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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들이쳤다. 하나같이 잿빛 작업복을 걸치고, 색이 바랜 안전모를 덮어 쓴 채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반복되는 고된 작업 때문일까. 어딘가 공허한 눈빛들이 크레인을 향하고 있었다.

신호에 맞춰 잠시 멈춰 섰다가도 금세 지나가는 행렬. 그 앞에서 우리는 외쳤다. 노동자의 죽음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고,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그 날 우리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닿았을까. 어떤 울림을 낳았을까.

지난 '2016 반신자유주의 선봉대'에서 경남 거제 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했다. 10만이라는 막연한 숫자가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조선소, 그곳에는 한낱 펜대 굴림 한 번에 사라지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삶이 묶여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왜 이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야만 하는지, 무슨 잘못이 있길래 말도 없이 죽어가야 하는지 말이다.

노동자가 뭘 잘못했습니까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오후 경남 거제 조선업희망센터를 방문한 가운데,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는 1인시위를 벌였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오후 경남 거제 조선업희망센터를 방문한 가운데,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는 1인시위를 벌였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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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재벌에게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선 3사(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왔다. 해외기업들이 지지부진하니 그 틈을 치고 나가자는 전략이었다. 해외플랜트 사업에 뛰어들어 생산량을 늘리고 해외 수출에 박차를 가하려고 마구잡이로 설비투자를 했다.

공장을 돌릴 사람은 필요한데 돈은 덜 들이고 싶으니 하청노동자가 대폭 늘어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미래는 보지 않고 당장의 이익만을 쫓은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은 2014년 하반기, 고스란히 폭탄으로 돌아왔다.

2014년 하반기 유가가 급락하자 해양플랜트 수주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갑작스런 불황에 조선소들은 어마어마한 손실을 떠안게 되었다. 당장 빅3 조선사로 불리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1년 내에 갚아야 할 돈이 10조 원에 이르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재벌들은 부랴부랴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1년 사이에 대우조선해양에서만 6천명 넘는 하청노동자가 사라졌다. 현대중공업에서도 849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미 3만 여명의 조선소 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내몰렸지만 내년까지 6만여 명이 더 사라질 것이란다.

하청 노동자의 삶은 더 괴롭다. 하청업체들은 최대한 빨리 선박을 만들기 위해 노동 강도를 올렸다. 비용절감 앞에서 각종 안전수칙, 안전관리를 무시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하청노동자들은 일해야 한다.

누군가가 리프팅 러그에 깔리고, 바다로 추락하고, 굴삭기에 끼여도 묵묵히 그림자처럼 일해야 했다. 3년 새 중대재해로 죽은 사람만 30명이 넘는다. 재벌 자신들의 잘못을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모습에 치가 떨렸다.

잘못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선봉대 일정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치열했던 날들과 너무나도 다른 시간대에 사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저 멀리 거제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나의 자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이 가득했다. 조선업 구조조정,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힘을 모아내면 바꿀 수 있는 문제인데도.

대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교지에 글을 싣고,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영화 <그림자들의 섬> 공동체 상영회를 열었다. 조선업 문제를 면밀히 뜯어보고, 널리 알리는 것.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리고 지금, 죽음 앞에 내몰린 하청노동자들이 나서고 있다. 거제의 10만 조선하청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림자들의 문제를 그림자들이 직접 해결하겠다고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다.

10월 29일 거제에서 '조선소 하청노동자 대행진'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전국의 조선하청노동자들이,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모여 울분을 쏟아내는 자리. 그곳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볼 것이다. 같이 외칠 것이다.

사람이 쓰러지고 죽어도 아무 말 않는 침묵을 깨자고, 위기의 책임을 똑바로 지라고.

ⓒ 박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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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남대학교 학생입니다.



태그:#조선소, #구조조정, #거제, #희망버스, #하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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