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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밖에서 보낸 5년

작은 아이가 5학년이 되던 해 겨울이었습니다. 또래 아이에 비해 키도 작고 유난히 마른 막둥이가 자기 몸집보다 큰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서는데 마음속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금산의 산골마을에 있는 학교 기숙사까지 데려다 준 그날 저도 아이도 밤새 뒤척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날부터 두 딸을 모두 기숙형 대안학교에 보낸 용감한 엄마 또는 특이한 엄마가 되었고, 우리가족은 대안적인 교육을 찾아 자의적으로 제도권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학교에 입학을 하던 바로 그 해에, 큰 딸아이는 공교롭게도 인도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중학교 3학년이 되면 학생들 전체가 인도 뱅갈루루로 약 8개월 동안 이동수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공립학교에서는 이렇게 장기간 한 학년 전체가 해외 이동수업을 하는 경우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지요. 보통 중학교 3학년이면 공립중학교 아이들은 고등학교 준비도 해야 하고, 내신관리도 해야 하고 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 시기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간혹 몇 개월씩 해외 어학캠프도 다녀오는 아이들이 있다지만 중학교 3학년을 장기간 인도에 보낸다는 것은 어쩌면 대안학교를 보내는 것 이상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학교의 책임교사와 협력교사가 동행하고 현지의 원어민 교사들과 많은 도움의 손길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40여 명 정도의 아이들이 방학도 없이 인도에서 그 긴 시간을 지내기란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아이들은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언어와 문화 그리고 다양한 세계관을 경험하고 돌아오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한해는 저와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대안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아직 어린 두 딸들을 인도와 금산에 놔두고 집에 앉아서 이게 과연 잘하고 있는 짓인가 하고 수도 없이 저의 선택에 대해 반문했었습니다.

왜 이렇게 대안적인 교육을 찾아야 하는건지, 그리고 대안적인 교육이 우리나라에서는 이토록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 것인지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얼굴에 솜털이 송송 나있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 지새운 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혹자는 그렇게 말합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뭐하러 형편도 어려운데 구지 돈들여 아이들을 그런 학교에 보내느냐고 말이지요.

그럼에도 꿋꿋이 5년을 지내고 아이들이 자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 그렇게 선택했던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 아이는 인도에서의 1년을 포함해서 5년째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고 내년이면 고등학교 3학년이 됩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이는 행복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좋은 학교에 보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합니다. 작은 아이는 처음에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많이 울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라면서 인생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마치면 교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태워서 차 안에서 간식 먹이고 학원으로 이동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원이 끝나면 다시 차 안에서 저녁을 먹이고 다른 학원으로 데려다 줍니다. 밤 11시나 12시 가까이 되어 파김치가 되어 내려오는 아이를 다시 차에 태우고 집으로 오면 공부하는 아이보다 자신이 더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학교 마치면 교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태워서 차 안에서 간식 먹이고 학원으로 이동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원이 끝나면 다시 차 안에서 저녁을 먹이고 다른 학원으로 데려다 줍니다. 밤 11시나 12시 가까이 되어 파김치가 되어 내려오는 아이를 다시 차에 태우고 집으로 오면 공부하는 아이보다 자신이 더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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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들 중에는 자신을 운전기사라고 불러달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마치면 교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태워서 차 안에서 간식 먹이고 학원으로 이동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원이 끝나면 다시 차 안에서 저녁을 먹이고 다른 학원으로 데려다 줍니다. 밤 11시나 12시 가까이 되어 파김치가 되어 내려오는 아이를 다시 차에 태우고 집으로 오면 공부하는 아이보다 자신이 더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고달프지만 앞으로 몇 년만 참으면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그 날을 기다리면서 참아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분당은 엄마들이 대부분 그렇게 산다면서 강남은 더 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도 했습니다. 저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물론 그 친구에게는 저의 교육관이 또 별천지 같았겠지요.

