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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의회 7개월여, 교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학급의회 7개월여, 교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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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6일, 5학년 우리 반 '학급의회'의 역사적인 첫 출발을 알렸던 날이다. 우리 반의 모든 것들이 결정되는 데 딱 4시간이 걸렸다.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쉬는 시간도 없이. 아이들끼리 많은 말들이 오고 갔고 긴 시간 끝에 우유를 가져오는 방법부터 청소 순서, 급식을 먹는 순서까지 스물일곱 개의 정책들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네 시간이나 걸려 만든 이 스물일곱 개의 정책들은 아이들로부터 수많은 건의를 받았다. 각 정책들에는 장점도 단점도 있었고, 교실에 절실히 필요하지만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정책들도 있었으며 불필요한 정책들이 버젓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정책들을 하나하나 다듬어야 했다. 이후 각각의 스물일곱 개 정책들은 '네 시간'이 아닌 '7개월'이라는 시간을 부여받았다.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11월, 우리 반에는 서른한 개의 정책이 존재하고 있다. 3월의 스물일곱 개 정책 중에서 아직까지 멀쩡히 살아남은 정책은 단, 2개다. 스물일곱 개의 정책이 7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첫 번째 에피소드

첫 학급의회에서 인성부는 자신들이 직접 급식 검사를 하겠다는 정책을 제안했다. 급식 검사를 아이들이 직접 하게 되면 얼마나 좋은가? 어쩌면 선생님이 맡아서 하는 것보다 급식을 덜 먹어도 될 테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성부가 급식 검사 정책을 발표하자마자 아이들은 폭발적으로 환영했다. 급식 검사는 그렇게 인성부의 몫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정책은 채 두 달을 가지 못했다. 5월의 학급의회에서 급식 검사는 나에게 넘어왔다. 인성부가 해당 정책을 수정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급식 검사를 담당하는 학생의 점심시간이 침해받고 있다'였다. 우리 반에서 두 명이 고생해준다면, 조금 더 편한 점심시간이 될 테지만, 인성부는 (두 명을 제외한) 모두의 편리함 대신 두 명의 점심시간을 찾아주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

4월, 감사부는 부서별 정책을 평가하기 위해 매월 학급의회마다 '최고의 정책'과 '최악의 정책'을 투표하자는 정책을 제안하였다. 최고의 정책은 수정이나 폐지가 불가능하고 최악의 정책으로 뽑힌 정책은 어떤 방법으로든 수정이나 폐지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4개월 동안이나 이 정책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돌연 이 정책은 수정을 선언했다. 최고의 정책을 선정하는 것은 그대로였지만, 최악의 정책은 더 이상 뽑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악의 정책을 선정하는 것이 비록 최악의 정책으로 뽑힌 정책이지만 애써 만든 부서에게 오히려 실망감만 키워준다는 점이었다.

정책에 불만이 있으면 건의함을 통해 건의하면 부서에서 알아서 반영하기 때문에 부서에게 실망감만 더해주는 최악의 정책 선정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렇게 감사부는 4개월 만에 정책을 수정했다.

세 번째 에피소드

3월, 환경부는 밥을 먹고 난 후 일명 '청결 체크리스트'에 양치를 했다고 체크를 하는 정책을 제안했다. 사실, 많은 아이들이 귀찮아 하는 일이라 반대도 심했던 정책이었다. 하지만, 환경부는 아이들의 청결 역시 챙겨야 했기에 정책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9월 이 정책은 결국 폐지를 맞이하게 되었다. 왜, 환경부는 이 정책을 폐지하고 말았을까. 아이들이 귀찮아하기 때문이었을까?

폐지의 결정적 이유는 청결 체크리스트가 우리 반 모두에게 '공개'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청결 체크리스트가 다른 친구들에게 계속 공개가 되고 있는 바람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청소를 하거나 혹은 밥을 늦게 먹거나) 양치를 하지 '못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양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친구들이 오해를 하여, 놀림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결국, 청결 체크리스트를 폐지하고 양심껏 점심을 먹은 후에는 양치를 하기로 친구들에게 약속을 받았다.

세 가지 에피소드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멀쩡히 유지되고 있던 정책을 수정하거나 폐지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수정 혹은 폐지의 이유가 '함께하는 행복'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정책이 정해지고 7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정책들은 계속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아이들 나름의 방법으로 조금 조금씩 그리고 아주 천천히 변해갔다.

아직도 학급의회에서는 더 나은 정책을 위한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난 우리 반의 학급 정책들이 결코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나만의 행복 혹은 몇 명의 행복을 대변하는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 몇 명을 대변하는 정책은 오래 가지도, 환영 받지도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학급의회라는 걸 한다고 한다.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한다. 급식 줄 서기는 꼭 선착순이 되었으면 좋겠다.' - 3월 6일 아침 한 줄 글쓰기 중에서
'오늘 10월말 학급의회가 있다. 학급의회를 통해서 모두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정책들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 11월 6일 아침 한 줄 글쓰기 중에서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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