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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달리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손꼽는 시골놀이순이는 마당을 폴짝폴짝 뛰면서 싱그럽게 땀을 흘립니다. 나는 아이하고 함께 놀다가 사진 한 장을 얻습니다.
 ‘달리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손꼽는 시골놀이순이는 마당을 폴짝폴짝 뛰면서 싱그럽게 땀을 흘립니다. 나는 아이하고 함께 놀다가 사진 한 장을 얻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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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오르는 마당

우리 집 마당은 '뛰어오르는 마당'입니다.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곳이기에, 이쪽 끝에서 도움닫기를 한 뒤에 영차 하고 뛰어오를 만합니다. 풀포기를 뛰어넘을 수 있고, 평상으로 뛰어오를 수 있으며, 후박나무 가지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시골순이는 이 시골집에 깃든 첫날부터 언제나 뜀뛰기와 달리기를 누렸고, 이제 꽤 높이 뛰어오릅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뛰어오를 테며, 머지않아 혼자 힘으로도 후박나무 가지에 손이 닿을 만큼 뛰어오르리라 생각해요. 나는 그날까지 날마다 새로운 뜀뛰기를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겠지요.

해마다 봄이면 동백꽃잎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비질을 하고, 후박나무에 새 잎이 돋으며 헌 잎이 떨어질 적에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비질을 하며, 새로운 가을에는 또 가을대로 가을잎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비질을 합니다. 아버지가 비질을 하면 어느새 마당으로 따라나와서 비질을 거드는 아이들입니다.
 해마다 봄이면 동백꽃잎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비질을 하고, 후박나무에 새 잎이 돋으며 헌 잎이 떨어질 적에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비질을 하며, 새로운 가을에는 또 가을대로 가을잎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비질을 합니다. 아버지가 비질을 하면 어느새 마당으로 따라나와서 비질을 거드는 아이들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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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질

가랑잎이 떨어질 적에도, 꽃잎이 떨어질 적에도 나무 곁에서 비질을 합니다. 가랑잎을 쓸어담고 꽃잎을 쓸어담지요. 살림순이는 돌을 갓 지났을 무렵에도 언제나 심부름을 하거나 어른하고 똑같이 일을 하려 했고, 놀이돌이는 다섯 살이 되어도 늘 두리번두리번 놀잇거리를 찾습니다.

한집에 사는 두 아이는 한마음으로 놀다가도 두 마음으로 갈리면서, 한쪽은 살림꾼이 되고 한쪽은 놀이꾼이 돼요. 비질하는 손도 귀엽고, 비질하는 누나 곁에서 노래하며 노는 목소리도 사랑스럽습니다. 나는 아이들한테 비질도, 노래도 함께 물려주었습니다.

무엇으로든 셈을 익히거나 배울 만합니다. 장난감 조각으로 셈놀이를 하다가, 이렇게 셈을 차근차근 익히는 손가락이랑 손짓이 더없이 곱네 하고 느낍니다.
 무엇으로든 셈을 익히거나 배울 만합니다. 장난감 조각으로 셈놀이를 하다가, 이렇게 셈을 차근차근 익히는 손가락이랑 손짓이 더없이 곱네 하고 느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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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을 익히는 손가락

똑같이 생긴 놀잇조각을 바닥에 놓고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똑같은 놀잇조각을 바닥에 깐 뒤에 더하기를 해 본다. 이렇게 이렇게 더하면 몇일까? 요로코롬 조로코롬 더하면 몇일꼬?

더하기가 익숙하지 않은 배움순이는 코앞에 놀잇조각을 놓고도 숫자를 세기 어려워서 손가락을 꼽는다. 손가락을 꼽아도 되지만, 코앞에 있는 아이들을 하나씩 짚으면서 세어 보자고 얘기한다. 자, 앞에 있는 숫자를 세면서 머릿속으로 그려 보렴. 나중에는 손가락을 안 쓰고 머릿속에 그리는 얼거리만으로도 알아내는 길이 있지.

피아노를 치도록 하는 까닭은 연주자로 가르칠 뜻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책을 읽히는 까닭은 작가가 되도록 할 뜻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삶을 즐겁게 누리는 수많은 길 가운데 하나를 몸으로 느끼면서 스스로 재미난 가락을 짓도록 하려고 피아노‘놀이’를 합니다.
 피아노를 치도록 하는 까닭은 연주자로 가르칠 뜻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책을 읽히는 까닭은 작가가 되도록 할 뜻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삶을 즐겁게 누리는 수많은 길 가운데 하나를 몸으로 느끼면서 스스로 재미난 가락을 짓도록 하려고 피아노‘놀이’를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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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피아노가 되자

아이들은 피아노 연주자가 될 수 있을 테고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아노 연주자이든 아니든,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게 피아노를 칠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늘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삶을 지을 수 있기를 바라요.

