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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개를 비좁고 더러운 사육장에 가두고 평생 임신과 출산을 강요하며 '번식 기계'로 착취하는 농장. 그렇게 태어난 어린 개를 쇼윈도(진열장)에 전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매를 부추기는 애견 가게. 주인에게 버림받은 후 입양되지 못한 개들이 안락사당하는 유기동물보호소.

이것은 개가 애완(또는 반려)동물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 등장한 어두운 이면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전부터 고양이를 기르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같은 식으로 희생되는 고양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어떤 동물에 대한 애정이 다른 동물의 고통이 되지 않도록 관련 산업을 규제하는 강력한 제도와 성숙한 반려문화가 필요한 이유다.

피 뽑히는 고양이, '공혈묘'를 아시나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고양이 혈액 판매 업소(사업장 명칭: 한국동물혈액은행) 거래 명세서상 주소지 외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고양이 혈액 판매 업소(사업장 명칭: 한국동물혈액은행) 거래 명세서상 주소지 외관.
ⓒ (사)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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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혈견·공혈묘 역시 우리 사회의 불편한 이면임에도 대다수 사람에게 생소한 문제다. 공혈견·묘란 심각한 출혈이나 빈혈 등으로 수혈을 필요로 하는 개·고양이에게 혈액을 공급해주는 동물을 말한다.

'공혈(供血)'이 암시하는 '베풂'의 어감과 달리, 동물의 공혈은 사람의 헌혈처럼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선행이 아니다. 공혈견·묘들은 혈액 공급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존재들이다. 귀한 생명을 살리고 의학 발전에 이바지한다 해도 사람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동물에게는 허용되는 것이다. 

지난 11월 19일과 26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홈페이지에 공혈묘 문제를 알리는 글이 게시됐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이 자사의 공혈묘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묻는 한편 공혈묘 관리기준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글이었다. 해당 글에 따르면, 수혈을 위한 고양이 혈액은 반려인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헌혈이나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기르는 공혈묘를 통해 공급되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경우 한국동물혈액은행을 통해 제공된다고 한다.

홈페이지의 글에서 카라는 고도로 발달한 감각과 높은 지능을 지닌 동물인 고양이를 가두는 시설이 갖춰야 할 복지 조건을 언급했다. 이에 한국 동물혈액은행의 거래명세서상 주소인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고양이 시설은 이런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카라는 주인이 부재 시 고양이를 맡기는 이른바 '고양이 호텔'조차도 고양이의 습성에 따라 안락한 환경을 갖추도록 설계된다는 점도 언급했다. 다른 이를 위해 희생되는 공혈묘들에게 마땅히 미안함을 느끼고 그들의 복지를 보장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이라는 명칭이 낯익어 카라의 글에 링크된 해당 업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지난 10월, 다른 동물보호단체와 언론에 의해 강원도에 있는 공혈견들의 환경이 동물복지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은 업체의 홈페이지였다.

카라의 글에 따르면, 한국동물혈액은행 측은 대구의 시설에 있는 고양이들이 혈액채취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카라는 강원도 속초시의 한국동물혈액은행에 고양이 혈액을 주문하면 대구시 수성구의 사업장에서 혈액이 발송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구에 있는 고양이들이 공혈묘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만약 대구의 고양이들이 공혈묘가 아니라고 해도 그 고양이들의 복지와 관련하여 카라가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또한 그 고양이들의 '용도'는 무엇이며, (다른 곳에 있을) 한국동물혈액은행의 공혈묘들의 관리는 어떻게 이뤄지는가는 동물보호단체인 카라가 물어야 할 또 다른 질문이 될 것이다.

※ 카라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 보러 가기:
"한국동물혈액은행에 묻습니다. 고양이 혈액공급용 공혈묘,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도와주세요! 공혈묘 관리기준 설정과 헌혈 프로그램 활성화가 시급합니다!!"

공혈견·공혈묘 복지 기준 마련 시급해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고양이 혈액 판매 업소(사업장 명칭: 한국동물혈액은행) 거래 명세서상 주소지내 고양이 계류 시설의 모습.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고양이 혈액 판매 업소(사업장 명칭: 한국동물혈액은행) 거래 명세서상 주소지내 고양이 계류 시설의 모습.
ⓒ (사)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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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카라 측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카라 관계자는 공혈묘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두게 된 계기로 카라가 수행하는 고양이 구조·치료에서 수혈이 종종 이뤄진다는 점을 들었다.

