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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그리워질 때면

홀로 외로운 이 밤. 밤이 길다. 몸을 데워줄 따뜻한 차가 필요했는데 가스는 얼어버렸다. 보온병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장비마저 도와주지 않던 이날 밤은 괴로웠다. 겨울용 가스버너도 추위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바람소리에 뒤척이다 새벽녘 하늘을 바라본다. 별들도 잠들었나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홀로 남은 느낌이랄까. 밤은 길고도 길었다.

에스토니아에서 온 친구는 니칼루옥타에서 아비스코로 가는 중이었다.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사람이 그리웠을까 그와 한참을 떠들었다. 혼자 왔던 이 친구도 썰매를 가지고 있었다. 'Tjaktja' 숙소에서 오는 길이었는데 2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했다. "Safe trip"(안전한 여행) 서로 외치고 헤어졌다. 힘이 생겼다. 같은 길을 걸을 뿐인데 사람에게 힘을 받은 것이다. 나 말고도 혼자 걷는 친구가 있구나. 트레킹이 끝날 때까지 혼자 걷는 트레커는 더 이상 보지 못했다.

나무 표지판 외엔 세상은 하얗다.
 나무 표지판 외엔 세상은 하얗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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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aktja 숙소
 Tjaktja 숙소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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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보인다. 오전 7시에 출발해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10시쯤. 숙소로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길과 오르막의 시작점에 위치해 있다. 다시 한 번 느꼈지만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있으면 거리 감각뿐 아니라 공간 지각력을 잃게 된다. 하늘인지 구름이지 안개인지 땅인지 내리막 구간인지 오르막 구간인지 쉽게 판단이 안된다. 그러한 일들 때문에 나는 수시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었다.

"내가 겨울에 만난 첫 아시아인이야!"

Tjaktja 숙소에서 일하고 계셨던 할아버지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른 시간에 여기까지 올수 있는 곳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지 궁금해하셨다. 지난밤 야영한 얘기, 프랑스 커플 얘기, 알레스야우레에서 만난 독일인 얘기를 해드렸다. 식당에 들어가 차도 마시고 몸 좀 녹이라는 말에 얼른 들어갔다. 나 말고도 다른 아시아인이 겨울에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시간과 시기가 안 맞아서 만나지 못했을 뿐.

숙소내 주방.
 숙소내 주방.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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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물 끓이고 있을 때.
 주방에서 물 끓이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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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 한 장.
 할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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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트레커가 놓고 간 건조식품이 있다고 떠나는 나에게 가지고 가라고 하셨고 언덕 정상에 올라서면 무인 헛이 있으니 그곳에서 점심을 먹으라고 하셨다. 매번 사람과의 만남에서 계속 받기만 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들의 마음이 감사했고 그 힘으로 잘 버틸 수 있었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길을 나섰다. 다음 숙소가 있는 '살카'까지는 12km. 시간이 지체되면 무인 헛에서 잠을 자기로 결정했다.

#독일인과의 만남은 계속 된다

무인 헛에 도착한 후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살카' 는 너무 멀리 있었고 이곳에서 하루 자고 가기로 했다. 화장실도 있고 장작을 팰 수 있는 창고도 같이 있었다. 우선 난로에 불을 붙였다. 다음 트레커를 위해 창고에서 나무를 패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을 끓이고 차도 마시고 먹고 싶었던 전투식량도 먹었다. 밀린 트레킹 일기를 쓰며 안에 온기가 돌 때쯤 밖으로 나왔다.

무인헛이 보이는 구간. 스키를 벗고는 올라갈 수 없는 구간. 이 구간에서만 1시간 이상 걸린 구간.
 무인헛이 보이는 구간. 스키를 벗고는 올라갈 수 없는 구간. 이 구간에서만 1시간 이상 걸린 구간.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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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헛. 앞에 건물은 나무 창고. 안에는 톱, 망치가 준비돼 있다.
 무인 헛. 앞에 건물은 나무 창고. 안에는 톱, 망치가 준비돼 있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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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헛 내부. 빨간 노트는 방명록.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무인헛 내부. 빨간 노트는 방명록. 이곳에 기록을 남긴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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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올라왔던 곳에서 4명이 오고 있었다. 고생했을 그들을 위해 따뜻하게 만들어 놓은 차를 가지고 나와 한 명 한 명에게 건넸다. 그들도 지쳐 있었기에 따뜻한 차 한 잔이 위로가 됐을 것이다. 이곳에서 같이 하루 묵기로 했다. 동지가 생겼고 긴 밤이 외롭지 않을것이다. 저녁을 만들테니 같이 먹자고 했다. 간편히 먹을 수 있는 건 어디에서나 파스타가 최고인가 보다.

무인 헛 내부, 난로가 준비돼 있고 스키부츠를 말리고 있다. 눈을 녹여 물도 마시고 차도 만들고 음식 준비도 한다.
 무인 헛 내부, 난로가 준비돼 있고 스키부츠를 말리고 있다. 눈을 녹여 물도 마시고 차도 만들고 음식 준비도 한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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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통조림 소스로 만든 파스타는 두 접시를 먹었고 난로에 계속 끓이고 있던 차와 과자를 먹으며 2차, 초콜릿과 젤리를 먹으며 3차까지 이어졌다. 잠들기 전까지 차는 계속 마셨으니 5명이 수시로 화장실을 왔다갔다 했다. 사람의 온기로 가득 찬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샌드위치를 만들어줘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가는 길은 같았지만 스키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속도는 거의 2배에 가까워 다음 숙소지 '살카' 에 도착해서 만날 수 있었다.

출발하기 전 단체 사진
 출발하기 전 단체 사진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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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6년 3월 11일부터 3월 20일까지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태그:#쿵스레덴, #겨울트레킹, #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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