울타리 넘은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가 많아졌으면

저마다 교육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이 세상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워가는 일이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힘들여 학원비를 들이지 않아도, 또 대안을 찾아 울타리를 넘고 가족이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성적으로 줄세우기나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양 하루종일 공부만 시키기 같은 것들로 이 땅의 자라나는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중에는 두 군데, 주말에는 서너 군데 학원을 순방을 하는 아이들이 불행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나름의 행복과 가치관을 따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꿈과 비전을 생각해볼 겨를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찍부터 적성을 찾아 특정분야의 재능을 키워주고, 학원에서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주는 댓가로 고액의 학원비를 받고, 스토리가 있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위해 유명강사를 찾아다니며 누가 봐도 훌륭해 보이도록 만들어진 아이들을 뽑아주는 그런 시스템의 울타리 안에서라면 아무리 정권이 바뀌고 교육제도가 개선된다고 해도 부모의 능력과 재력이 곧 아이의 대학과 직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때는 공부가 좀 안되는 아이들이 음악이나 미술같은 예체능 분야를 준비했었습니다. 뭐든 하나만 잘해도 대학을 가던 때였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다들 공부는 기본으로 잘하고 그 외에 스토리가 있는 스팩들을 만드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미술을 전공하려면 공부도 잘해야 하고 내신 수능점수도 좋아야 합니다.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림만 잘 그려서는 대학에서 뽑아주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성적도 좋아야 하고 스팩에 포트폴리오에 자기소개서까지 완벽해야 하니 예전보다 아이들은 더 힘들어지고 부모들도 더 힘들어졌습니다. 왜 아이를 많이 낳지 못하는지 제가 아이 둘을 키워 보니까 뼈져리게 알겠습니다. 오죽하면 셋째는 부의 상징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이제는 둘도 많아서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잘 낳지도 않습니다.

물론 애초에 대학을 위해 대안교육을 찾았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학진학 문제에 대해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은 본인의 꿈을 찾고 더 많은 공부를 원할 때 언제라도 선택해서 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런데 딸아이가 이제 고3이 되고 대학을 가겠다고 하니 그렇게 용감하게 대안교육을 외쳤던 저조차도 슬슬 걱정이 앞서기 시작합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네 학원도 법의 울타리 안에 보호를 받는 실정인데 - 소위 학원법이라는 것이 존재 하니까요 - 대안학교는 나라에서 교육기관으로서 인정을 해주는 법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앞 서행 보호구역도 없고, 급식비 지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아이들이라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모든 혜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인허가를 받지 못하니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엄밀히 말하면 불법시설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아이들이 인성적으로나 성적으로나 우수하고 훌륭하게 자라나고 있어도 대학에서는 대안학교의 아이들의 생활기록부  자료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제도권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이렇게 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마음껏 아이 낳아 기르는 교육선진국 대한민국을 그리며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불이익을 감내하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 하나 잘 키워보자고 용감한 결단을 내리고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부모들 입장에서는 또 한 번의 큰 벽 앞에 맞닥뜨린 느낌입니다. 

정부에서도 학교밖 청소년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보호기관이나 상담교사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제도권 학교의 생활기록부만을 인정하는 편협함 보다는 모든 아이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동등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시급한 때입니다. 현재는 학교밖 청소년들이 문을 두드려 볼 수 있는 대학은 대안학교 전형이나 검정고시 전형이 있는 극소수의 일부 사립학교들뿐입니다. 국공립 대학에서는 거의 그런 전형이 없고 설사 그런 제도가 있다고 해도 아이들을 선발하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육의 대안을 찾아 대안학교를 찾은 부모들도 그 안에서 다시금 대안을 찾지 않으면 안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됩니다.

이제 저희 아이는 몇 달 후면 고3이 됩니다. 작곡가가 되기를 원하고 음악의 길을 가고자 하는 아이는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누구보다 진지하게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학의 입시의 틀에 맞추어 전문학원에서 만들어 놓은 스팩은 없다 하더라도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마다 속도와 모양새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아이들이 언제라도 자신의 꿈을 찾아 대학의 문을 두드렸을 때 적어도 제도권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기회가 박탈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이 글을 통해 조심스럽게 담아봅니다. 마음껏 아이 낳아 기르고, 그 아이들이 모두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교육선진국 대한민국을 그려봅니다.


태그:#대안학교, #대안교육, #학교밖청소년, #대학입시, #대안교육진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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