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3일 막을 올린 '2017 러시아 컨페더레이션스컵'은 독일의 우승으로 끝맺었다. 독일 축구 대표팀은 한국 시간 3일 오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칠레를 1-0으로 꺾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사실 대회 개막 직전까지 독일 대표팀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주전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를 비롯해 메수트 외질, 토마스 뮬러, 토니 크루스 등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주역들이 빠진 1.5군으로 팀을 꾸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일은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독일은 유난히 컨페드컵과 인연이 없었는데,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4년까지 쓴맛 봤던 독일, 최근 '승승장구' 이유 있다

 독일, 칠레 1-0 꺾고 2017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독일, 칠레 1-0 꺾고 2017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 EPA/연합뉴스


독일 대표팀의 승승장구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유소년 축구를 육성해 선수층을 두텁게 하는 한편 게르만 순혈주의를 버리고 미로스라프 클로제(폴란드), 메수트 외질(터키) 등 변방 출신 선수들에게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혔다. 특히 유소년 축구 정책은 주목할만 하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이후 독일 축구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8강에 그쳤다. '못해도 8강'이라지만 문제는 경기내용이었다. 미국 월드컵 8강전에서는 불가리아에게 1-2로 역전패했고,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는 크로아티아에게 0-3으로 맥없이 패했다. 유로대회 성적은 더욱 처참했다. 2000년과 2004년 두 대회 연속 독일은 예선리그에서 1승도 건지지 못하고 예선탈락했다.

독일 축구협회는 유소년 축구에서 해법을 찾았다. 독일 축구협회는 모든 클럽에 유스 아카데미를 운용하도록 하고, 12세 이하부터 18세 이하까지 연령대별 유스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구단은 상위 리그에 들어올 수 없도록 제한했다. 젊은 선수 자원 육성은 곧장 성적으로 이어졌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팀의 주축이던 미하엘 발락은 큰 부상을 당해 대회 출전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대표팀에서 발락의 공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토마스 뮬러, 메수트 외질 등 당시 신예들은 펄펄날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독일의 우승을 결정짓는 골을 뽑아낸 주인공은 역시 신예 마리오 괴체였다. 이번 컨페드컵에서도 율리안 드락슬러, 요나스 헥토르, 요수아 키미히, 레온 고레츠카, 라르스 스틴들 등 젊은 선수들이 맹활약하며 우승까지 차지했다.

뢰브, 11년 장기집권 하며 체질 개선 이뤄 

여기에 요아힘 뢰브 감독의 지도력을 빼놓을 수 없다. 뢰브 감독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지금까지 11년째 대표팀을 맡아오면서 꾸준한 성적을 내는 중이다. 2008년 유로대회 준우승, 2010년 남아공 월드컵 3위, 2012년 유로대회 4강,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 2016년 유로대회 4강, 그리고 이번 컨페드컵 우승까지 뢰브 감독은 감독으로서 거머쥘 수 있는 타이틀은 다 쓸어담고 있다.

뢰브 감독이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하기까지 뢰브 감독이 이끄는 독일은 결정적인 길목에서 주저 앉았다. 2008년 유로대회에서는 스페인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4강전에서도 역시 스페인의 푸욜에게 헤딩골을 내주며 또 다시 3위에 만족해야 했다. 2012년 유로대회 4강에서는 이탈리아에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연거푸 두 골을 내주며 허망하게 패했다. 이러자 독일 축구팬들은 "뢰브의 스타일이 익숙해져 메이저 대회 우승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며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뢰브 감독은 이 같은 팬들의 불만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으로 날려버렸다. 특히 4강에서 개최국이자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을, 결승에서 리오넬 메시가 버틴 아르헨티나를 차례로 누른 건 그간 따라다닌 2인자 이미지를 털어내기에 충분했다.

사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전 독일 축구 스타일은 투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비에 치중하다 역습기회를 노리거나, 프리킥-코너킥 등 세트피스 상황에서 득점을 시도하는 식이었다. 이런 스타일은 단기전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는 있었으나 재미는 덜했다. 투박하고 단조로운 플레이를 좋아할 팬들은 별로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전임자인 클린스만과 현 뢰브 감독을 거치면서 독일 축구는 빨라지고, 화려해졌다. 특히 뢰브 감독은 이른바 '티키타카'로 불리는 스페인의 패스축구를 성공적으로 접목시켰다. 이 결과 독일팀은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면서 기회가 나면 집중력을 발휘해 상대를 몰아붙이는 팀으로 거듭났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4골을 뽑아내는가 하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브라질을 7-1로 대파한 것도 따지고 보면 체질개선에 따른 결과였다.

뢰브 감독은 컨페드컵 결승까지 A매치 102승째를 따냈다. 어느 부문이든 한 자리에 오래 있다보면 경직되기 일쑤다. 그러나 뢰브 감독은 11년 동안의 재임 기간 동안 한가지 전술을 고집하기 보다 끊임 없이 신예들에게 출전기회를 주는 한편, 다양한 전술 개발에 매진해 왔다. A매치 102승과 그간 거둬들인 타이틀은 뢰브 감독이 기울인 노력의 결실이다. 독일 축구협회도 뢰브 감독의 공을 인정해 2020년까지 임기를 보장해줬다.

마침 21세 이하 독일 대표팀은 1일 폴란드 크라쿠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년 유럽축구연맹(UEFA) U-21 챔피언십 결승에서 스페인을 1-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같은 축구 저변, 그리고 뢰브 감독의 역량을 감안해 볼 때 당장 닥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물론 이후 열릴 각종 대회에서 괄목할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한국 축구의 현실 돌아보면...

한국은 어떤가? 유소년 축구 육성은 '입시'라는 현실 때문에 무시되기 일쑤다. 축구 대표팀 감독자리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성적부진으로 경질됐다.

그의 경질을 두고 축구협회가 역량 있는 지도자 육성은 소홀히 하면서 명망 있는 외국인 지도자에게만 의지하려 한다는 비판여론이 빗발쳤다. 이런 와중이니 뢰브 감독 같이 10년 넘게 팀을 지휘하며 다양한 전술실험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부러워하지만 말고, 독일이 축구 강국으로 자리한 원동력의 원인을 찾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 한국 축구에 접목해야하지 않을까? 독일이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암흑기에서 교훈을 얻어 면모를 일신했듯이 말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뢰브 감독을 영입해도 한국 축구는 성적을 고민할 수 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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