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긱스가 웨일스 축구 지휘봉을 잡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는 BBC

라이언 긱스가 웨일스 축구 지휘봉을 잡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는 BBC ⓒ BB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라이언 긱스(44)가 조국 웨일스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으며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에 나서게 됐다. 웨일스 축구협회는 15일(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크리스 콜먼 감독의 후임으로 긱스를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긱스의 웨일스 대표팀 감독 선임 소식은 BBC 등 유력 언론에 의해서도 보도됐다.

'왼발의 마법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긱스는 현역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웨일스 축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였다. 1990년 프로 데뷔부터 2014년 은퇴할 때까지 맨유의 유니폼만을 입고 활약해 온 원클럽맨이기도 하다. 긱스가 현역으로 뛰는 시간 동안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13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4회 등 화려한 성과를 남겼다. '긱스의 축구 인생 자체가 곧 맨유의 최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려한 클럽 경력에 비하여 정작 국가대표팀에서의 커리어는 눈물의 연속이었다. 긱스는 웨일스 유니폼을 입고 A매치 64경기에서 12골을 기록하며 활약했으나 클럽과는 달리 조국 웨일스의 전력이 워낙 떨어지는 탓에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긱스는 현역 선수일 때는 축구 인생 내내 꿈의 무대인 월드컵 본선을 단 한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선수 신분으로는 월드컵 가보지 못한 라이언 긱스

2007년을 끝으로 웨일스 대표팀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던 긱스는 2012년에는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런던올림픽에서 영국 단일팀의 와일드카드로 발탁되며 최후의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8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무릎을 끓으며 국가대표 무관의 불운을 이어갔다. 공교롭게도 이때 긱스와 영국 단일팀의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 바로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이었다.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긱스가 만일 최전성기에 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 등 맨유 동료들과 함께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활약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지금도 축구팬들 사이에서 종종 흥미로운 떡밥이 되곤 한다.

긱스는 현역 생활을 마친 이후에는 코치로 변신하며 맨유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데이비드 모예스 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당하자 임시 감독을 맡기도 했고, 루이스 판 할 전 감독 시절에는 수석코치로 활약했다. 판 할 감독이 물러나고 2016년 주제 무리뉴 현 감독이 부임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며 맨유를 떠났다.

긱스는 은퇴 이후 감독직에 도전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과 맨유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퍼기의 아이들' 중에서도 긱스는 뛰어난 리더십과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가장 오래 장수했으며 퍼거슨의 남다른 신뢰를 얻었던 애제자로 유명하다. 실제로 퍼거슨 은퇴 이후 긱스는 맨유의 차기 감독 후보로도 몇 차례나 이름이 거론된바 있다.

하지만 퍼거슨 시대의 영광을 재현할수 있을만한 검증된 거물급 감독을 당장 필요로 했던 맨유는 지도자 경력이 일천한 긱스보다는 판 할-무리뉴 같은 베테랑 감독들을 선택했다. 긱스가 선수 생활 말년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막장 불륜 스캔들' 등으로 평판이 엄청나게 추락한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내심 맨유의 차기 감독직을 바라던 긱스로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맨유를 떠나는 선택을 내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긱스는 웨일스 연고의 스완지 시티 등 감독직이 공석이 된 몇몇 팀들로부터 영입 후보군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실제로 계약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던 긱스에게 관심을 표명한 것은 웨일스 축구협회였다. 최근 긱스가 축구협회와 면접을 봤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웨일스 대표팀행은 기정사실화 됐다.

웨일스 대표팀은 지난 유로 2016에서 역대 최고성적인 4강을 달성하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러시아월드컵 유럽예선에서는 4승 5무 1패로 세르비아-아일랜드에 이어 조 3위에 그쳐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유로 4강을 이끌었던 콜먼 감독은 월드컵 예선에서 무패행진을 달리고도 하필 최종전에서 아일랜드에게 당한 유일한 1패 때문에 본선 문턱에서 주저 앉아야 했다. 콜먼 감독은 현재는 잉글랜드 2부리그 선덜랜드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60년 만의 월드컵 본선진출은 좌절되었지만 웨일스는 간판스타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을 비롯하여 아론 램지(아스날), 애슐리 윌리엄스(에버튼) 등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수준급 선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서 전력 자체는 긱스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과 비교하면 크게 좋아진 편이다. 신임 감독 긱스의 과제는 웨일스의 세대교체와 유로 2020 본선 진출이다.

지도자로 성공한 스타 출신 감독, 긱스가 명성 이어갈까

긱스의 은사인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은 현역 시절 선수 못지않게 수많은 지도자를 키워낸 것으로 유명하다. 퍼거슨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축구인들이 은퇴 후 감독이 된 사례만 해도 수십 명이 넘는다.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인물만 봐도 고든 스트라칸 스코틀랜드 대표팀 감독을 비롯하여 마크 휴즈 스토크시티 감독, 스티브 브루스 애스턴빌라 감독, 올레 군나르 솔샤르 몰데 FK 감독 등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긱스도 그 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하지만 현역 시절의 명성에 비하여 과연 감독으로서도 그만큼의 성공을 거둔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는 평가가 엇갈린다. 대표적으로 맨유의 주장까지 역임했던 로이 킨(현 아일랜드 대표팀 수석코치)은 선덜랜드와 입스위치 타운 등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성적부진으로 경질됐고, 솔샤르도 2014년 카디프의 2부 강등을 막지 못했다.

특히 해설자로 더 유명한 게리 네빌은 2015년 스페인 발렌시아의 지휘봉을 잡았다가 '재앙' 같은 성적을 남기고 경질당하며 또 다른 의미에서 전설이 되고 말았다. 나름 오래 감독생활을 이어간 이들도 스승 퍼거슨에 비견될 만큼 빅클럽에서 업적을 남기거나 우승을 이끌어내는 명장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드물다. '청출어람'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긱스는 베컴이나 호날두 같은 대중적인 스타는 아니었지만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중 한 명으로 꼽히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스타 출신 감독이 지도자로도 성공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현역 시절의 명성을 지도자로서 까먹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자국의 대표팀을 맡는다는 것은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한국도 젊은 나이에 조국의 지휘봉을 잡았다가 축구 커리어에 큰 흠집을 남긴 차범근이나 홍명보의 사례가 있다.

긱스에게 맨유 시절 동료이기도 했던 네빌의 사례는 좋은 반면교사다. 네빌은 국가대표팀 코치 경력은 있었지만 정식 감독 경험은 전무한 상황에서 갑자기 발렌시아 같은 빅리그 명문팀의 지휘봉을 덜컥 잡았다가 '초보 감독'의 한계를 드러내며 무너졌다. 선수와 감독으로서의 리더십은 전혀 다르다. 네빌에 비하면 긱스는 친정팀 맨유에서 수석코치를 지냈지만 감독 데뷔는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서 하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웨일스로서는 지도자로서의 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긱스의 현역 시절 명성만 가지고 도박을 한 셈이다. 긱스가 슈퍼스타 출신 감독의 성공사례를 개척하며 지도자로서 '퍼거슨의 수제자'로 거듭날지, 아니면 '웨일스판 홍명보'의 전철을 밟게 될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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