 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죠. 어떤 사회적 관점에서 분명 모자란 작품이지만 윤제균의 개인사에서 출발했기에 마음을 열고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덕수 개인의 관점에서,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보시면 잘 보일 겁니다."

시니리오도 안 보고 결정한 배우들 "출연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국제시장>의 배우 황정민-김윤진-오달수는 윤제균 감독이 1순위로 생각한 조합이었다. 지난 언론시사회 때 배우들이 입을 모아 "이 영화에 출연하게 돼서 감사했다"고 말한 걸 보면, 영화는 감독뿐만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여러 의미를 던졌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김윤진은 어릴 적 자신이 겪었던 이민의 경험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공개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덕수 캐릭터는 일단 황정민씨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시나리오를 주려고 전화했는데 정민씨가 언제 촬영하는지만 묻더니 시간 비워놓을 테니 잘 준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달수 형에겐 장문의 문자와 함께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그 다음날 바로 합류하겠다고 연락이 왔고요. 눈물 날 정도로 감사했죠.

김윤진씨의 가정사는 캐스팅하고 나서야 듣게 됐어요. 제가 함께 하려 했던 이유는 윤진씨의 진면목을 전하고 싶어서였어요. 대중에겐 여전사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딱 여자거든요. 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20대의 로맨스인데 김윤진씨가 바로 그런 풋풋한 모습에서 노년기의 모습까지 폭 넓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죠. 현장에서도 스태프들과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면서 곁을 지키는데 다들 반했어요. 작품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큰 사람이에요."

배우들은 흔쾌히 합류했지만, 윤제균 감독은 절대 <국제시장>이 쉽게 만들어진 작품이 아님을 강조했다. "요즘 관객의 입맛에 과연 맞을지 모르겠다"며 윤 감독은 "상대적으로 젊어진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었는데 결국 시나리오에 목숨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사실 이게 윤제균의 방식이다. 샐러리맨으로, 시나리오 작가로, 그리고 이젠 제작자와 연출자로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그는 유독 자신과 주변부의 이야기를 작품에 녹이려 했다. <국제시장>의 덕수와 영자라는 이름도 그의 부모님 성함에서 따온 것이다. 전작 <해운대>의 주요 사건 역시 그의 지인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결과물이었다.

"일관성 있지 않나요? (웃음) <두사부일체>의 계두식, <색즉시공>의 장은식, <낭만자객>의 요이, <해운대>의 최만식도 그렇고요. 뭔가 다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면서도 공통적으로 마음속에 순수함과 정이 넘쳐요. 반면 여자 캐릭터는 다소 강했죠. <두사부일체>의 이윤주나 <색즉시공>의 이은효를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모두 가상 인물이지만 제 지인이나 친척, 주변 인물들에게서 따온 겁니다. 제 영화 캐릭터의 변천사를 보면 어느 정도 기준을 갖고 있다는 걸 아실 거예요. <국제시장>의 덕수도 순정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멋지고 잘생긴 캐릭터는 없지만 이게 바로 사람다운 모습이지 않을까요."

국제시장 윤제균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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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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