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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간 작은 '필화'를 겪었다. 얼마 전 쓴 1급 정교사 자격(이하 1정) 연수 관련 글 때문이다. (관련 기사 : 교사가 수업 때 스마트폰으로 찰칵, 민망했다) 직접 해코지를 당한 건 아니지만, 십여 통의 항의성 메일을 받았다. 내용으로 보아 대개 현직 교사이거나, 연수 담당자가 보낸 듯하다. 답장을 일일이 보낼까 고민하다가, 차라리 답변과 반론 삼아 글을 한 편 다시 쓰자고 마음먹고 자판 앞에 앉았다.

혹시 내 글이 전국 각지에서 지금 지역별, 교과별로 실시되고 있는 모든 1정 연수가 다 문제라는 식으로 읽혔다면 양해를 구한다. 부디 교사 재교육이라는 의미에서 괜찮은 커리큘럼이 있다면, 여러 채널을 통해 교사들끼리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리 밝혀둔다면, 답변과 반론을 담은 이 글도 실은 의미 있는 1정 연수를 만들기 위한 연수생들의 몸부림에 관한 이야기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답변과 반론을 담은 이 글은, 의미 있는 1정 연수를 만들기 위한 연수생들의 몸부림에 관한 이야기다.
 답변과 반론을 담은 이 글은, 의미 있는 1정 연수를 만들기 위한 연수생들의 몸부림에 관한 이야기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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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비판은 이것이었다. 일반 연수와는 달리 자격 연수는 대상인 교사가 내용과 형식에 개입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이수 후 자격을 부여받는 대상이 어찌 연수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는 거다. 또, 학교의 교육과정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맡길 순 없지 않으냐며, 자격 연수 과정에서 교사는 어디까지나 연수생, 곧 학생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언뜻 논리적으로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일반 연수든 자격 연수든 교사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재교육이라는 의미에서 하등 다를 게 없다. 연수 내용의 질을 평가하고 결정하는 건, 연수를 개설한 주체인 교육부가 아니라, 대상인 연수생, 곧 교사다. 연수가 마무리된 후 강의 별로 평가서를 쓰고 평점을 매기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강의평가서의 내용이 다음 연수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는 안타깝게도 확인할 길이 없다. 수료증을 받고 학교로 돌아간 뒤에도 교육부와 해당 대학에 1정 연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오지랖 넓은 교사는 사실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다음에 연수를 받게 될 후배 교사들에게는 좀 더 나은 커리큘럼이 제공되기를 바라는 마음 정도가 있을 뿐이다.

아무튼 상담이든 수업이든 교사가 아이들을 만나는 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는가가 중요하지, 이수 여부나 자격을 받고 안 받고는 허울에 불과하다. 곧, 연수의 주체냐 대상이냐 따지며 말꼬리 잡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그나저나 말이 났으니 이야긴데, 학교의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데에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관여하는 건 권장할 일이지, 결코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연수의 세부 교육과정에 교사의 요구가 적극 반영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주위에서 1정 연수를 통해 수업 능력이 향상됐다거나 아이들과의 소통에 보탬이 되었다는 교사를 만나기 어려운 것도 교사의 요구에 교육부가 귀 막은 탓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1정 연수에 기대할 건 별로 없을 거라는 선배 교사들의 말에 "이젠 달라졌다"고 당차게 이야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강의 도중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건 '대세'라고 말하는 비판도 많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학이든 연수원이든 강의실에서 노트에 필기하는 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면서, 이미 노트의 기능은 노트북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대체됐다고 잘라 말했다. 동시에 강의를 보고, 듣고, 적어야 할 상황에서 스마트폰 촬영은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는 좋은 방안 아니냐며 반문했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학교에서도 노트 정리는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과제 중의 하나가 됐다. 대개 펜으로 글씨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서술형 시험의 채점이 힘들 정도로 필체가 엉망인 아이들이 정말 많다. 엄지손가락으로 휴대폰 문자 보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타자가 필기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요즘 아이들에게 노트 정리는 공부가 아니라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그렇다고 해도 강의 도중 셔터 소리와 플래시를 터뜨려가며 스마트폰을 들이대는 걸 납득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강의실 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팔을 위로 뻗거나 숫제 일어서는 통에 뒷사람의 시야를 가리기 일쑤다. 결국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강의의 질은 나빠지고 몰입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콘서트장의 딜레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강사에게 파워포인트 자료나 정리된 강의 노트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요즘 어느 곳에서건 펜과 노트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강의를 듣는 게 보편화됐다지만, 강의 내용을 수시로 촬영하고 통째로 녹음하는 것을 두고 효율적인 학습 방안이라 말하는 건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그걸 '학습'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나쁜' 1정 연수

