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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거의 20년 전에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신영복의 세계여행)을 처음 접했습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문명과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따뜻한 글과 그림 엽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데 큰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며 그 감동으로 막연하게 세계일주에 대한 꿈도 품게 됐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는 2017년, 배낭여행자가 되어 그 꿈을 실행에 옮깁니다. 당신이 보낸 첫 번째 엽서에 적혀있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에 무모한 용기를 얻어 여행지에서 편지를 띄웁니다. 이 여행기는 당신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당신들과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 기자 말

올리브산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구시가지 전경
 올리브산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구시가지 전경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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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왜 왔지?"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어디를 갈 건지 얘기를 하라고!"
"거기는 왜 가는데?"
"거기가 다야?  그 다음엔 또 어디 갈 건지 계속 말해봐."

소문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입국심사가 까다롭다는 정보는 익히 있었지만, 입국심사대에 도착하기도 전에 갑자기 달려온 보안요원의 질문 공세가 있을 줄은 미처 예상을 못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별 생각 없이 입국심사대를 향해 걷고 있는데, 유대인 전통 모자 키파를 쓴 보안요원이 뛰어와서 여권을 보여주라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잠시 당황하여 답변이 늦어지자 의심의 눈초리를 더욱 쏘아 붙이며 질문, 아니 취조공세를 이어갔습니다.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가고자 하는 도시와 숙박장소와 방문목적 정도를 얘기하면 되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디를 방문할 것이고 거기는 왜 가고자 하는 지에 대하여 설명해야 했습니다. 

워낙 테러의 위험도가 높은 곳이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 주위를 둘러보니 유대인도 아랍인도 아닌 동양인은 나 하나이고, 첫 질문을 잘 못 알아 듣고 머뭇거렸기에 더 의심을 가질 수도 있었겠다고 이해하려고 해도 이런 식의 격한 환영인사는 매우 불쾌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두 번째 방문했던 어떤 이는 왜 또 왔냐는 식의 질문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애써 위안을 했습니다.

내가 겪은 상황이 일반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낯선 동양인이고 또 남자라면 검증 대상이 될 가능성은 커질 것입니다. 혹시 당신이 이스라엘을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가고자 하는 다섯 곳 정도의 구체적인 목적지와 방문 이유를 영어로 바로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시기 바랍니다.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사람들과 성년식을 맞이한 유대인 소년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사람들과 성년식을 맞이한 유대인 소년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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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서는 이스라엘에 가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예루살렘은 웬만한 곳이 아님이 분명했습니다.

세계 3대 유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공히 성지(聖地)로 떠 받드는 3천년 역사의 고도(古都). 예루살렘 여행의 핵심은 역사적 유적이 밀집해 있는 구시가지였습니다. 구시가지는 유대지구, 이슬람지구, 크리스찬지구, 아르메니안지구의 4개 구역으로 나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가장 도드라진 풍경은 유대인과 무슬림의 모습이었습니다. 

'통곡의 벽' 주변으로는 한여름 더위에도 아랑곳 없이 전통 모자와 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유대인들이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벽을 마주하고 고개를 흔들어 가며 기도하는 사람들과 만 13세로 유대인 성년식을 맞이한 소년들을 축하하는 노랫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비장함이 아니라 일상의 시끌벅적함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전체 이스라엘 인구에서 유대인이 80%이고 무슬림은 20%가 채 안 되는 비율입니다. 하지만 빈곤지역인 구시가지는 무슬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시장에서 호객 하는 상인들의 목소리와 모스크에서 예배를 마치고 쏟아져 나온 무슬림들의 바쁜 발걸음이 도시의 또 다른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걸었던 '고난의 길(비아 돌로로사)'을 찾는 기독교 순례자들의 발걸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도시의 구석 구석을 살피는 일반 여행객들, 무장경찰과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가 평범한 풍경으로 녹아든 모습이 예루살렘의 나머지 공간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고난의 길' 제3처.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가 처음으로 넘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익숙한 모습인 무장경찰과 근처 모스크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무슬림들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고난의 길' 제3처.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가 처음으로 넘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익숙한 모습인 무장경찰과 근처 모스크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무슬림들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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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제와 민족문제가 얽히고 설킨 세계 최고의 분쟁지역. 그만큼 서는 위치와 입장에 따라 극명한 시선과 첨예한 감정이 대립하는 이곳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이 많았습니다. 기계적인 중립을 벗어나 보다 진실에 가깝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습니다.

중립과 중립 그 이상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3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체스코 교황의 인상적인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이야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3년 전만 하더라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가 매우 비상식적으로 다루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건네 받은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던 프란체스코 교황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정치적 중립을 위해 리본을 떼는 것을 좋겠다고 건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황은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하고는 그대로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는 가치를 앞서 온 몸으로 실천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었던 예수입니다. 나는 그가 걸었던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신의 형상으로 저 멀리에 있는 예수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세상의 모순에 맞서 치열하게 살다간 인간 예수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고난의 길'은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800m 남짓한 길입니다. 일화를 남긴 열 네곳의 지점에는 그 의미를 기념하는 교회나 표식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10지점부터 제14지점까지가 모여 있는 성묘교회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순례자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고난의 길' 마지막 장소인 성묘교회 내부와 순례자들.  신의 형상으로 저 멀리 모셔 놓기 보다, 현실의 모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인간 예수의 모습에 대한 조명이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고난의 길' 마지막 장소인 성묘교회 내부와 순례자들. 신의 형상으로 저 멀리 모셔 놓기 보다, 현실의 모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인간 예수의 모습에 대한 조명이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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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호수 전경.  예루살렘과 비교하여 변방이었던 갈릴리 지역은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사역하였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갈릴리 호수 전경. 예루살렘과 비교하여 변방이었던 갈릴리 지역은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사역하였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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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은 예루살렘이지만, 사실 그가 활동한 주된 무대는 갈릴리였습니다. 예루살렘과 갈릴리가 가지는 지역적인 특성과 상징을 의미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예루살렘은 중심지였습니다. 로마의 식민통치에 동조하는 세력과 율법의 권위에 의지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변화의 역동성보다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보수적인 지역이었습니다. 

