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섭현(涉縣)으로 가는 길

한딴(邯單)에서 섭현(涉縣)가는 시외버스는 10-20분 간격으로 자주 있었고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대도시 한딴에서 섭현으로 이동하는 동안 중국의 발전 과정을 역사적으로 거슬러 보는 듯 했다.

한딴에는 높이를 자랑하며 올라가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고 여기저기 건설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를 좀 벗어나면 잘 연결된 도로 위에 차들이 질주를 한다. 누가 중국을 가르켜 느리다는 뜻의 '만만디'라고 했는가? 전혀 만만디가 아니다. 차들은 조금이라도 빠르게 달리려고 경적을 울리면서 비집고 들어오고 과속으로 싱싱 달렸다. 도시에서 좀 떨어진 시외지역에는 소규모 공장과 별별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도로 양 쪽에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더 시골지역으로 들어가면 넓은 밭에 무한정 펼쳐진 농경지를 보게 된다.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 누가 저 넓은 땅을 가꾸고 농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딴에서 2시간 반 정도 달려서 드디어 섭현에 도착하니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호텔 불빛을 보고 찾아 들어갔다. 짧은 중국어로 한국 사람인데 묵을 수 있는 빈방이 있느냐고 물었다.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호텔 여종업원은 외국인은 받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외국인 숙박이 가능한 숙소는 3성급 이상 호텔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바이두 지도(百度地圖) 등을 통해 호텔을 검색하면 외국인이 머물 수 있는 호텔은 접대외빈(接待外宾)이라는 항목이 체크가 되어있음을 나중에 알았다.

몸은 지치고 날은 어두웠고 갈 곳은 정해지지 않았다. 겨우 찾아간 호텔에서는 외국인은 안 받는다고 하니 앞이 캄캄해졌다. 근처에 외국이 숙박이 가능한 호텔을 물었다. '롱산 빈관'을 추천했다. 호텔 여자 종업원은 길가까지 따라와서 택시를 잡아주었다. 택시를 잡아서 기사에게 롱산 빈관까지 모셔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전혀 모르는 외국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푸는 순박한 중국 아가씨가 한없이 고맙고 감사했다. 발전이 덜 된 시골에서는 인심이 후하고 우리의 옛적 동네처럼 정과 친절이 남아있었다.

스먼촌(石門村) 가는 길

4성급의 롱산 빈관에서 198위안으로 하루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택시를 잡아서 흥정을 했다. 오늘 하루 전세를 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의 지도를 보여주면서 갈 수 있는지 물었다. 스먼촌의 윤세주, 진광화 열사 초장지, 마전의 팔로군 총부 기념관, 운두저촌(雲頭底村), 섭현의 팔로군 129군사령부 구지, 섭현 남장촌의 조선의용군 주둔지, 태항 오치산 등이었다. 300위안에 내가 원하는 곳을 다 가는 조건으로 어렵게 흥정을 마치고 택시는 스먼촌을 향해 달리었다.

중국은 모든 것이 달린다. 중국 내륙의 오지로 들어갈수록 산세는 험하고 좁은 도로에 거대한 화물차들이 경적을 빵빵 울리면서 마구 달렸다. 산업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석탄과 골재와 건축자재들을 실은 화물차들은 중앙선을 이리저리 넘으면서 시간에 쫓기듯 빠르게 내달렸다. 발전하는 중국은 한가한 나라가 아니었다.

윤세주, 진광화 열사 초장지를 찾아가는 섭현의 길에는 대형 화물차들이 끊임없이 줄지어 다녔다. 중국 산업화에 필요한  광석들과 건설자재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 대형트럭 질주하는 중국도로 윤세주, 진광화 열사 초장지를 찾아가는 섭현의 길에는 대형 화물차들이 끊임없이 줄지어 다녔다. 중국 산업화에 필요한 광석들과 건설자재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사람들은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자전거 이외에도 별의별 이동수단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앞에 바퀴가 하나만 있는 삼륜 트럭도 많고 택시 대용으로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천을 씌운 삼륜 오토바이도 자주 눈에 띄었다.

특이한 것은 전기 자전거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전기 자전거는 보통은 배터리로 움직이는데 오토바이처럼 활용하다가 꼭 필요할 때에 페달을 밝는 듯했다. 전기 자전거는 매연이 심각한 중국이 환경문제의 대안으로 적극 활용하는 듯하였다. 앞으로 몇 년 안에 고속 전철에 이서어 전기 자전거나 전기 자동차가 중국 대륙을 휩쓸 듯한 전망이다. 그만큼 많은 전기 자전거가 중국의 도로마다 마을마다 싱싱 달리고 있었다.

