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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교육지원청에서 주관하는 수업컨설팅 프로그램인 '수업 동행'에 참여하고 있다. 교사 중심으로 이뤄지는 기존의 수업 장학 대신 학생에 초점을 맞춰 수업 관찰을 한 뒤 토의를 하며 각자의 수업을 돌아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올해 3기차를 맞은 프로그램에 50여 명의 중학교 교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역 교육지원청 차원에서 주도하는 프로그램으로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군산지회 소속 교사들의 자발적인 수업 연구 모임이 이 프로그램과 결합하며 자연스럽게 확대, 발전했다는 점에서 협력적인 교육노사문화의 한 보기로도 볼 만하다.

얼마 전 '수업 동행' 활동의 일환으로 내 수업을 공개했다. 교내 동료 교사 7명이 참관했다. 수업이 끝난 뒤 이들 중 4명과 함께 1시간 남짓 허심탄회하게 협의회를 가졌다. 각자 학생들에 대한 관찰 결과를 이야기하면서 수업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교감은 학교 역사상(?) 거의 '최초의 자연스런' 협의회였다고 자평했다.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기존 수업 장학을 염두에 둔 말이었으리라.

수업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교사의 교수법보다 학생의 배움에 초점을 맞춘 수업 연구 동아리가 많다.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교사들이 생겨나고 있다. 교육청은 이들에게 예산을 지원해 실질적인 '교학상장(敎學相長)'을 도모한다.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증표 중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서서히 저무는 '졸업장'의 신화

교실 모습
 교실 모습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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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규 청주교대 교수가 쓴 <한국의 교육생태계>를 읽었다. 연구년을 맞아 우리 교육 전반을 넓은 맥락에서 살피기 위한 차원에서 쓴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우리 교육이 낡은 과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넘어서 미래의 여명을 여는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프롤로그'의 일부를 보자.

좋은 교육은 낡은 습속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미래를 진취적으로 재구축할 수 있는 추진력을 제공해 준다. 혹자는 우리 교육의 많은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사회 구조의 개혁 없이는 교육의 변화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일정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옳은 말은 아니다. 교육은 스스로 사회를 개혁하고 혁신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11쪽)

저자가 볼 때 "과거 몇 십 년을 지배해 왔던 졸업장의 신화는 서서히 저물고(10쪽)" 있는 게 최근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교육 현장의 일상적 실천은 이미 조종을 울리고 있는 석양의 풍경에 병적으로 고착(10쪽)"된 채 반성과 성찰을 멀리하고 있다.

"경험의 끊임없는 성장과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동력(11쪽)"으로서의 교육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좋은 교육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구성원들을 해방(11쪽)"하기 때문이다. 모든 진정한 교육이 '불온'하거나 '전복'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책은 거시적, 미시적 주제를 넘나든다. 교육 이념, 사회 현실, 교육열, 교사, 학생, 수업 문제, 미래형 교실 개혁, 교원과 교원양성기관, 교육 운동과 교육 단체 등의 주제를 두루 아우른다. 국내외 연구자들의 다양한 연구 성과와 현장 교육 사례도 풍부하게 인용돼 있다.

우리 교육을 거시적이고 통합적으로 보게 하는 저자 나름의 설득력 있는 논지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암기하는 동양, 질문하는 서양> 작가들의 관점을 빌려와 '무작정 한국식 공부'를 성찰해 '공부 문화의 한류'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전통적인 학력-취업 루트의 가치가 무력화하면서 우리의 교육열이 갑자기 냉각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교육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3년만 고생하면 평생을 편하게 지낼 수 있다"라는 흔한 독려의 말 속에는 학부모들의 사적 욕망을 재생산하는 데 충실한 학교 교육의 모습이 함축적으로 녹아 있다. 그런 학교 문화 속에서 학생들은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공공성이 결여된 이기적인 존재들로 자라나곤 했다. (중략) 새로운 생태 환경에서 왜곡된 동기에 의해 추동되는 교육이 아니라 앎에 대한 즐거움과 공공선에 대한 욕구로 추동되는 새로운 학습열이 달아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67~69쪽)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안과 주변을 두루 훑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교원양성기관으로써 교육대학교, 사범대학교의 이면과 수석교사제, 교장승진제도와 같은 교원시스템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전교조, 한국교원단체총연합(교총) 등 교원 단체를 교육 생태계의 한 요소로 묶어 다룬 점도 특기할 만하다. 진보와 보수가 두루 함께하는 교육 생태계를 꿈꾸는 저자의 바람은 간절해 보인다.

진보와 보수 아우른 교육 생태계

아쉬운 점은 이들 교원단체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기존의 상투적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가령 전교조 운동을 "정부를 대상으로 한 선명한 투쟁의 관성(304쪽)"에서 바라보는 것이 그것이다. 전교조를 '과격한 투쟁 집단'쯤으로 규정하는 일부 프레임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어서다.

귀담아 들을 이야기들이 분명 많다. 하지만 전교조의 각 지부, 지회, 분회 단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실천 사례들과 변화의 흐름을 조금 더 취재해 썼다면 어땠을까 싶다. 예컨대 저자가 전교조 비판을 위해 주로 기대고 있는 권재원(전 전교조 부대변인)의 글은 6년 전인 2009년에 쓰인 것이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최근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상징하는 혁신 학교, 교사 동아리, 수업 연구 등의 주축이 전교조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글머리에 소개한 '수업 동행'만 하더라도 전교조 군산지회 소속 교사들이 그 중심에 서 있다. 나 역시 전교조 조합원이다.

진보와 보수를 아울러 교육 공존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진의를 모르는 바 아니다. 전교조와 교총을 함께 거론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교육 공존과 협력의 모범을 보여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두루 연구하고, 국가교육과정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며, 교육운동단체들이 타협과 합의의 문화를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들이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저자는 대학에 들어서기 전 10여 년간 중등교사로 지낸 경험이 있다. 이 책에서 전문 연구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이론 편향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현장 교육에 대한 애정과 비판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수업 비평'이라는 새로운 수업 연구 장르를 개척하고, 최근 각광받고 있는 거꾸로교실 연구, 실천 모임인 미래교실네트워크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이수율이 98퍼센트다. 전문대학 이상 고등교육 이수율은 64퍼센트다.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라고 한다. 1999년부터 3년마다 진행되고 있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는 거의 매회 최상위권을 유지한다.

그런데도 많은 이가 교육 불가능 시대를 개탄하고 공교육 붕괴를 걱정한다. 학생들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가장 재미없는 공부를 하고 있다. 어느 쪽이 우리 교육의 진짜 모습일까. 한국 교육의 생태계를 고민하는 이 책과 함께 답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한국의 교육 생태계>(이혁규 씀 / 교육공동체 벗 / 2015. 6. 1. / 349쪽 / 1만 5000원)



한국의 교육 생태계

이혁규 지음, 교육공동체벗(2015)


태그:#<한국의 교육 생태계>, #이혁규, #전교조, #교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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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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