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돌풍이 눈보라 앞에서 멈춰 섰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 27일(한국 시각) 중국 창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18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1-2로 패했다.

1962년 축구연맹 창립 이래 57년 만에 처음으로 국제대회 결승무대에 올랐던 'FIFA랭킹 112위' 베트남은 이날 우즈베키스탄(77위)을 맞아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경기 종료 직전 교체 투입된 안드레이 시도르프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눈물을 삼켰다.  

이날 엄청난 눈보라 때문에 공이 제대로 굴러가지도, 움직이기조차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양팀 선수들은 짓궂은 날씨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맞대결을 펼쳤다.  

선제골은 우즈벡의 몫이었다. 전반 7분, 루스탐존 아슈마토프가 동료의 코너킥을 다이빙 헤딩슛으로 베트남의 골망을 흔든 것. 베트남 골키퍼 부이띠엔 중이 손을 뻗었지만 번개 같은 슛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8강(이라크)과 4강전(카타르)에서 연이어 승부차기로 승리를 거둔 집념의 베트남이 이대로 쓰러질 팀이 아니었다. 베트남의 응우옌꽝 하이가 전반 41분 페널티 박스 부근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를 기막힌 왼발 인사이드 슛으로 동점골을 만든 것.

눈보라 속에서도 대형 국기를 흔들며 열렬한 응원을 펼치던 베트남 팬들은 마치 월드컵 결승골이라도 넣은 듯 기뻐했고,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박항서 감독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전반 종료 후 그라운드 제설 작업으로 인해 경기가 1시간가량이나 지연됐지만, 선수들의 열정은 좀체 식지 않았다. 특히 객관적인 전력상 한 수 위인 우즈벡의 공을 빼앗기 위해 그라운드를 뒹굴며 압박을 펼치는 베트남의 모습은 마치 2002년 한국 선수들의 모습을 연상케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베트남이 아닌 우즈벡의 손을 들어주었다. 승부차기로 갈 것으로 보이던 연장 후반 14분, 시도르프가 동료의 코너킥 패스를 왼발 논스톱 슛으로 마무리하며 베트남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팬들의 마음 속엔 챔피언


세계는커녕 아시아 무대에서 조차도 축구변방 취급을 당했던 베트남은 이날 고대하던 우승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2018년 새해 벽두부터 놀라운 잠재력을 터트리며 조국 팬들을 열광케했다.

이날 하노이 시내에서 거리 응원을 펼치던 베트남 사람들은 대표팀이 아쉽게 우승컵을 놓쳤지만,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물론 베트남이 보여준 투혼과 잠재력에 깊은 감동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베트남 언론 <티엔퐁>은 "대표팀이 최고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팬들에겐 이미 챔피언이다"라고 전했고, <베트남 뉴스>는 자국 축구전문가 구옌씨히 엔의 말을 인용하면서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우리의 영웅"이라고 전했다.

국가대표팀 코치와 상주 상무, 창원 시청 감독을 거쳐 지난해 10월 베트남 국가대표팀 및 U-23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박항서 감독은 이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 베트남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들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2018년 1월 27일 <연합뉴스> '베트남 히딩크' 박항서 "아쉬운 1분…그래도 잘 싸웠다")

선수 시절 보여준 악바리 정신과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서 배운 노하우를 베트남에 이식해 놀라운 업적을 세운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정부로부터 3급 노동훈장을 받게 됐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도 박항서 감독에게 찬사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경기 종료 직후 자신의 공식 트위터를 통해 "박항서 감독님의 활약과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선전에 박수를 보냅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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