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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감옥'
 '노란 감옥'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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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친구가 한 명 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겨우 몇 달 만에 그를 만났다. 신입인 그는 과도한 업무량에 조금 지쳐 보였다. 한 가지 더 놀랐던 건 쉬고 있는 와중에도 휴대폰 두 대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슬쩍슬쩍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었다. 하나는 회사에서 지급 받은 업무용 휴대폰, 하나는 본인 휴대폰. 쉬는 날에도 그의 두 개의 휴대폰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거부하고 싶은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기자라는 특정 직업군에 국한된 일은 결코 아니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을 발의하며 여론의 반향을 불렀다. 내용인즉슨 사용자가 근로 시간 이외에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내릴 수도,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법안 취지에 동의했다.

다만 "업종, 직종에 따라 편차가 큰데 일률적으로 법안 적용이 가능하냐, 불법을 유발할 수 있다, '지나친 업무간섭이다' 등의 의견이 나오며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 이에 신경민 의원은 팟짱 인터뷰에서 "모든 법이 실효성을 가져야 하느냐, 법안 발의를 시작으로 노사 협의에 의한 활발한 논의가 일어나면 그것으로 발의의 의미는 충분히 지닌 것"이라고 밝혔다.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이라고 명명했지만, 이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주장이다. 최근 유럽에서 시작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주장은 대부분의 노동자가 스마트폰을 사용한 이래 새로운 화두로 부상했다. 한국에서는 단연 카카오톡 메신저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접속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카카오톡의 장점이 업무 시간 외에 지시를 내리는 데도 용이하다는 측면이 부각되어 노란 감옥으로 변질되었다.

당장 수행해야하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이 카톡으로 지시를 할 수도 있지만, 급한 일이 아님에도 업무지시를 하면 노동자의 스트레스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카카오톡방을 나가지도 못하는 노릇이니, 그야말로 출구는 존재하지만 나갈 수는 없는 감옥이 따로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최장 노동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도 모자를판에 IT 강국답게 빠른 기술의 발전으로 서로 간의 연결성을 증진시키는 바람에 노동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회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잠시간의 해방감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이제 옛날 얘기다. 직장인에게 퇴근 후 카카오톡 수신음 알림은 이제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듣는 알람보다 더욱 곤혹스러운 소리다. 퇴근 이후에 빗발치는 업무 지시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사내 분위기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권리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당장에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이 통과되리라 보진 않는다. 기술의 속도에 비해 사회적 합의의 시간이 필요한 법과 제도는 기술을 따라잡을 만큼의 속도로 개선되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앞으로 편의와 효율에 입각한 기술의 발전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당할 가능성은 높아질 우려가 있다.

권리가 침해당할 때,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지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많은 이들과의 치열한 '협의'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스트레스가 '감수해야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는 이번 발의를 곱씹고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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