중국의 발전 속도는 1-2-3-4-5의 단계적 순서가 아니다. 1에서 3으로, 3에서 5로, 10으로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뛰어넘는 무서운 속도다. 10년 후에는 중국의 전기 자동차나 전기 자전거가 전 세계로 수출할지도 모른다. 독일은 2030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를 금지하는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프랑스와 영국도 2040년에는 휘발유나 디젤의 자동차의 신차 판매를 중단한다고 보도되었다.

중국은 이미 전기자전거가 실용화되었다. 아가씨들은 치마를 입고도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앞부분을 천으로 가리었고 매연 때문에 마스크를 쓴 분들도 많았다. 비오는 날에는 자전거에 맞는 우비를 입고 자전거는 멈추지 않고 달리었다. 중국은 탈 것이라면 모든 것이 달린다. 자전거도 달리고 오토바이도 달리고 우마차도 달리고 별별 자동차들이 달리고 외제차도 많고 뿌연 매연을 뚫고 중국은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중국은 지금 전기 자전거가 어디를 가도 싱싱 달린다. 전기 자전거는 매연이 없고 페달이 있어서 유사시에는 발로도 갈 수 있다. 스모그가 심한 중국은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듯하다.
▲ 중국의 전기 자전거 중국은 지금 전기 자전거가 어디를 가도 싱싱 달린다. 전기 자전거는 매연이 없고 페달이 있어서 유사시에는 발로도 갈 수 있다. 스모그가 심한 중국은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듯하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중국은 달릴 수 있는 모든 것은 달린다. 자동차도 많고 자전거도 많고 오토바이도 많고 삼륜차도 있고 달구지도 있고 외제차도 많고 탈 수 있는 모든 것은 사람과 물건을 싣고  달린다. 아가씨들은 치마를 입고 자전거 앞을 천으로 가리고 달린다.
▲ 중국은 모든 것이 달린다. 중국은 달릴 수 있는 모든 것은 달린다. 자동차도 많고 자전거도 많고 오토바이도 많고 삼륜차도 있고 달구지도 있고 외제차도 많고 탈 수 있는 모든 것은 사람과 물건을 싣고 달린다. 아가씨들은 치마를 입고 자전거 앞을 천으로 가리고 달린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중국은 자전거 천국이다. 자동차도 엄청 많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자전거 행렬이 거대한 떼를 이루어 달린다. 비가 와도 자전거를 덮는 비옷으로 가리고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중국의 자전거 중국은 자전거 천국이다. 자동차도 엄청 많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자전거 행렬이 거대한 떼를 이루어 달린다. 비가 와도 자전거를 덮는 비옷으로 가리고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스머촌의 윤세주, 진광화 초장지(初葬地)

마을을 오가는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자동차들을 구경하는 사이에 택시는 스먼촌에 도착했다. 윤세주, 진광화, 좌권 장권의 초장지를 찾아서 산길을 타고 올라갔다. 위성 지도로 보았을 때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어서 차가 못 올라갈 줄 알았는데 포장된 좁은 길을 따라서 택시는 산 중턱까지 안전하게 도착했다.

윤세주 진광화 열사의 초장지에 위치한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이다. 문이 잠겨 있어서 내부의 자료들을 보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 윤세주 진광화 열사의 초장지에 위치한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이다. 문이 잠겨 있어서 내부의 자료들을 보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중국인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좌권 장군의 초장지 묘소와 진기로예 항일운동 순국열사 기념관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침 일찍 방문해서 그런지 찾는 이가 없는지 순국열사 기념관은 폐쇄된 상태로 쇠줄로 잠겨 있었다.

계단을 타고 조금 더 오르니 조선의용군기념관도 있었으나 역시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내부에는 열사들에 대한 유적이나 사진 등이 있을 텐데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많았다. 관리도 안 되는 듯 뜰에는 풀들이 돋아나 있고 벽면 등은 퇴락한 모습이었다.

윤세주 진광화 초장지 아래 쪽에 진기로예항일순국열사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 항일열사순국열사기념관 윤세주 진광화 초장지 아래 쪽에 진기로예항일순국열사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양 옆으로 나무들이 둘러싸인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돌로 우람하게 조성된 2개의 묘가 나란히 서 있었다. 뒤쪽으로는 높다란 바위산(연화산)이 보이고 아래쪽으로 마을과 산자락들이 보이는 중턱에 위치해 있어서 한눈에도 명당으로 보였다.

