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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소극장에서 홍대입구역으로 이어진 다복길은 6년 전 막걸리 전문점 월향이 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주택가에 불과했다. 월향 개점 이후 이곳은 홍대 상권의 일부로 편입됐다. 하지만 정작 주역인 월향은 11월 21일 문을 닫아야 했다. 홍대 상권에서 광풍처럼 번지는 건물주들의 세입자 추방 전략 탓이었다. 이 글은 상권을 제대로 일군 주인공들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쫓겨나야 하는 현실에 대한 기록이다. - 기자 말

홍대 월향은 지난 11월 21일 마지막 영업을 했다.
 홍대 월향은 지난 11월 21일 마지막 영업을 했다.
ⓒ 이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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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 입장에서 장사 잘 되는 임차인을 내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고만 생각했다.
 건물주 입장에서 장사 잘 되는 임차인을 내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고만 생각했다.
ⓒ 이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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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보도문
본지는 지난 12월 3일 홈페이지 사회면 초기화면에 "홍대 터줏대감 '월향'은 어떻게 쫓겨났나"라는 제목으로 서울시 마포구 홍대의 임대인이 아무런 이유없이 임차인 이여영(월향)을 쫓아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2014년 12월 27일 임차인 이여영은 '월향'의 장사가 잘 안되기 때문에 영업을 종료하겠다는 임대차계약해지를 먼저 통보하였고, 이후 12월 임대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월향 측은 보증금을 떼일 염려가 있다는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임대료를 상계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임대인은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명도소송을 제기 하였고, 그 결과로 2015년 11월 18일 판결이 났고, 해당 판결문을 이여영 측이 11월 20일 받았으므로 영업을 중단한 것으로 기사의 내용이 사실과 다릅니다.

10개월 전쯤 건물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건물주라고는 하지만 늘 혼자는 아니었다. 보통 넷이 움직였다. 은퇴한 후 건물을 사들였다는 노부부와 그의 장성한 아들, 여기에 부동산중개업소 대표.

희한한 일이었다. 부동산중개사라면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를 거중조정해야 할 이 아닌가. 세입자에게 분명 '복비' 명목의 중개 수수료도 받은 터였다. 그런데도 그는 늘 건물주의 이해를 위해 뛰었다.

홍대 상권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그이는 그곳 건물주들과의 관계를 사업 수완으로 이해했다. 건물주 부부는 그이에게 소개를 받아 건물을 사들였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사는 아예 자신을 건물 관리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다른 한 명이 더 점포에 나와 있었다. 도합 다섯 명. 건물주가 아니라 건물주 '부대'였다. 건물주 부부는 그이를 '후계자'라고 소개했다. 늘 동행하던 아들에 더해 딸이 따라붙은 모양이었다. 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5년을 넘겨, 계약 연장이냐 해지냐를 따지는 자리였다.

건물주 아내가 다짜고짜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그곳은 막걸리 전문점 월향이 처음 시작한 장소였다. 상가 하나 없던 곳에 상권을 형성시킨 그간 세월이 야속해서 순간 '울컥' 했다. 무엇보다도 계약 해지 이유나 알고 싶었다. 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주인을 대하는 태도가 글러 먹었다."

계약이 종료되는 5년의 마지막 해 무렵, 내가 건물주의 전화를 잘 안 받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은 요구를 한꺼번에 해댔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벽녘에 전화를 걸어 주방 뒤편 환기 시설을 고치라거나, 비만 오면 어김없이 아래 점포로 물이 새니 공사비를 보내라고 했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너무 사소한 것이거나 법적으로는 건물주가 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 모든 요구를 묵살할 수만도, 법적으로 대응할 수만도 없었다. 세입자 다스리기에 전력해야 하는 건물주 부대와 달리, 나는 챙겨야 할 고객과 종업원 그리고 장사가 있었으니까.

아마도 건물주의 저 말은 계약을 갱신하고 싶다면 자신, 아니 건물주 부대 모두에게 내가 더욱 더 굽실거렸어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때서야 퍼뜩 현실을 깨닫게 됐다. 이쯤 되면 계약 연장은 글러먹었다.

이들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단순한 계약관계가 아니라 갑을 혹은 주종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5년간 나는 그들에게 그 주종관계를 즐길 기회를 많이 제공해주지 못했다. 그것이 쫓겨나야만 하는 이유라면 이유였다.

주변에서 건물주들이 세입자들을 쫓아낸다고 할 때도 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여겼다.
 주변에서 건물주들이 세입자들을 쫓아낸다고 할 때도 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여겼다.
ⓒ 이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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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주변에서 건물주들이 세입자들을 쫓아낸다고 할 때도 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여겼다. 건물주 입장에서 장사 잘 되는 임차인을 내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고만 생각했다.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5년 이상 정든 터에서 쫓겨난다고 생각하니 당장의 이해나 어려움부터 떠올랐다. 이사 비용이라도 보전할 소액의 권리금이나마 받을 수 없을까? 다행히 한 부동산 중개업소로부터 월향 1호점 터에서 영업을 하겠다는 이가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건물주에게 연락했다. 그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자신의 관리인을 자처하는, 실은 내 계약 관리인도 돼야 하는 그 중개업소를 통하지 않은 임차인은 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해당 중개업소 역시 그 후보를 거부했다. 그럼 그렇지. 이번에도 내가 순진했나 보다. 건물주와 그의 부동산 중개업소는 이미 계산이 서 있었다. 월향 1호점이 권리금을 못 받고 나가도록 한 후 자신들이 (바닥)권리금을 받겠다는 것이었을 터.