고양이가 수혈을 필요로 하는 응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어쩔 수 없이 곁에 있는 건강한 고양이에게서 혈액을 얻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과정을 지켜보니 혈액을 제공하는 고양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반복적으로 채혈을 당하는 공혈묘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자연히 그들의 복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이것은 다른 동물보호단체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카라 관계자는 오늘날 고양이가 반려동물이 되면서 수혈을 비롯한 고비용·고난도의 치료가 많이 이뤄진다는 점도 지적했다. 고양이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확산할수록 고양이 수혈치료도 늘어날 전망이며 공혈묘 문제는 더 중요해질 거라고 했다. 

카라 관계자는 한국동물혈액은행 측이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한국동물혈액은행이 수혈치료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이바지한 부분을 인정한다고 했다. 이에 수의학 전문가로서 대화를 통해 부족한 점을 개선하고 공혈견·묘의 복지 기준을 만들자는 카라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응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카라는 관할 관청인 농림축산식품부에 공혈견·묘의 복지 확보를 위한 기준 제정에 나서 줄 것을 요청 중이라고 했다. 이러한 기준은 위반할 경우 처벌 가능한 규정이 되어 실제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준을 만드는 과정에는 수의사회와 한국동물혈액은행, 농림축산식품부 외에도 동물보호단체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준이 필요한 이유는 한국동물혈액은행의 공혈견·묘 때문만은 아니다. 개인 동물병원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공혈견·묘들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카라 관계자는 개인 동물병원이 채혈을 목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면서 아무런 원칙 없이 채혈할 경우 심각한 복지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어느 동물병원의 개가 나이가 적음에도 이빨이 삭은 채로 구출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잦은 채혈로 인한 결과라고 했다. 공혈견·묘를 일순간에 사라지게 할 수 없는 현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사육환경과 채혈 빈도를 비롯한 동물 복지 문제를 오로지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현실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이상 제기된 문제와 궁금증에 대한 한국동물혈액은행 측의 답변과 반론을 묻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한국동물혈액 측은 "전문가의 자문을 통한 전반적인 환경 개선 작업을 진행 중에 있어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므로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고 답변했다.

'동물 헌혈 프로그램' 도입해야

카라가 대구시 수성구청에 해당 고양이 계류 시설에 있는 고양이들의 실태 점검과 개선을 요청한 후인 지난 11월 13일 해당 업체의 모습. 간판을 떼어내고 문과 창문을 철저히 막아놓았다고 한다. 카라 관계자는 이런 환경에 고양이들이 갇혀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카라가 대구시 수성구청에 해당 고양이 계류 시설에 있는 고양이들의 실태 점검과 개선을 요청한 후인 지난 11월 13일 해당 업체의 모습. 간판을 떼어내고 문과 창문을 철저히 막아놓았다고 한다. 카라 관계자는 이런 환경에 고양이들이 갇혀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사)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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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혈견·묘가 일순간에 사라질 수 없다는 상황을 인정할지라도, '그들이 윤리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고양이를 반려하는 기자와 같은 사람들은 '나의 개·고양이를 위해 다른 동물을 공혈견·묘로 만드는 것이 옳은가'라는 물음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고양이라는 동물의 특성상 다수의 고양이를 공혈묘로 가둬 기르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고양이는 대단히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동물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고양이의 집단사육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많은 고양이를 한 장소에 가두는 경우 고양이들이 서로의 존재로 인해 스트레스에 시달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공혈묘 외에 대안은 없을까? 최근 카라는 고양이 헌혈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얼마 전 고양이 진료 전문병원인 백산동물병원은 고양이 헌혈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백산동물병원은 "반려동물 선진국에서도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면서,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기부하듯이 생명이 위험한 반려동물에게 자신의 반려동물 혈액을 나눔하는 것"이라고 홈페이지에 헌혈 프로그램을 소개했다(프로그램 자세히 보기: "고양이 헌혈 프로그램이란?").

백산동물병원의 헌혈 프로그램은 성숙한 반려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반려인과 수의사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내 고양이를 위해 다른 고양이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나눔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반려'문화일 것이다.

헌혈 프로그램이 확산되어 공혈견·묘라는 존재가 사라져야 한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공혈견·묘의 복지를 보장해주는 것은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개·고양이 반려인과 수의사들이 공혈견·묘의 복지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이유다.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공혈견·묘들의 복지를 위해 대구시 수성구청 게시판에 의견 올리기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동참해주세요. 
아래 내용으로 대구시 수성구청 게시판에 글을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용학로 고양이 계류 시설에 대한 철저한 점검 후 시설 내 동물 관리 개선책을 시급하게 마련하여 제시해주세요."

"한국동물혈액은행이 공혈묘·공혈견 복지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시설 내 고양이들의 복지 확보를 위해 시민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동물보호단체와의 합리적인 대화를 수용하도록 도와주세요."

대구시 수성구청 바로가기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공혈묘, #한국동물혈액은행,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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