윤세주 진광화 열사 초장지 올라가는 길. 계단 옆에 나무들을 정성으로 잘 가꾸어 놓았다.
▲ 윤세주 진광화 열사 초장지 올라가는 길 윤세주 진광화 열사 초장지 올라가는 길. 계단 옆에 나무들을 정성으로 잘 가꾸어 놓았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중국인들과 조선의용군들은 1942년 일본군에 대한 반소탕전에서 숨진 좌권장군과 윤세주, 진광화 열사를 이곳에 모시었다. 나중에 중국이 안정이 되자 많은 사람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한딴의 진기로예 열사능원으로 이장을 하고 초장지는 그대로 보전하여 둔 듯했다.

열사들의 초장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전하여 둔 것은 항일투쟁에 대한 현장성과 역사적인 가치를 높여 주었다. 커다란 돌로 장식된 2개의 묘에는 각각 한문으로 '조선혁명열사 진광화 동지묘', '조선혁명열사 석정 동지묘'라고 쓰여 있었다. 묘비 아래에는 한문으로 쓴 글자들이 있었으나 비바람에 마모가 되고 흐릿해서 무엇이라고 새겨졌는지 거의 읽을 수 없었다.

2개의 묘소 중 왼편에 있는 진광화 열사의 초장지 묘소이다. 1942년 조성된 것으로 현재는 가묘이다.  돌과 대리석으로 우람하게 조성된 모습으로 중국인들이 얼마나 열사을 애통히 여겼는지 엿볼 수 있다.
▲ 진광화 열사 초장지 묘 2개의 묘소 중 왼편에 있는 진광화 열사의 초장지 묘소이다. 1942년 조성된 것으로 현재는 가묘이다. 돌과 대리석으로 우람하게 조성된 모습으로 중국인들이 얼마나 열사을 애통히 여겼는지 엿볼 수 있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2개의 묘소 중 오른쪽이 석정 윤세주 열사의 초장지 묘이다. 대리석에는 희미하게 보이지만 '조선혁명열사 석정 동지의 묘'라고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 석정 열사의 초장지 묘소 2개의 묘소 중 오른쪽이 석정 윤세주 열사의 초장지 묘이다. 대리석에는 희미하게 보이지만 '조선혁명열사 석정 동지의 묘'라고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또한 스먼촌의 열사 초장지를 관리하는 분이 없는 듯 썰렁하였다.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고 아는 사람만 가끔씩 찾아오는 듯했다. 운전을 해준 섭현의 택시 기사도 나이가 50줄이 되었을 법한데 여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먹고 살기 분주한 시대에 사람들은 현재를 살기도 바쁜가 보다. 열사들의 삶과 정신은 한결같을 텐데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듯해서 서글퍼졌다. 그래도 열사들을 아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고 그 분들의 뜻과 정신을 기리려는 맥락은 끊어지지 않은 듯했다.

초장지 주변에는 측백나무들이 가지런히 조성되어 있었고 누가 심었는지 모르지만 무궁화나무도 식재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꺾어도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다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어내는 무궁화는 한민족을 상징하기 좋은 나무이다. 여름 내내 피었다가 지고 다시 피고 지칠 줄 모르고 꽃을 피워내는 무궁화를 보면서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저력과 근성을 새길 수 있었다.

초장지 뒷 편에 조성된 한중 우의림

윤세주, 진광화 묘소 뒤에는 '중한우의림(中韓友誼林)'이라는 한자와 한글로 '한중 우정의 숲, 二00五年 元月'라고 쓰인 푯말이 보였다. 2005년에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함께 열사들의 묘소 근처에 숲을 조성하고 세운 푯말인 듯했다. 한국과 중국이 만날 수 있는 좋은 공통분모가 바로 조선의용군일 것이다.

일제에 대항하여 중국과 한국은 힘을 합쳐서 싸웠다. 한국 쪽에서 먼저 조선의용군에 대한 연구, 학술 발표, 추모 사업 등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면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드 문제로 잠시 소원해진 중국과 한국이 우의를 갖고 서로를 이해하면 동북 아시아의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한중 우정의 숲'이라고 쓰인 푯말을 보면서 한국과 중국이 함께 숲을 이루어서 함께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있기를 기원했다.

