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딱 1주일 전이다. 자유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 2박 3일간의 서울 여행을 다녀온 것이. 물론 처자식 팽개치고 한양까지 갈 때는 그에 필적할 만한 명분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다. <오마이뉴스> 시상식과 더불어 5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그 명분이었다. 2박 3일간, 날개가 다 타오를 때까지 오르고 또 오르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일요일 날, 아이들과 놀아주겠다던 약속은 공염불이 되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아내가 말없이 여행 가방을 쌌다. 부산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그녀는 나에게 여섯, 일곱 살 사내 아이 둘을 맡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역지사지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사자성어다. 나는 사지에 몰렸다. 이미 자유의 단맛을 본 나에게 이러한 형벌은 서너 배의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었다. 아내의 복수는 이미 시작되었다.

6살, 7살 아들 둘 맡기고... 아내가 떠났다

아빠와 함께 한 나절만 지나면 아이들의 행색은 초라해진다. 이 장면은 연출이 아니 실제 상황으로 우리집은 겨울에 매우 춥다.
▲ 엄마없는 아이들 아빠와 함께 한 나절만 지나면 아이들의 행색은 초라해진다. 이 장면은 연출이 아니 실제 상황으로 우리집은 겨울에 매우 춥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뭐, 1박 2일 쯤이야. 삼둥이 키우는 집도 있는데. 우리 애들은 말귀라도 알아듣는 나이잖아. 이 기회에 아빠로서 점수 한번 제대로 따주겠어. 그 시작은 제법 의욕이 넘쳤다. 우선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에 가서 크리스마스 아니면 생일날이나 사줄 법한 장난감을 하나씩 안겼다. 엄마라면 절대 사주지 않을 장난감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언제 엄마가 옆에 있었냐는 듯한 표정으로 새로운 장난감에 빠져들었다.

녀석들이 새로운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최장 시간은 정확히 한 시간이었다. 결국, 아이들을 끌고 집 근처의 실내 놀이터로 향했다. 대형 트램펄린과 소소한 놀이 기구들이 설치된 곳으로 아내가 직장에 나가는 토요일이면 내가 종종 애용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 날은 하필 단체 손님이 있는 날이었다. 초등학교 생일 잔치였는지, 아이들이 바글바글 했다.

제 아무리 엄마와 쉽게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들이라도, 아이언 맨과는 잘 달라붙는다. 물론, 뒤에 있는 모형을 사주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럴 생각도 능력도 없다.
▲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들른 대형마트 제 아무리 엄마와 쉽게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들이라도, 아이언 맨과는 잘 달라붙는다. 물론, 뒤에 있는 모형을 사주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럴 생각도 능력도 없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두 아이들을 눈으로 쫓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형과 누나들에게 덩치에서 밀리는 녀석들은 교대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집에는 안 간다고 우겼다. 한 놈씩 어르고 달래면서 간신히 한 시간을 버텼다. 두어 시간쯤 책 읽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했던 계획이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김밥 전문점에 들러 김밥 두 줄을 샀다. 평소라면 유기농 식단을 준비했을 테지만, 도저히 아이들에게 밥을 해서 먹일 자신이 없었다. 이미 몸은 반쯤 풀린 상태였다. 남은 미션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는 일이다. 음, 오늘은 별로 땀 안 흘렸으니까, 세수만 하고 자자. 대충 씻기고,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이들 눈은 말똥거리는데, 나는 졸고 있다. 아이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은 무조건 일찍 재우는 거다.

"내일, 아빠랑 자전거 박물관 갈 사람? 빨리 자는 사람만 데리고 간다!"

낮에 뛰어 논 덕분인지 다행히 십분 만에 눈을 감는다. 아이들을 재운 시간은 오후 여덟시 반. 이 정도면 성공이다. 자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거실로 나왔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아내가 돌아왔을 때, 미안함을 느끼게 하리라.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를 밀기 시작했다. 나의 소심한 복수였다.