보증금 5천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역시 홍대 상권에 있던 와인 포차 <문샤인>도, 건물주가 원상복구 비용이라며 보증금의 상당 부분을 돌려주지 않았다. 월향 1호점 건물주 역시 같은 태도로 나올 게 불을 보듯 빤했다.

아는 변호사에게 억울한 사정을 토로했다. 딱히 대책이 없었다. 계약 당시 건물주는 이름도 생소한 '제소전 화해(민사분쟁이 생겼을 경우 당사자간의 분쟁이 소송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전에 법관 앞에서 화해를 성립시키는 절차)'라는 법적 조치를 계약의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다. 소송이 남발 되는 것을 막겠다는 멋진 취지의 제도지만, 건물주들은 이를 세입자의 소송 방지 장치로 악용했다.

지난 5월 권리금보호법이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이전 계약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보증금 역시 돌려받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럴 바에야 나갈 때까지 임대료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상계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는 조언도 했다. 이렇게 결국 월향 홍대 1호점은 11월 21일 영업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홍대가 돈에 미쳤어요!"

5년 이상 정든 터에서 쫓겨난다고 생각하니 당장의 이해나 어려움부터 떠올랐다.
 5년 이상 정든 터에서 쫓겨난다고 생각하니 당장의 이해나 어려움부터 떠올랐다.
ⓒ 이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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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상권 건물주들이 세입자 내쫓기에 이토록 혈안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세입자들은 이곳이 서부의 명동상권으로 떠오르면서 시작됐다고 믿는다. 중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 매장 수요가 늘면서다.

이 매장들은 국산 화장품이나 인삼, 소형 가전 등을 판다. 중저가 단체여행 가이드들은 관광객들을 이 매장에 풀어놓고 실질적으로 쇼핑을 강요하는 대신 뒷돈을 받는다. 최근 2~3년 내 바짝 벌고 뜨는 방식의 이 매장 운영주들은 건물주에 기존 임대료의 2배, 심지어 3배까지 제안한다. 건물주로서는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것을 주도하는 이들이 바로 이 지역 부동산 중개인들이다. 이들은 건물주들에게 임대료 대폭 인상과 기존 세입자 추방을 제안하고 거액의 중개 수수료를 노린다. 그렇잖아도 자영업 흥망성쇠가 잦아도 언제나 호황인 쪽은 인테리어 업자와 건물주 그리고 중개업소라는 공식이 나돌던 곳이 홍대 상권이었다.

임대료가 뛰면서 기존 세입자들이 쫓겨나고 자본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이른바 원주민 구축(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현상은 도시 개발과 성장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역사도 오래됐다.

약자의 권익 옹호라는 관점에서만 볼 일도 아니다. 하지만 홍대의 경우는 원주민 구축 현상이 남다른 양상을 띠고 있기도 하다. 중국 관광객 전문 매장들이 들어서면서 이 곳에서 소규모 자영업자들 외에 문화예술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홍대 상권을 규정짓는 분위기였다.

문화예술 단체들이나 공연장, 창의적 공간들이 쫓겨난 자리에, 싸게 살 것만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과 싸게 취할 곳만을 찾는 청소년들로만 득실거린다? 당장 건물주는 명동 노른자위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휩싸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상권의 활기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느냐가 문제다. 홍대 상권에 인접한 신촌 상권이 그랬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 곳은 홍대보다 더 흥청거리는 상권이었다. 하지만 임대료를 한 푼이라도 더 주겠다는 유흥업소와 대기업 플래그십스토어(flagship store, 특정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 한 점포)의 제안에 취해 건물주들이 그 곳에서 대학 문화를 몰아낸 후 상권의 몰락이 가시화됐다. 오늘날 몇몇 신촌 상권 건물주들은 5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내걸고 세입자들을 유치하고 있다.

요즘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피카소 거리까지 이어진 '걷고 싶은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주 세입자 내쫓기 광풍의 여파를 실감할 수 있다. 용역들이 세입자 철거를 강제하는 동안 트럭 앞에 자영업자가 드러눕는 1970, 1980년대 식 어두운 개발의 그림자마저 재연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럴 배짱이나 용기가 없다. 그저 그들에게 다가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말로 격려하고 손을 잡아줄 뿐. 그렇지만 나름 복수의 순간도 꿈꾸고 있다. 월향 홍대 1호점은 광화문으로, 그 1년 전 이미 문을 닫아야 했던 홍대 2호점은 동여의도에 새롭게 터를 잡는 계획이다. 그것은 현재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그곳에서 불 같이 일어설 수만 있다면, 반드시 다시 홍대 상권으로 돌아올 생각이다. 그것도 돈의 취기에서 깬 건물주들의 환대를 받으며. 그때까지는 내 청춘과 사업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홍대에서 대자본의 점포나 건물주가 직영하는 가게에는 들르지 않을 생각이다.

반드시 다시 홍대 상권으로 돌아올 생각이다.
 반드시 다시 홍대 상권으로 돌아올 생각이다.
ⓒ 이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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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이여영은 막걸리 전문점 월향 대표입니다.



태그:#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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