사실 가장 많았던 이야기는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해온 1정 연수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 온당치 않다는 주장에 백 번 동의한다. 거의 해마다 수십억 원씩 세금이 들어가는 연수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었다면, 지금껏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는 식으로 두루뭉수리 눙쳐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표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다. 거듭 강조하건대, 내 글의 요지는 교사 재교육 차원에서 1정 연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커리큘럼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현직 교사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무엇보다 '임용고시 때만 잠깐 필요한 지식'이라며 조롱받는 교직 과목을 과감히 개편해야 한다. 대학교수들은 "이론이 없는 실천은 맹목이고, 실천이 없는 이론은 공허하다"고 강조하지만, 그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강의란 건 사실 잡다한 서양의 교육이론을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제도적 뒷받침은커녕 '임상실험'에 대한 확실한 분석조차 없이 소개되는 다양한 수업 기법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이 과연 우리의 교육 현실에 부합하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교사들은 수업이든 상담이든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데에 전혀 보탬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말하자면, '죽은 지식'인 셈이다. 물론, 이론이야 죄가 없다. '전문가입네' 하는 대학교수들이 일선 학교 현장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앵무새처럼 이론만 되뇌고 있는 게 문제다.

흔히 대학교수를 두고 전공 분야에서 단 한 걸음만 벗어나도 '바보'가 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심지어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도 정작 자신의 전공에 대해 가르치는 일에는 젬병인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이들의 시답잖은 강의를 매일 서너 시간씩 들어야 하는 교사들은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때우는 일조차 괴롭다. '1정 연수는 인내심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조롱이 난무하는 이유다.

전공 수업도 교직 과목과 별반 차이가 없다. 대상이 현직 교사라는 점을 까맣게 잊은 채, 마치 학부생 강의처럼 여기는 대학교수들이 적지 않다. 대상이 다르면 강의의 내용도 방식도 달라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다짜고짜 자신의 전공 분야를 무슨 소설책 읽듯 한바탕 읊고 가는 수업은, 거칠게 말해서, 아까운 시간 낭비다.

그런데도 줄 세우기 상대평가로 치러지는 시험을 앞두고 있어, 다들 그다지 쓸데없는 내용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매달릴 수밖에 없다. 고작 3주의 과정에서 매주 한 차례씩 시험을 치러야 하는 교과도 있어, 많은 연수생들이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일부 교과에서는 삼삼오오 스터디그룹까지 급조해 늦은 밤까지 벼락치기 공부를 한다고 한다.

교사들조차 경쟁 속에 몰아넣어 불안을 조장하는 '참 나쁜' 커리큘럼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 법이다. 교사 재교육이라는 1정 연수가 되레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끼리의 교류와 연대를 차단해 마음가짐마저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 바라건대, 내 글이 앞으로 1정 연수의 커리큘럼을 조금이나마 바꿔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안을 찾기 위해 둘러앉은 선생님들

연수생들을 토론의 장으로 이끈 문제의 대자보다.
▲ 강의실 입구에 내걸린 대자보 연수생들을 토론의 장으로 이끈 문제의 대자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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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지금 우리 교과의 1정 연수 풍경을 전한다. 연수 2주차인 어느 날 아침 강의실 입구에 큼지막한 대자보가 한 장 나붙었다. 한 연수생이 1정 연수의 성적이 승진을 위한 '노예 점수'가 되는 현실을 꼬집으며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의견을 담담하게 적었다. 반응이 잇따랐고, 주어진 조건 내에서라도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연수로 바꿔보자는 의견이 모였다.

지금 교사들에겐 일방적인 강의보다 연수생끼리의 토론이, 최고의 이론보다 부박한 현실에 대한 공감이 더 필요하다는 요구를 강사들에게 전달했고, 일정 부분 반영시켰다. 교과목마다 서너 시간 할당된 강의 시간을 줄이고 토론 시간을 가졌고, 쉬는 시간을 잊을 만큼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서로 경청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스스로 위로받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그러자니 자리 배치도 자연스럽게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둥그렇게 바뀌었다. 강사는 연수생을 보고, 연수생은 강사와 칠판만 쳐다보는 기존의 강의실이 환해지고 넓어졌다. 몇몇 과목에서는 강사조차 연수생처럼 앉아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다. 과목에 따라 수시로 주제는 달라졌지만, 연수생들 사이의 '관계 맺기' 노력은 강의실을 공감과 소통으로 가득 채웠다.

문을 열고 들어온 강사는 물론, 일부 연수생들도 낯선 강의실 풍경에 순간 쭈뼛거리기도 했지만, '앞으로 나란히' 형태의 자리 배치를 외려 어색해할 만큼 자연스럽게 고정석이 됐다. 고작 자리 배치가 달라졌을 뿐인데, 강의의 형식과 내용도 시나브로 바뀌었고, 연수생들끼리는 물론, 강사와의 거리도 훨씬 가까워졌다. 그 결과 우리 교과에서는 3주간의 1정 연수가 곧 끝난다는 사실을 무척 아쉬워할 만큼 '한 가족'이 됐다.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이들에게 보내는 나름의 대안이다.

자리 배치가 달라지니 강의도 달라졌다.
▲ '허락'도 없이 둥그렇게 바꾼 강의실 자리 배치가 달라지니 강의도 달라졌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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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1급 정교사 자격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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