"아빠 하늘은 왜 파란색이야?" 두개압이 상승했다

다음 날 아침. 어제 밥 한 끼 못 해먹인 것이 마음에 걸려 일찍 일어났다. 변변한 밑반찬이 없을 때 내가 자주 써먹는 비장의 무기, 주먹밥을 만들기 위해서다. 쌀을 씻어 '백미쾌속'을 누르고, 각종 야채를 다지기 시작했다. 다진 야채와 멸치, 햄 등을 볶아 밥과 함께 섞다보니 때마침 눈을 뜬 아이들이 빨리 자전거 박물관에 가자며 슬슬 발동을 건다. 갑자기 울컥한다. 주먹밥은 무슨! 귀찮다. 그냥 퍼먹어라!

아이들이 먹기 좋게 뭉치기 직전,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냥 퍼 먹어라, 하면서 밥그릇에 퍼 주었다.
▲ 만들다 만 주먹밥 아이들이 먹기 좋게 뭉치기 직전,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냥 퍼 먹어라, 하면서 밥그릇에 퍼 주었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아직 밥상 예절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내 자신을 탓하며, 숟가락을 들고 한 시간 가까이 따라 다니면서 간신히 아침을 먹였다. 어디엔가 과녁이 있다면 숟가락을 던져 꽂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상하기 그지없는 아빠다. 그 정도 일로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는 위대한 존재다.

이제 몇 시간만 버티면 된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상주에 있는 전국 유일의 자전거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내가 참 좋아하는 무료 박물관이다. 전국의 다양한 박물관을 다녀 봐도 입장료와 만족도가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장료가 없는 국·공립 박물관이 감동을 줄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감동이 아니다. 오로지 시간의 흐름뿐이다.

한 시간 정도를 운전해 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운전의 피로감 때문이 아니었다. 한창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의 두 아이들이 교대로 물어오는 질문들이 나를 힘겹게 만들었다. 자연을 관찰하기 시작한 둘째 아들 왈 "그런데 말이야, 아빠. 하늘은 왜 파란색이야?", 한자 공부에 빠져 있는 큰 아들 왈 "왜 불화가 두 개 있으면 불꽃염이야?" 처음에는 나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차츰 두개압이 상승했다.

"그건 말야, 원래 그런 거야!"라고 미치도록 외치고 싶었으나, 나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대한민국의 아빠 아니던가. 카 스테레오의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녀석들을 무시한 채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아이들에게는 가끔 혼자 사색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열심히 차를 달려 드디어 자전거 박물관에 도착했다.

자전거 다섯 대의 프레임을 연결해 만든 것으로 실제 운행이 가능하다
▲ 5층 자전거 자전거 다섯 대의 프레임을 연결해 만든 것으로 실제 운행이 가능하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아직은 다리가 짧아 페달을 잘 못구르는 큰 아이. 언젠가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부모의 곁을 떠나갈 것이다.
▲ 자전거 타는 아이 아직은 다리가 짧아 페달을 잘 못구르는 큰 아이. 언젠가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부모의 곁을 떠나갈 것이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자전거 박물관은 예상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5층 자전거부터 시작해서 모 의류 브랜드의 로고인 오디너리 자전거, 초창기의 자전거등 다양한 자전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자전거를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기구들도 존재했다. 물론, 자전거 박물관의 백미는 바로 박물관 마당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 자전거를 직접 타는 일이다.

가족용 자전거, 누워서 타는 자전거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자전거들이 많이 있다. 허리를 90도로 숙여 녀석들의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다리도 짧은 녀석들이 페달을 밟으려고 기를 쓰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이틀간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봄눈처럼 스러진다.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는 아빠의 손이 사라지는 그 날, 두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떠날 것이다. 그렇게 보내는 게 마땅하고, 그렇게 떠나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때까지는 아빠가 수퍼맨이 되어 너희들을 지켜주마. 원래 고된 기억들이 추억이 되는 거란다. 가끔씩 엄마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아빠가 흔쾌히 그 자리를 맡아주마. 여보, 너무 자주 그러지는 말자.


태그:#수퍼맨이 돌아왔다, #자전거 박물관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