날마다 조금씩 손놀림을 익히고, 언제나 차근차근 가락을 온몸으로 맞아들여서, 피아노이든 하모니카이든 휘파람이든 제 숨결로 살릴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가만히 보면 사진찍기도 피아노하고 똑같아요. 작가로 뽐내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라, 삶을 즐기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작품을 빚으려고 하는 사진이 아니라, 기쁜 웃음꽃을 터뜨리려는 사진입니다.

어버이가 무슨 일이라도 하면 아이들은 어느새 곁에 달라붙습니다. 뭔가 볼거리 있나 들여다보기도 하고, 얻어먹을 것이 있나 싶기도 하며, 거들면서 놀 만한 것이 있는지 살피기도 합니다. 여름 첫머리에는 매실을 따서 헹굴 적에 아이들한테 맡기면 신나는 물놀이가 된다며 아주 재미있어 합니다.
 어버이가 무슨 일이라도 하면 아이들은 어느새 곁에 달라붙습니다. 뭔가 볼거리 있나 들여다보기도 하고, 얻어먹을 것이 있나 싶기도 하며, 거들면서 놀 만한 것이 있는지 살피기도 합니다. 여름 첫머리에는 매실을 따서 헹굴 적에 아이들한테 맡기면 신나는 물놀이가 된다며 아주 재미있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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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랑 놀이

일하고 놀이를 가르는 금은 없습니다. 즐겁게 하기에 일이요, 기쁘게 하니까 놀이입니다. 씩씩하게 일을 하고, 신나게 놀이를 합니다. 일은 어른만 하지 않고, 놀이는 아이만 하지 않아요. 어른도, 아이도 함께 일하고 같이 놉니다. 어른이나 아이 모두 날마다 새롭게 일을 하면서 놀이를 찾아요. 살림을 북돋우는 일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놀이를 합니다.

해마다 봄이면 우리 집 뒤꼍에 있는 매화나무에 꽃이 잔뜩 피고, 여름으로 접어들어 매화알이 굵어 집니다. 이 매화알을 아이들하고 함께 따서 커다란 스테인리스 함지박에 담고서 아이들더러 헹구라고 시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무더운 여름날 물을 만지면서 '노는 일'을 대단히 좋아하거든요.

여름에도 가을에도 햇볕이 뜨겁다면서 그늘이 지는 자리를 찾아서 노는 아이들은, 처마 밑 섬돌 자리를 몹시 좋아합니다. 이 자리는 고양이도 좋아합니다. 아이들도 고양이도 섬돌에 앉아서 하루를 고요히 누립니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햇볕이 뜨겁다면서 그늘이 지는 자리를 찾아서 노는 아이들은, 처마 밑 섬돌 자리를 몹시 좋아합니다. 이 자리는 고양이도 좋아합니다. 아이들도 고양이도 섬돌에 앉아서 하루를 고요히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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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나란하게 다른

두 아이는 함께 섞여서 놀다가도 따로 떨어져서 놉니다. 두 아이는 한 가지 책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놀다가도, 저마다 다른 책을 집어 펼치면서 놉니다. 두 아이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로 놀다가도, 저마다 마음에 드는 만화책이나 그림책을 집고는 나란히 앉아서 조용하게 책을 읽기도 합니다.

같은 어버이한테서 태어나도 다른 숨결입니다. 서로 다른 숨결이지만 똑같이 사랑스러운 숨결입니다. 서로 다른 책을 쥐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맞아들이지만, 놀이와 삶과 사랑이라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나는 늘 두 아이 사이에서, 두 아이랑 함께 사진놀이를 합니다.

잘 차리는 밥상보다는 즐겁게 차려서 웃으며 먹는 밥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릴 적마다 부엌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나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못할 적에는 재미나거나 기쁜 밥상이 못 된다고 느낍니다.
 잘 차리는 밥상보다는 즐겁게 차려서 웃으며 먹는 밥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릴 적마다 부엌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나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못할 적에는 재미나거나 기쁜 밥상이 못 된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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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맡

날마다 차리는 밥은 날마다 먹는 밥입니다. 날마다 먹는 밥에는 오늘 하루도 새롭게 기운을 내어 즐겁게 새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 숨결을 담습니다. 배가 고파서 먹는 밥이기도 하면서, 몸을 살찌우려고 먹는 밥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밥그릇을 새로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어버이는 날마다 밥그릇을 새로 내어주면서 마음을 북돋우지요. 오늘은 어떤 밥으로 하루를 열고 닫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 밥 한 그릇에 어떤 사랑을 실어서 함께 웃고 노래하는 살림이 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밥상맡에서는 '밥 이야기'가 있고 '밥 노래'가 있으며 '밥 사진'이 있습니다.

