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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거세다. 바람도 점점 심해지고 시야가 밝아졌다 흐려지기를 반복한다. 살카에서 다시 만난 스페인 팀이 멀리서 오고 있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그들이 내 뒤를 따라오나 계속 뒤돌아 봤다. 무인헛에서 쉬고 있을 때 스페인 친구들은 나에게 물어봤다. 힘들지 않냐고 너를 볼 때마다 혼자서 지치지 않고 잘 걷고 있어 너를 보며 걷고 있다고. 나 역시 그들을 의지하며 걷고 있었는데 그들도 혼자인 나를 보며 힘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왜 안 힘들겠어. 그냥 한 발 한 발 걷는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면 그냥 걸었다. 걷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바람에 휘청거릴 때면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걸었다. 이곳에 왜 왔을까 생각이 들 때면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 준비하며 즐기고 싶었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던 기분을 떠올리며 걸었다.

스페인 팀.
 스페인 팀.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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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헛
 무인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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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살카까지는 7km
 이정표. 살카까지는 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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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이'에 도착 후 날씨는 더욱 나빠졌다. 고글 없이는 밖으로 나오기 힘들었다. 화장실 가는 짧은 거리에도 몸이 휘청거려 넘어지기도 했다. 오늘은 위험하다며 숙소 주인은 안에서 자기를 권했다. 내일은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대부분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페인 팀은 떠나기로 결정했고 나는 팀 속에 들어가 함께 걷기로 했다. 이곳에서 나는 풀코스 계획을 변경했다. 혼자서 더 이상 걷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장비의 부재와 무모한 용기로 도전하기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알레스야우레에서 만난 아셀의 말을 빌리면 싱이에서 바코타바레로 가는 구간은 좁은 협곡과 사람 키보다 더 높게 쌓인 눈을 헤치고 가야한다. 또한 '키비요크, 암마나스' 구간은 표지판도 없는 구간이며 무인헛 조차 없기 때문에 밖에서 잠을 자야 하는 쿵스레덴 구간 중 가장 힘든 코스가 예정돼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했을 때 계획 변경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다시 오겠다 다짐했다. 썰매를 준비할 것이고 함께 할 친구와 함께 말이다.

싱이 숙소
 싱이 숙소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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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하게 바람 불던 '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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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팀은 묵고 있는 숙소로 같이 가자고 했고 옆방에 있던 영국인 가족은 밥은 먹었냐며 파스타, 과자, 차가 있으니 먹고 가라고 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혼자인 나를 걱정해서인지 많이도 챙겨줬다. 감사한 마음을 어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무사히 다치지 않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 뿐이다.

바람이 잠잠해 질 것 같지 않다. 지체할 수 없어 스페인 팀은 하나 둘 본인의 짐을 정리하며 마지막 일정을 준비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케브네카이세' 숙소. 아비스코 이후로 가장 큰 숙소이며 스웨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케브네카이세'를 오를 수도 있는 곳이다. 스페인 팀은 이곳을 마지막으로 니칼루옥타까지는 스노우모빌을 타고 갈 계획이었다.    

덧붙이는 글 | 2016년 3월 11일부터 3월 19일까지 걸었던 이야기입니다.



태그:#쿵스레덴, #겨울트레킹, #스키,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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