반면에 갈릴리는 호수와 평야로 이루어진 변방이었습니다. 남의 땅을 부쳐 먹고 사는 소작농들과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들이 있는 농어촌 마을이었습니다. 고단한 현실로부터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크고, 식민 통치자 로마에 대한 저항감도 강한 곳이었습니다.  또한 힘없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 그래서 더 많은 사랑이 필요했던 지역이었기에 예수는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는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한 예루살렘의 기득권 세력을 향해 거침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실리지 않은 형식적인 예배를 꾸짖었고, 로마에 굴복하고 그들의 통치를 받아들인 자들을 비웃었습니다. 

당시 정치적인 기득권층은 로마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헤롯당이요, 종교적인 기득권층은 로마에는 부정적이나 율법에 대한 해석에서 매우 교조적이었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로마에 대한 태도로만 봤을 때는 결코 동지가 될 수 없었던 그들이 함께 예수의 죽음을 모의했다는 사실에서, 예수가 던진 사회적 메시지의 성격과 파급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에는 예수가 가르침을 펴고 기적을 행했던 장소들을 기념하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종교 경전이나 신화에서 객관적으로 믿기 어려운 내용을 접했을 때 흔히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텍스트의 권위에 의존하여 덮어 놓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태도가 하나요, 터무니 없는 과장과 왜곡이니 무시하자는 태도가 다른 하나입니다. 두 가지 모두 바른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이야기가 전승된 이유, 상징 속에 담긴 의미를 보아야 본질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센병 환자를 고치고, 소경을 눈 뜨게 하고, 열병을 치료하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장정을 먹인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겠습니까?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선천적인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과 지체 장애인, 어린이 등은 사원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차별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그들에 대한 동정도 위험한 행동으로 간주되는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예수는 아픈 것도 서러운데 차별까지 당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다가가 그들의 고통을 함께 했습니다.  이적의 내용도 일확천금의 부를 만들어 주는 것, 혹은 사회적 성공과 출세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하되 함께 나누어 풍요를 느끼고, 신체적·육체적으로 고통 받던 이들에게 치유와 자유를 선사했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평범한 이들의 고단한 문제에 천착했던 이적의 이러한 가치에 주목하지 않고, 신비로운 결과만을 찬탄하고 경외한다면 그것은 예수를 단순한 마술사로 격하시키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오병이어 교회 바닥에 장식된 떡과 물고기 그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장정을 먹였다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오병이어 교회 바닥에 장식된 떡과 물고기 그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장정을 먹였다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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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람'에 대해 남긴 당신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그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게도 세상을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역설적인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세상이 조금씩 변화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았을 때 예수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의 표본이라 할 만합니다. 그에 반해 예수를 신봉하는, 흔히 '보수적인 개신교'라고 불리는 오늘날 한국의 대형교회는 너무나 지혜로워 보입니다. 예수를 신의 형상에만 가두어 저 멀리 모셔 놓고, 복음과 신앙을 부와 성공의 열쇠로 혹은 목회자들 스스로의 축재와 권력화를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는 2천 년 전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서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세월에서도 끊임없이 고난을 당해 왔습니다. 때로는 종교전쟁과 침략의 선봉장으로, 때로는 죄의식과 두려움을 자극하여 수금하는 뚜쟁이로, 때로는 세속적인 성공과 부를 부르는 화신으로, 때로는 종북척결 반공투사로서 말입니다. 

'예수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 되지 못하고, 오직 '예수에 대한 믿음' 만을 강조하는 행태는 예수의 사랑과 실천을 편협하게 만들고 신앙을 사회에서 분리하여 왜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철저하게 변방, 철저하게 소외된 약자들의 편에 섰던 예수. 그가 지금 다시 세상에 온다면 어디에 거하고 어디를 향할 것인가를 자문해 보는 것이 진정으로 예수의 부활 속에 사는 길이라 믿습니다.

얼마 전에 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종교인 과세에 대해 2년 유예를 요구하는 법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뉴스 자체 보다는 법안 발의에 참여한 국회의원 28명의 명단이 충격이었습니다.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매우 진보적이라고 평가 받는 의원부터 매우 보수적이라고 평가 받는 의원까지, 정치적인 행보로 봤을 때는 도저히 같은 입장에 설 수 없을 것 같은 의원들이 이 문제에 매우 신속하게 하나의 목소리를 내어 응집했습니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숨은 종교권력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했습니다. 

국민 80%의 지지를 받는 법안이고 대다수 종교인들도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이 법안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주로 개신교 의원들 사이에서 주도되고 있음을 굳이 돌려 말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단순히 과세문제를 넘어 교회운영의 투명성과 연관된 문제이기에 필사적인 저항이 있다는 사실도 알만 한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입니다. 종교인 과세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이슈가 아니고, 여러 이유를 댄 백지화 시도도 처음이 아니니, 정파를 넘어선 의원들의 행동을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꼼수로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신념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신념의 바탕에 묻고 싶습니다.

"의원님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현재 세계일주 인문기행을 하고 있습니다.



태그:#예수, #예루살렘, #고난의 길, #갈릴리, #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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