마을 어귀 배롱나무 밑을 지나가는 아이들을 뒤에서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을 찍고 고작 1분쯤 뒤에 자전거 사고가 났습니다. 달포가 훌쩍 넘었어도 아직 오른무릎 다친 자리는 살짝 아픕니다. 참말 사람 일은 한치 앞을 모르기 마련이기에, 언제나 바로 오늘 이곳을 사랑하자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마을 어귀 배롱나무 밑을 지나가는 아이들을 뒤에서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을 찍고 고작 1분쯤 뒤에 자전거 사고가 났습니다. 달포가 훌쩍 넘었어도 아직 오른무릎 다친 자리는 살짝 아픕니다. 참말 사람 일은 한치 앞을 모르기 마련이기에, 언제나 바로 오늘 이곳을 사랑하자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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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이 될 뻔하다

백 날 동안 꽃이 차근차근 피고 진다고 하는 배롱나무입니다. 배롱나무는 꽃송이를 한꺼번에 터뜨리지 않고 그야말로 천천히 터뜨립니다. 여름이 저물면서 살그마니 가을빛이 퍼지려고 하는 때에 발그스레한 꽃빛이랑 살며시 노랗게 물들려는 들빛이 곱게 어우러집니다.

이 무렵, 빛 물결이 사랑스러워 으레 아이들하고 자전거 마실을 다녀요. 그런데 이 사진을 찍은 지난 9월 2일, 사진을 찍고 난 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논둑길을 달리며 들내음을 맡으려 하다가 그만 물이끼를 밟고 미끄러져서 크게 다쳤습니다. 다음 일은 알 수 없어요. 아늑한 사진을 찍고 나서 며칠 동안 사진기는커녕 숟가락조차 못 쥐고 드러누워 앓았으니까요. 자칫하면 내 마지막 사진이 될 뻔했습니다.

씩씩한 아이들이 있어서 언제나 씩씩하게 이 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고맙게 기쁘게 놀랍게 담을 수 있습니다.
 씩씩한 아이들이 있어서 언제나 씩씩하게 이 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고맙게 기쁘게 놀랍게 담을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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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시골아이

가을 날에 가을 볕을 쐬면서 가을 들을 걷습니다. 큰아이는 다섯 살 언저리에 저만치 앞장서서 달려가면서도 내 눈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한 데에 있었는데, 작은아이는 저만치 앞장서서 달려가다가 내 눈에서 사라져서 도무지 안 보이는 데까지도 신나게 그냥 달립니다.

층층논으로 이루어진 논둑길을 꺾어서 달리는 작은아이는 내가 미처 쫓아갈 틈조차 주지 않고 사라지려 합니다. 오른 무릎을 다쳐서 천천히 걸어야 하는 나로서는 작은아이 꽁무니를 쫓기도 벅찹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몸이기에 작은아이가 층층논 사이로 사라지려는 모습을 아스라이 바라봅니다. 사진 한 장 고맙게 찍습니다.

시골에서조차 ‘웬 고무신?’이냐며 묻는 오늘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 눈길’이 아니라 ‘스스로 기쁜 삶’을 생각하면서, 맛있는 고무신 차림으로 하루를 열고 닫습니다.
 시골에서조차 ‘웬 고무신?’이냐며 묻는 오늘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 눈길’이 아니라 ‘스스로 기쁜 삶’을 생각하면서, 맛있는 고무신 차림으로 하루를 열고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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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고무신

큰아이는 고무신 꿰기를 즐깁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고무신을 꿰고 함께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큰아이는 고무신이 즐겁습니다. 신거나 벗기에도 수월하고, 빨아서 곧 말릴 수 있어서 발가락이며 발바닥이 아주 상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골 면소재지나 읍내만 하더라도 고무신을 꿴 어버이와 아이를 보는 사람들이 '요즘 시대에 웬 고무신?' 하면서 묻기 일쑤입니다. 시골에서조차 고무신은 신을 만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마당 한쪽 밭자락에서 까마중을 훑는 아이는 하얗게 눈부신 고무신 차림입니다. 가랑잎이며 풀줄기며 까마중의 까만 알이며 하얀 신이며 꽃치마이며 모두 곱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사진노래, #삶노래, #사진찍기, #사진읽기, #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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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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