한중 우정의 숲은 진광화 윤세주 초장지 뒷편에 조성되어 있다. 한국과 중국이 숲처럼 우애로 함께 발전하면 얼마나 좋을까?  6개 국이 복잡하게 뒤엉킨 동북아의 정세가 우애로 평화의 숲이 되길 기원했다.
▲ 한중 우정의 숲 한중 우정의 숲은 진광화 윤세주 초장지 뒷편에 조성되어 있다. 한국과 중국이 숲처럼 우애로 함께 발전하면 얼마나 좋을까? 6개 국이 복잡하게 뒤엉킨 동북아의 정세가 우애로 평화의 숲이 되길 기원했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두 묘소 사이의 측백나무

두 분 묘소 중간에는 커다랗게 잘 자란 측백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었다. 중국 길림 신문의 인터넷 자료에 의하면 진광화와 세주 열사 묘소 사이에는 조선의용대 출신인 관건이란 분의 유골이 뿌려졌다고 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인터넷으로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우연하게 알게 된 사실이다.

관건의 원명은 황재연(黃載然)으로 1910년 길림성 농민 출신으로 혁명의 길에 나서서 조선의용대에 참여하고 진광화 윤세주와 함께 태항산에서 함께 일제와 싸웠다고 한다. 태항산에서 싸웠던 그 뜻깊은 나날을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이라며 죽은 다음 진광화와 윤세주가 묻힌 곳에 함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유언대로 1984년 조선의용군 출신 동지들이 이 초장지를 순례할 때에 그의 뜻에 따라 그의 유골을 가져와 두 묘소 사이에 뿌렸다고 길림 인터넷 신문은 답사기를 통해서 소개를 하였다. 

진광화, 윤세주 묘 사이에는 측백나무가 정성으로 가꾸어져 있다. 함께 싸웠던 조선의용군 '관건'(황재연)이라는 분이 이곳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유언해서 1984년에 이곳에 골분을 모셨다고 길림 인터넷 신문은 전한다.
▲ 진광화, 윤세주 묘 사이의 측백나무 진광화, 윤세주 묘 사이에는 측백나무가 정성으로 가꾸어져 있다. 함께 싸웠던 조선의용군 '관건'(황재연)이라는 분이 이곳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유언해서 1984년에 이곳에 골분을 모셨다고 길림 인터넷 신문은 전한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이 나무가 그런 뜻이 있어서 심어졌는지를 모르겠지만 열사들의 동지애가 가슴 아리게 전해져 왔다. 사연을 모르면 그냥 지나쳤을 나무인데 한 사람의 영혼이 서려있음을 느끼면서 굳건하게 서 있는 그 나무를 오래 동안 바라보았다. 죽어서도 잊지 못하고 함께 묻히겠다는 혁명동지들의 굳은 결의는 죽어서도 함께 하고 있었다.

윤세주와 진광화 열사처럼 알려져 있는 분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항일의 투쟁에 나섰던 수많은 무명용사들에 대한 삶과 흔적을 찾는 역사적인 조사와 작업이 시급함을 느꼈다. 세월이 더 흐르고 역사적인 현장을 경험한 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증언도 듣고 자료도 발굴하고 역사적인 평가와 업적을 기려야할 것이다. 중국의 첩첩 산중 태항 산맥을 넘나들던 항일 열사들에게 머리가 숙여지고 우리가 너무 무심하고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듯해서 부끄러웠다.

(다음 편에 계속)

진광화, 윤세주가 처음으로 묻혔던 연화산 자락은 명당이다. 뒤에는 연화산이 감싸고 있고 앞에는 조선의용군기념관 지붕이 보이고 멀리 마을과 들이 보이고 더 멀리 하늘 밑에는 태항산맥이 보인다.
▲ 진광화, 윤세주 초장지 묘소에서 본 전경 진광화, 윤세주가 처음으로 묻혔던 연화산 자락은 명당이다. 뒤에는 연화산이 감싸고 있고 앞에는 조선의용군기념관 지붕이 보이고 멀리 마을과 들이 보이고 더 멀리 하늘 밑에는 태항산맥이 보인다.
ⓒ 박청용

관련사진보기




태그:#진광화 윤세주 초장지, #스먼촌 초장지, #석문촌 초장지, #조선의용군기념관, #석정 초장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 서산 출신. 경기도 광주 거주. 환경, 복지, 여행, 문학, 통일에 관심이 많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